▲ 1928년 구덕운동장 터에서 열린 야구경기 모습 (제공: 부산시 야구협회) [내외신문=변옥환 기자] 이제 두 달 뒤면 부산야구의 상징인 구덕야구장을 볼 수 없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부산시는 구덕야구장 철거 날짜를 7월로 결정했다. 부산 야구 역사가 시작된 곳이라고도 볼 수 있는 구덕야구장은 2년 전 이미 부산시의 철거 결정이 내려졌다.
부산시는 1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오는 6월까지 실시설계 용역을 끝내고 본격적인 구덕운동장 철거에 나설 예정이다. 구덕운동장 전체 6만 6000㎡ 중 종합운동장 3만㎡만 남기고 야구장과 체육관은 모두 허문다. 철거된 공간은 2018년까지 잔디와 나무를 심어 산책로를 만들고 일부 공간에는 테니스장을 비롯한 일부 체육시설을 배치할 계획이다.
부산시 체육진흥과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야구장 철거는 3~4년 전부터 얘기가 나왔다. 시설이 노후돼 안전사고 우려도 있고 지역주민들의 철거요청도 있었다”라며 “서병수 부산시장의 공약 중 하나가 구덕운동장 재건축이라 그 전부터 논의된 부분이 많았는데 그 중 야구장 리모델링 비용이 만만치 않고 서구 발전에 더 도움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에 야구인의 견해를 들어보고자 25일 부산시 야구협회 함현용 사무국장과 통화를 시도했다. 함 사무국장은 “구덕야구장은 40년이 넘은 상당히 오래된 야구장이다. 여러모로 상태가 결코 좋지 않아 인조잔디임에도 타구의 불규칙바운드가 일어날 정도다”라며 “많은 야구인이 구덕운동장의 재개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야구장의 시설보수를 기대했다”라고 말했다.
함 사무국장은 “야구장 철거가 결정됐을 때 반대 서명도 받고 부산시에 많은 의견과 부탁을 드렸다”라며 “리모델링 부분도 시에 건의했지만 이미 시에서 구덕운동장 재개발 구상을 다 한 시기라 되돌리기 힘든 상태였다”라고 아쉬워했다.
또 그는 “대신 시에서 학생들이 야구할 수 있는 아마야구 전용구장을 사직에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다”라며 “역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구덕야구장이 사라지는 건 너무 안타깝지만 미래에 자라날 학생선수들을 위해 부산시에서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길 기대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 27일 부산고:개성고의 경기가 열리는 구덕야구장의 전경 (사진: 변옥환 기자)
27일 오전 고교야구 주말리그가 열리는 구덕야구장을 찾았다. 이날 부산고:개성고의 시합과 경남고:부산정보고의 시합이 있었다. 시합 전 몸을 푸는 선수들의 기합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경기 시작 전 부산야구협회의 도움으로 박인규(75) 기록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구덕야구장 초기부터 야구를 했다는 야구계 원로인 박인규 기록원은 “이곳은 구덕야구장 틀이 갖춰지기 전부터 사람들이 야구를 해 온 땅이다”라며 “한국 야구사에 남는 곳인데, 사실 여기는 없애선 안 될 곳인데…”라고 아쉬워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학부모 응원단 외에 경기를 보러 들어오는 관중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구덕야구장은 “괜찮아 괜찮아!” “볼 끝까지 보고 침착하게!”라는 학생선수들의 외침으로 한껏 데워졌다. 프로야구 정도의 뜨거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학생들의 열정과 기 싸움, 응원하는 사람들의 자유롭게 즐기는 모습은 색다른 것을 느끼게 했다.
▲ 부산의 야구팬 조진우(25)씨가 구덕야구장 철거 반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변옥환 기자)
야구장을 방문한 학부모들과 야구팬의 생각도 듣고자 나섰다. 작년 고교야구의 매력에 빠져 구덕에서 열리는 시합을 대부분 보러온다는 조진우(25, 부산 기장군 철마면)씨는 “구덕야구장 철거는 절대 있어선 안 된다”라며 “학생선수들이 경기할 장소가 여기뿐인데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없애는 것부터 하는 건 잘못됐다고 본다”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또 부산정보고 1학년 선수의 학부모인 손모(46)씨는 “내년부터 기장군 전용구장에서 고교야구 시합을 하는 것으로 안다”라며 “구덕야구장 근처에 야구부 있는 학교가 많아 거리상 멀어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기장 야구장이 신축이라 시설은 괜찮아 그 점은 괜찮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모교는 아니지만 고교야구를 즐기러 온 김지후(17, 여, 부산 연제구 거제동)양은 “구덕야구장이 없어진단 얘길 듣고 왜 없앨까 아쉬웠다. 이전에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한 곳이기도 한데 그냥 두면 안 되나 싶다”라고 말했다.
이날 시합은 부산고가 개성고를 4대2로, 경남고가 부산정보고를 18대3으로 이겼다. 뜨거운 날씨 속에도 선수들은 마지막 아웃 카운트까지 최선을 다했다. 각 시합이 끝나고 구덕야구장 ‘무대의 주인공’인 선수들과 코치들의 목소리도 들었다.
경남고 1학년 선수인 김승일(17, 해운대구 우동)군은 “부산의 고교야구 하면 구덕야구장인데 없어진다 하니 한 편으론 아쉽다”라고 말했다. 또 부산고 1학년 이상연(17, 해운대구)군은 “야구장 펜스 상태나 이런 걸 보면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여기서 연습도 많이 했고 지난 기억을 생각하면 아쉽다”라고 말했다.
▲ 부산고 김성현 감독(위) 경남고 전광열 감독(아래) (사진: 변옥환 기자)
부산고 김성현 감독은 “어렸을 때 여기서 야구하며 많은 선배들도 보고 꿈을 키워나갔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야구인들도 많은 추억이 있을 것이다”라며 “비록 구덕야구장 철거는 결정돼 아쉽지만 부산에 야구 전용구장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또 경남고 전광열 감독은 “수많은 선수와 은퇴한 지도자들이 구덕야구장에서 경기하고 감독했었던 곳인데 역사의 현장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게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라며 “구덕야구장은 단순히 야구장의 기능만 하는 게 아니라 부산 학생 야구의 교실이라 생각한다. 야구인의 관점에서 철거보단 축소·보수 유지가 더 낫지 않을까 싶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부산시 야구협회는 6월 말까지 구덕야구장 사용허가를 받았다. 협회는 고교야구 주말리그와 부산시 아마야구 대회를 소화하기 위해 분주하다. 부산에 ‘구도(球都)’라는 애칭을 안겨준 구덕야구장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 27일 경남고:부산정보고의 경기. 구덕야구장 곳곳에 인조잔디가 파여 있고 펜스 칠이 벗겨진 모습이 보인다. (사진: 변옥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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