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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역사]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아르테미스 신전의 장엄한 역사

에페소스에 세워진 달과 사냥의 여신을 위한 성전
화재와 재건: 역사 속에서 다시 태어난 신전
기독교 확산과 함께 사라진 신전의 운명

김학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9/25 [07:46]

[유럽의 역사]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아르테미스 신전의 장엄한 역사

에페소스에 세워진 달과 사냥의 여신을 위한 성전
화재와 재건: 역사 속에서 다시 태어난 신전
기독교 확산과 함께 사라진 신전의 운명

김학영 기자 | 입력 : 2024/09/25 [07:46]

[내외신문=김학영 기자] 아르테미스 신전은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웅장하고 신성한 건축물 중 하나로, 그 장엄함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손꼽힐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신전은 에페소스에 위치했으며, 그리스인들이 숭배한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헌정된 신전이었다. 아르테미스는 달과 사냥의 여신으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신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이 신전은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는 그리스인들의 신앙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들의 뛰어난 건축 기술과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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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테미스 신전의 유적은 19세기에 영국의 고고학자 존 터틀 우드에 의해 발굴되었다. 그는 오랜 연구 끝에 에페소스에서 신전의 기초와 일부 조각물을 발견했다. 오늘날 아르테미스 신전의 유적은 그리스의 중요한 역사적 유적으로 남아 있으며, 일부 발굴된 유물은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사진=유투브 기묘한밤 화면 캡쳐)    

 

아르테미스 신전은 기원전 550년경, 에페소스의 왕 크로이소스에 의해 처음으로 세워졌다. 신전의 건축은 크레타 출신의 유명 건축가 키로크로폰과 그의 아들 메타게네스가 맡아 진행했다. 이 신전은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했으며, 대리석으로 지어진 최초의 신전이라는 점에서 그 상징성이 컸다. 신전은 총 127개의 순백색 대리석 기둥으로 지탱되었으며, 각각의 기둥은 높이 20미터에 달했다. 기둥 사이사이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장식물들이 놓여 있었고, 벽면에는 다양한 신화적 장면이 새겨져 있었다. 신전의 규모는 길이 115미터, 너비 46미터에 달했으며, 그 거대한 모습은 누구나 압도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웅장한 신전은 기원전 356년, 한 방화범에 의해 불타 사라지게 된다. 이 방화범은 헤로스트라토스로, 그는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신전을 불태우는 극단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역사는 그를 기억하고 있다. 헤로스트라토스의 범죄는 그리스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으며, 많은 이들이 신의 분노를 두려워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신성한 장소였기에, 그 파괴는 단순한 화재 이상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신전은 곧 재건되었다. 에페소스의 시민들은 신전을 이전보다 더 웅장하게 재건하기로 결심했으며, 수많은 왕과 귀족들이 자금을 지원해 이를 도왔다. 특히 알렉산더 대왕이 에페소스를 방문했을 때,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신전을 재건해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에페소스인들은 이를 거절하고 독자적으로 재건을 진행했다. 새롭게 지어진 아르테미스 신전은 이전보다 더 거대하고 화려해졌으며, 그리스 문화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문화의 요소도 결합된 독특한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재건된 신전은 길이 137미터, 너비 70미터로, 그 규모가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순백의 대리석은 햇빛을 받아 신비로운 빛을 발산하며, 신전의 신성함을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그리스 세계뿐만 아니라 당시의 페르시아 제국과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 에페소스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경계에 위치한 도시였기 때문에, 이 신전은 양 문화를 통합하는 상징적 건축물로 평가받았다. 신전의 조각과 장식물들은 그리스 신화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의 문화적 영향을 받은 요소들이 함께 결합되어 있어, 그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았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고대 세계의 관광 명소로도 유명했으며, 당시 많은 상인과 여행자들이 이 신전을 보기 위해 에페소스를 방문했다. 신전의 주위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으며, 에페소스는 이 신전 덕분에 무역과 교역의 중심지로 번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르테미스 신전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 중요성을 잃어갔다. 기독교가 확산되면서 이교도의 상징이었던 아르테미스 신전은 점차 그 의미를 잃었고, 기독교인들에 의해 파괴되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우상 숭배 금지 정책에 따라, 신전은 공격을 받았으며, 결국 서기 268년 고토족의 침략으로 인해 신전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후 신전의 잔해는 다른 건축물의 자재로 재사용되었고, 신전의 자리는 폐허로 남게 되었다.

 

아르테미스 신전의 유적은 19세기에 영국의 고고학자 존 터틀 우드에 의해 발굴되었다. 그는 오랜 연구 끝에 에페소스에서 신전의 기초와 일부 조각물을 발견했다. 오늘날 아르테미스 신전의 유적은 그리스의 중요한 역사적 유적으로 남아 있으며, 일부 발굴된 유물은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고대 그리스의 종교적, 문화적 중심지였으며, 그 시대 사람들에게 신성한 공간이었다.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신전의 파괴 이후에도 그 기억은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왔다. 오늘날 그 유적은 고대 그리스 문명과 그들의 신앙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남아 있으며, 아르테미스 신전의 신비로움과 그 역사적 의미는 계속해서 연구되고 있다.

 

이처럼 아르테미스 신전은 고대 그리스의 건축 기술과 예술, 그리고 종교적 신념이 결합된 상징적 건축물로, 그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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