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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 기모노와 속옷에 얽힌 이야기..기모노를 입으면 속옷을 입지 않는다? ②화

오비의 비밀: 기모노의 디자인이 낳은 오해들
속옷 없이 기모노를? 일본 전통 의상에 얽힌 소문들
일본 성씨의 기원과 전국시대의 혼란이 만든 역사적 변화

김학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9/23 [10:17]

[일본문화] 기모노와 속옷에 얽힌 이야기..기모노를 입으면 속옷을 입지 않는다? ②화

오비의 비밀: 기모노의 디자인이 낳은 오해들
속옷 없이 기모노를? 일본 전통 의상에 얽힌 소문들
일본 성씨의 기원과 전국시대의 혼란이 만든 역사적 변화

김학영 기자 | 입력 : 2024/09/23 [10:17]

일본의 전통 의상 기모노는 오랜 역사와 깊은 문화적 의미를 지닌 옷이다. 그러나 이 옷에 얽힌 다양한 소문과 오해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모노에 대한 대표적인 소문 중 하나는 그 옷이 남성과의 관계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이 성씨를 장소명에서 따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기사는 그러한 소문과 오해를 해부하고 기모노가 지닌 진정한 역사적 의미를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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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픽사베이) 꽃 모양과 나비 모양을 넣어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고, 귀족층에서는 오비를 제대로 묶기 위해 하녀가 필요할 정도로 복잡한 매듭이 특징이었다    

 

기모노는 그 기원이 조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처음에는 긴 천에 구멍 하나를 뚫어 머리를 넣고 입는 단순한 형태로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허리에 띠를 두르고, 허리를 좁히는 디자인이 유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스타일은 미적 측면에서 큰 효과를 발휘하며 일본 전통 의상의 중심이 되었다. 

 

특히 에도 시대 이후, 기모노의 오비(허리에 두르는 띠)는 예술적, 실용적으로 발전했다. 오비는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 디자인 역시 시대와 함께 진화했다. 꽃 모양과 나비 모양을 넣어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고, 귀족층에서는 오비를 제대로 묶기 위해 하녀가 필요할 정도로 복잡한 매듭이 특징이었다. 이렇듯 기모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본 문화의 상징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기모노에 대한 가장 유명한 소문 중 하나는 전국시대에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여성을 대상으로 남성과의 관계를 위해 등에 이불 같은 오비를 메고 다니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이야기다. 이로 인해 일본 성씨가 대거 늘어났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 근거가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

 

실제로 기모노에 매어지는 오비는 그 크기와 복잡한 매듭 때문에 '휴대용 이불'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지만, 이는 미적 요소와 기능성을 겸비한 전통 의상일 뿐이다. 오비의 두툼한 형태는 관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매듭을 예쁘게 잡기 위해 보형물을 넣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디자인은 여성의 허리를 강조하고 품격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했다.

 

또한 기모노를 쉽게 벗기기 위해 끈 하나만 풀면 된다는 소문도 사실이 아니다. 기모노는 여러 겹의 옷을 겹쳐 입고 마지막으로 오비를 단단히 묶어야 하므로, 오히려 입고 벗는 것이 상당히 까다롭다. 기모노를 입은 상태에서 '원터치 텐트'처럼 쉽게 벗어던질 수 있다는 고증은 실제 역사와는 맞지 않다.

 

일본의 성씨가 늘어난 이유에 대한 낭설 중 하나는, 전국시대 당시 남녀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관계를 맺은 결과로 성씨가 장소명을 따온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로 인해 '다나카'나 '타케다'와 같은 성씨가 생겼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하지만 일본 성씨가 많아진 원인은 사회적, 역사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전국시대는 끊임없는 전쟁으로 인해 인구가 감소하고 가문이 분열되었다. 그 결과, 많은 가문들이 분가하면서 새로운 성씨를 만들기 시작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정부는 모든 국민이 성씨를 가지도록 법적으로 강제했고, 이는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한 관리적 목적도 포함되었다. 성씨의 증가에 있어서 지형이나 자연 요소를 반영한 예가 많아졌으며, 이는 일본 사회에서 성씨의 다양성을 크게 증가시키는 데 기여했다.

 

기모노를 입을 때 속옷을 입지 않는다는 사실도 소문을 낳았다. 남성과의 관계를 위해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실제 이유는 간단하다. 기모노 자체가 여러 겹의 천을 입는 복잡한 의상이다 보니 속옷까지 입으면 너무 덥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특히 남쪽 지방의 온난한 기후에서는 속옷 없이 기모노를 입는 것이 실용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1932년, 일본의 한 백화점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이 속옷을 입지 않은 탓에 구조를 거부한 일이 발생했다. 당시 여성들은 속옷을 입지 않은 상태로 구조대가 설치한 매트로 뛰어내리기를 거부했고,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사망했다. 이 사건 이후,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는 속옷을 입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기모노는 단순한 의상을 넘어 일본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문화적 상징물이다. 특히 기모노와 함께 착용하는 부채는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을 담고 있어, 한때 부채는 자신이 어떤 가문에 속해 있는지를 알리는 상징적 도구로 쓰였다. 이러한 부채는 오늘날에도 노, 가부키 등 일본 전통 공연 예술에서 중요한 소품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현대 문화 콘텐츠에서도 부채는 여전히 매력적인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기모노는 현대에도 그 가치를 잃지 않고 있다. 그 복잡한 구조와 매듭은 여전히 일본의 전통을 상징하며, 중요한 행사나 의례에서는 기모노 착용이 필수적이다. 비록 기모노에 얽힌 많은 소문과 낭설들이 현대에 와서도 퍼져 있지만, 이를 통해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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