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극화 시대 미국 중심 편향 외교, 경제 부작용 최소화를-북한의 위협과 도발을 이유로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감수하면서 한·미·일 공조에만 매달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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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우리 입장과는 맥이 다른 러시아·중국을 자극하는 발언에, 양국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면서 한·러와 한·중 관계가 악화한 모양새다. 윤 대통령의 노골적 ‘미국 편중’ 외교에 대한 국민의 걱정도 점점 커진다.
현 정부는 북한의 위협과 도발을 이유로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감수하면서 한·미·일 공조에만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주변국을 잠재적 ‘적’으로 돌릴 개연성이 큰 미국 중심의 편향 외교는 안보·경제 등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중·러가 북한과 군사적 밀착을 강화할 경우는 한반도 위기를 오히려 고조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도 러시아에 진출한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160여 개의 한국기업의 운명이 불안하고, 이미 최대 무역 적자국으로 돌아선 중국과의 경제 협력에도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경제 부작용 최소화를 위한 노력도 병행되어야만 한다.
지금 한국 경제에 봉착한 최고의 난제는 대(對)중국 수출 부진이다. 한국 경제의 지정학적ㆍ구조적 문제의 종합판이다. 중국은 1992년 수교 이후 30년간 우리의 달러박스로 여길 정도의 황금 시장으로 기능하며 제1의 무역 흑자국이었으나 이제 그 처지가 완전히 뒤바뀌어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 적자국이 됐다. 올해 대(對)중국 무역 수지 적자는 1월 39억 7,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같은 달 최대 무역 적자국에 올랐다. 여기에 2월 적자 11억 4,000만 달러, 3월 적자 27억 7,000만 달러를 합산하면 올 1분기 대(對)중국 무역적자 규모는 무려 78억 8,000만 달러에 이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2억 1,300만 달러 흑자국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여간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올해 들어 누적 무역적자는 사상 최대 규모인 225억 4,000만 달러인데 중국이 무려 34.96%나 차지한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1년부터 2022년까지 22년 동안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6,816억 달러의 흑자를 거뒀다. 전체 무역 흑자 7,462억 달러의 91.3%에 달한다. 이러한 주력 시장에서 탈이 났으니 한국 수출 전체가 온전할 리 없다. 총수출은 6개월 연속 감소, 무역 수지는 13개월째 적자행진이다. 4월에도 적자 추세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대로 대(對)중국 무역적자가 고착화(固着化)되는 건 아닌지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지난 4월 16일에 발표한 세계무역기구(WTO)와 한국무역협회(KITA)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수출액은 24조 9,044억 8,900만 달러인데 한국의 수출액은 6,835억 8,500만 달러로 전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2.74%에 머물러 글로벌 금융위기가 강타한 2008년 2.61%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17년 3.23%로 정점을 찍으며 ‘수출 강국 한국’이란 타이틀을 얻었지만 이런 추세로 가다간 수출을 주력 엔진으로 삼는 한국 경제가 침체 속으로 빠져들며 위태로워질 게 명약관화(明若觀火)다. 무역협회 조사 결과 세계 시장에서 수출 점유율이 0.1% 포인트 하락하면 약 14만 개의 일자리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나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시중엔 대(對)중국 수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거는 경제전문가들이 여전히 많을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도 그런 쪽에 있다. 지난해 대(對)중국 수출 감소를 대하는 정부 반응은 “코로나 대 봉쇄 탓이 크다.”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리 오프닝(Re opening │ 경제 활동 재개) 효과’가 지연된 데다 기대보다 약해지면서 수출 부진이 이어지자 입장이 많이 달라졌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최근 “중국 경제가 살아나면 시차를 두고 한국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물러섰다. 이렇듯 코로나19로 중국 정부가 적극적인 국가 봉쇄정책을 편 것이 대(對)중국 무역에 큰 차질을 가져왔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봉쇄정책 탓으로만 돌리긴 어려운 구조적 요인과 함께 매우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대(對)중국 수출 부진 원인은 단기적으론 중국 경제의 침체다. 중국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0%에 그쳤고, 석유와 석탄 등 에너지원까지 포함한 수입 증가율은 1.1%였다. 중국의 성장이 둔화하면서 화장품 등 소비재 수출이 크게 줄어들고 한한령(限韓令) 같은 각종 규제로 한국 게임 등이 중국 시장에서 대부분 밀려났다. 더 심각한 한·중 간 수출 상관관계를 약화하는 요인은 중국의 ‘미국에 맞선 전략적 자주성 견지’와 ‘디 커플링(Decoupling │ 탈동조화) 현상’ 심화에 있다. 지난 3월 28일 무역협회는 ‘최근 수출 부진 요인 진단과 대응 방향 브리핑’을 통해 “중국의 수입 둔화는 내수와 서비스 중심 성장, 생산 자급 능력 향상이 원인”이라며 “한국의 중간재를 수입해 가공 후 수출하는 상호 보완 관계가 약화됐다.”라고 진단했다.
무엇보다도 첨단 중간재와 고급 소비재 수출 증가로 중국의 무역이 고도화되면서 같은 산업군 내 유사한 재화의 수입과 수출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현상인 ‘산업 내 무역(Intra-industry trade)’이 한국과 중국 간에 높아지고 있다. 중국과의 기술 경쟁력 격차를 유지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설 자리가 급격히 좁아진다. 이를 가볍게 보거나 간과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 비상하고 엄중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막연한 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가린다. 중국의 제조업 육성 전략인 ‘중국 제조 2025’ 산업정책 이후 한ㆍ중 수출은 보완 관계에서 경쟁 관계로 급속히 전환했다. 한ㆍ중 교역 구조에 본질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중국 제조 2025’ 산업정책은 2015년 리커창 중국 총리가 제조업 활성화를 목표로 발표한 전략이다.
과거 중국 경제 성장이 제조업의 양적 성장에 의존했다면 앞으로는 혁신역량을 키워 질적 성장을 통해 2025년까지 제조업 강국 대열에 합류하겠다는 목표다. 이는 반도체와 바이오, 전기차 등 10개 분야에서 2049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최선두에 서겠다는 정책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2016년부터 막대한 산업보조금으로 핵심 부품ㆍ소재 국산화에 매진했다. 그 결과가 중국 시장에서 중국 제품의 한국산 대체, 해외 시장에서 한ㆍ중 경합으로 나타나고 있다. 개도국이 기술력을 길러 수입 대체에 힘 쏟는 것은 보편적 전략이다. 한국이 일본을 쫓아간 것처럼 중국도 열심히 한국을 추격해왔고, 달라진 무역 수지에 그것이 반영돼 있음은 당연하다. 작금의 대(對)중국 무역적자의 근본적 원인은 중국의 산업고도화에 따른 한국의 기술 우위 상실에서 시작되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이 대중 수출을 늘리고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 우위를 도모하려면 중국에서 수입이 늘어나는 분야로 수출 품목을 바꾸고 기존의 한·중 간 상호 보완적 교역을 수평적 윈-윈(Win-Win) 관계로 승화시켜야만 한다.
더 큰 본질을 가린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 제조 2025’ 산업정책이 중국 기업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고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 핵심 기술 이전을 압박해 기술을 탈취했다고 지적해 왔다. 하지만 그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내놓은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역시 보조금을 지급해 미국 기업을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과 유럽연합(EU)의 거센 반발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산(産)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원하는 북미산 최종 조립 요건에선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여기에 반도체 시설 공개와 미국 주도 반도체 연구 동참을 요구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지원금 ‘가드레일(Guardrail │ 안전장치)’ 세부 규정을 두고 기술 유출 논란이 일고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기업도 같은 조건”이라며 동문서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국익 우선 외교’를 천명하며 “공허한 이념이 아닌 실질적 국익”을 추구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중·러 마찰을 불사하며 얻은 국익이 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최근 상황을 보면,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 속에 한국이 맨몸으로 최전선에 뛰어들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보수든 진보든 역대 정권은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4대 강국과의 균형 외교를 추구해왔다. 사실 국제분쟁지역에 개입해달라는 미국의 요구는 항상 있었지만, 정부는 ‘평화’를 내세워 이를 따돌렸다. 전쟁 중인 국가에 살상 무기 제공은 법률 위반이고, 또 국내 여론이 용납하지 않는다며 미국을 설득했다. 미국과 한국의 국익은 다르다. 한·미 동맹의 목적은 국익과 안보이지, 동맹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동맹은 수단이지, 결단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연일 부르짖는 ‘가치 동맹’은 ‘실질’보다 ‘이념’에 가까워 보이는 느낌이다. 주변국과의 충돌까지 불사하며 ‘가치 동맹’을 지키려는 것이 과연 누구의 국익을 위한 것인지 모호성만 더하고 있다.
우리의 4강 외교는 ‘1 동맹 3 친선 체제’가 견지되어야 한다. 미국과는 군사동맹을 견고히 유지하고 중국, 일본, 러시아와는 친선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중국을 파트너로 대하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이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한국이 어느 한쪽을 무시하고 중국과 미국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면 그것은 위험하다.”라고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전 미국 국무장관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조언했다고 ‘김대중 자서전’은 전한다. 단언컨대 한국은 개방형 통상국가란 것만은 틀림이 없다. 수출과 대외교역이 주요 성장동력인 만큼 가능한 한 어떤 국가와의 관계도 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익이다.
당장 러시아에 법인을 두고 있는 한국기업만도 160개가 넘는다. 2016년 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갈등으로 기업들이 막대한 피해를 감수한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다극화 시대에 ‘미국 올인’ 외교가 자칫 그들의 반발로 비화하여 국익에 불안으로 작용할 소지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중국·러시아 사이 긴장이 고조되면서 점점 많은 나라가 세 강대국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으려는 외교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은 나라를 기준으로 하면 127개국이나 된다.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미·중 대결에서 비동맹을 유지하고 있는 주요국을 ‘T25’라고 명명하고 ‘거래형(Transactional) 25개국’으로 선별해냈다.
T25는 가장 큰 인도에서 가장 작은 카타르까지 다양할 뿐만이 아니라 세계 인구의 45%, GDP의 18%를 차지한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사우디 이집트 이스라엘 멕시코 칠레 등 모든 대륙에 골고루 포진돼 있다. 세계 인구의 45%, GDP의 18%를 차지한다. 경제 성장 속도가 빠른 지역이며, 한국의 중요한 교역 상대이기도 하다. 이렇듯 국제사회는 빠르게 ‘다극화 체제’로 급변해가는데, 우리 정부의 외교는 최근 미국 동맹 비중만 빠르게 높이고 있다.
갈수록 치열한 미·중 패권 경쟁과 북한의 도발 국면 속에서 한·미동맹은 한·미 양국의 국익에 크게 공여하는 중요한 토대라는 인식에는 변함없이 큰 지지를 보내고 응원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참여와 지원 없이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 비핵화와 번영, 통일이란 한국 외교의 목적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 한 발짝 더 밀착하더라도, 대중·대러 정책과 통합·조율된 좌표와 방향을 반드시 세워놔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중요성은 배가되고 있다.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이하여, 한·미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이 양국의 국익에 모두 이바지할 수 있는 전략적 방향성을 모색하는 회담이 되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국익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반드시 해야 할 말은 꼭 해야만 하는’ 숙제도 크다. 이번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는 2011년 이명박 대통령 이후 무려 12년 만인데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이후 무려 10년 만에 이루어지는 한국 대통령의 미국 의회 연설이고,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1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이후 윤 대통령이 두 번째로 맞는 국빈이다.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하여 자국의 국익만을 극대화하려는 미국을 상대로 한국의 국익을 극대화하고 상호 윈-윈(Win-Win) 하는 결과를 맺는 성공적인 정상회담이 되기를 기원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