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칼럼 : 오직 하나뿐인 지구 ] 툰베리와 트럼프와 제인 폰다툰베리의 ‘금요일 기후변화 파업’에 폰다는 ‘금요일의 소방훈련’으로 적극 호응 1970년대 두 차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80년대 에어로빅 비디오 ‘대박’ “트럼프의 언행은 상처받은 사람의 언어이고 공허한 행동”이라고 오히려 동정
“집에 불이 났어요”툰베리가 소리치자, 제인 폰다가 ‘의용소방대’투입 “우리 집에 불이 났어요!!! 동네 사람들, 어서 와서 도와주세요!!!” 열여섯 살 소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까짓 쬐그만 불 갖고 웬 난리법석이야. 네가 끄면 되잖아.” 동네 노인정에서 장기를 두고 있던 일흔세 살 할아버지가 한마디 툭 던지고는 다시 장기판에 집중했다. 그런데 역시 노인정에서 민화투를 치고 있던 여든두 살 할머니는 “그래, 알았다.”라고 짤막하게 답하고는 화투판에 있던 다른 할머니들을 모조리 이끌고 달려 나와 소녀를 도왔다.
이 짤막한 꽁트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소녀’는 스웨덴의 ‘환경 소녀’ 2003년생 그레타 툰베리이고, ‘할아버지’는 미국 대통령 1946년생 도널드 트럼프이며, ‘할머니’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2회 수상에 빛나는 미국 배우 1937년생 제인 폰다이다. 장소는 ‘지구촌’이고, 시점은 2019년이다. ‘불이 났다’라는 뜻은 화석연료의 온실효과로 지구가 갈수록 뜨거워져 언젠가는 대재앙에 이를 것이라는 의미이다.
2018년 8월에 스웨덴 국회의사당 길모퉁이 맨바닥에서 시작한 ‘기후변화 학교 파업’이라는 1인 시위를 불과 1년 사이에 전 세계적 기후변화 환경파업운동으로 폭발시킨 그레타 툰베리는 2019년 4월 유럽의회에 초청받아 ‘지금 집에 불이 났어요.’란 주제로 연설해 유럽 지도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툰베리의 1인 시위는 곧바로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이라는 기후파업운동으로 확산돼 지난해 무려 180여 개 나라에서 7백만 명 이상의 금요일 환경 파업 시위를 촉발시켰다.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툰베리는 지난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며, 미국 시사주간지 TIME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런 가운데 위 콩트에 등장하는 툰베리-트럼프-폰다 3인의 ‘삼각지대’에는 세상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입을 마구 놀리고 싶게 만드는 일들이 속속 벌어져 ‘기후변화 장외 대결’이 세간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툰베리와 폰다가 한편이었고, 트럼프는 외톨이였다. 폰다는 “툰베리와 어린 소녀들이 나를 다시 거리로 이끌어 내었다.”고 밝혀 툰베리의 열렬한 지지자임을 강조했다. 반면에 트럼프는 사사건건 툰베리를 조롱하였다.
툰베리의 ‘금요일 기후변화 파업’에 폰다는 ‘금요일의 소방훈련’으로 적극 호응 유럽대륙에서 툰베리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자 북미대륙에 있던 폰다는 곧바로 ‘민간인 자원봉사자 의용소방대’를 결성하여 툰베리에게 호응했다. 폰다는 먼저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지 미국 할리우드의 스타들을 중심으로 금요일마다 환경 시위를 전개하는 ‘금요일의 소방훈련’(Fire drill Fridays) 운동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의 제목은 툰베리가 “우리 집에 불이 났어요!!!”라고 외친데 착안하여 ‘소방 훈련’이라고 지었다.
폰다는 지난해 10월11일 처음 시작한 이 운동을 올해 1월10일까지 3개월 동안 매주 금요일에 지속한다는 목표아래 면밀하게 조직체를 구성해 나아갔다. 그리고 거처도 캘리포니아 할리우드에서 워싱턴으로 옮겨 매주 미국 의회 의사당 앞 시위를 이끌었다. 집회 운동 기간을 1월11일까지로 한정한 것은 그 이후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으로 캠페인을 지속하겠다는 포석 때문이다.
이처럼 열렬한 활동 탓에 폰다는 3개월 동안 불법 시위,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무려 4차례나 체포되어 수갑을 차고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씩을 보내는 등 그야말로 세상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폰다와 함께 체포된 할리우드 스타 중에는 샘 워터슨, 테드 댄슨, 캐서린 키너, 로잔 아퀘트, 테일러 쉴링, 카이라 세드윅, 샐리 필드, 파이퍼 페랍모 등 웬만하면 알 만한 사람들이 많았다 베트남전쟁 반전운동으로 5차례 체포, 최근 환경운동으로 4번 체포 폰다가 경찰서를 제집 드나들 듯 하면서 어느새 ‘금요일마다 체포되는 여자’, ‘체포되기 위하여 집을 나서는 여자’, ‘나를 체포하라고 부르짖는 여자’ 등의 강렬한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폰다가 이처럼 체포, 구금된 것은 1970년 베트남전쟁 반전 시위 이후 반세기만의 일이다. 폰다가 그 화려한 인생에서 영화 활동 이외에 사회적으로 해온 일들을 살펴보면 이번에 지구환경운동을 ‘80 인생 최대의 승부처’로 겨냥한 까닭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폰다의 ‘화려한 변신은 무죄’인 셈이다.
먼저, 제인 폰다는 1982년 영화 ‘황금 연못’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헨리 폰다의 딸이다. 폰다 부녀는 이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그런데 딸은 이미 두 차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니, ‘황금 연못’에서는 그 딸이 그 아버지를 위하여 조연을 한 셈이다. 역시 배우 피터 폰다는 제인의 남동생이고, 배우 브리지트 폰다는 제인의 조카이다. 한마디로 대단한 영화인 가문이다.
1970년대 두 차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80년대 에어로빅 비디오 ‘대박’ 제인 폰다는 1971년 ‘클루트’(콜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뒤 7년만인 1978년 베트남전쟁 반대 영화 ‘귀향’으로 다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획득하여 명실상부한 세계 톱클라스의 스타로 우뚝 섰다. 그리고 몇 년 뒤 그녀는 놀랍게도 건강 체조 즉, 에어로빅 개척보급자로 화려하게 변신하여 부와 명성을 가득가득 쌓아올렸다. ‘제인폰다의 연습교본’이라는 출판물과 ‘제인 폰다의 워크아웃’이라는 에어로빅 비디오를 만들어 80년대 내내 1년에 수천만 달러씩 벌어들였다. 체질개선작업을 뜻하는 ‘workout’은 이후 기업 경영 측면에서도 ‘기업구조개선작업’을 칭할 정도로 세계적 유행어가 되었다.
한편 폰다는 1960년대 초 배우의 길에 들어서자마자 여권신장운동과 흑인인권운동 등 사회운동에 적극 나섰으며, 베트남전쟁이 본격화되자 학생들과 함께 반전운동에 앞장서 다섯 번이나 체포되었으며, 감옥에 가기도 하였다. 특히 1972년 베트남 전쟁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북베트남(월맹)의 수도 하노이를 몰래 방문하여 포병부대에서 병사들과 어울려 반전 메시지를 전하였으며, 미군 포로들을 만나기도 해 전쟁의 한가운데서 뜨거운 이슈메이커로 움직였다. 이로 인해 폰다에 대하여서는 찬성과 반대 여론이 물 끓듯 하였다. 나중에 폰다는 그때의 행동이 어리석었다고 반성하였다. 이 같은 일련의 행동으로 인해 폰다는 한동안 ‘하노이 제인’으로 불리었다.
이처럼 제인 폰다는 배우라는 본업 이외에 여권운동, 흑인민권운동, 반전운동, 에어로빅운동, 환경운동 등등 그야말로 ‘운동 전문가’로 화려한 변신을 거듭하였다. 그러면서 2020년 새해 벽두에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가 미군의 드론 폭격으로 사망하면서 미국과 이란 사이에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자 미국에서는 다시 반전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는데, 폰다는 4일(현지 시간) 워싱턴 집회에서 “젊은이 여러분들이 태어날 때부터 수행해온 전쟁은 모두 석유 때문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석유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환경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고 정면으로 트럼프를 공격하였다.
“트럼프의 언행은 상처받은 사람의 언어이고 공허한 행동”이라고 오히려 동정 이에 앞서 폰다는 지난해 여러 차례 트럼프가 툰베리를 조롱하고 모욕하면서 끝내는 자신의 선거공약에 따라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11월 4일 유엔에 공식으로 통보하자 더 이상 트럼프에게 참을 수 없다는 뜻을 강력히 나타내었다. 폰다는 “그레타에게 그런 짓을 하는 것은 너무나 공허한 행동이며,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이입과 연민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트럼프의 그런 행동을 싫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같은 행동이 정신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언어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오히려 트럼프에게 연민의 정을 보낸다는 말을 하였다. 나아가 “우리는 정신적으로 상처받은 사람을 싫어해서는 안 되지만, 트럼프에게 변화가 없을 것 같아 그게 더 걱정”이라고 거꾸로 대인(大人)의 풍모를 풍겼다.
폰다가 진심으로 우려스럽다는 뜻으로 트럼프를 비판한 데에는 열여섯 살 소녀 툰베리에 대한 일흔세 살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답지 못한 일련의 언행이 원인으로 분석되었다.
지난해 9월 유엔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변화로 인해 청소년들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내용으로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명연설을 한 뒤 도널드 트럼프대통령은 트위터에서 “툰베리는 (그녀의 연설 내용과는 딴판으로) 아주 행복한 어린 소녀로 보인다. 빛나고 놀라운 장래가 있을 것이다.”라고 조롱했다. 그러자 툰베리는 자신의 트위터 소개 문구를 ‘빛나고 놀라운 장래가 보장된 행복한 어린 소녀’라고 바꾸어 놓아 트럼프를 멋진 ‘되치기 한판’으로 눌러버렸다. 이에 툰베리에게 세상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한편 그때 유엔기후환경정상회의에 트럼프는 당초 다른 일정 때문에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었으나, 평소 그의 행동답게 깜짝 방문하여 15분가량 머물렀는데 툰베리의 연설 직전에 회의장을 떠나 툰베리의 연설을 직접 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툰베리가 “어른들은 우리 청소년들의 미래를 빼앗아 버렸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라면서 세계의 정상급 지도자들 앞에서 목청을 높인 것을 나중에 알고 툰베리를 조롱하는 트윗을 날렸던 것이다.
툰베리와 트럼프의 두 차례 ‘트윗 대결’은 툰베리의 판정승 툰베리와 트럼프의 ‘트윗 대전’은 결코 1회전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세계적으로 저명한 미국 시사주간지 TIME의 ‘올해의 인물’로 툰베리가 선정되자 트럼프는 되게 심술 난 것이 분명해 보이는 트윗으로 또다시 툰베리를 조롱했다.
트럼프는 이때 “너무 웃긴다. 그레타는 (어른들을 혼내려 하지 말고, 별거 아닌 기후변화 문제로 핏대 올리는) 자신의 분노조절 문제에 더 신경 써야 한다. 그리고 친구와 좋은 옛날 영화나 보러 다니는 게 좋다! 진정해 그레타, 진정해!”라고 트윗을 날렸다.
트럼프는 자신이 TIME ‘올해의 인물’로 선정될 것을 내심 기대하였는데, 막상 57살 아래 어린 소녀에게 밀려나자 평정심을 잃고 분풀이를 한 것이라는 지적이 대세를 이루었다. 특히 TIME ‘올해의 인물’ 92년 역사에서 툰베리는 최연소 선정자라는 점이 트럼프의 심기를 더 건드렸을 것으로 분석됐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는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의 비핵화 협상 성과를 내세워 공개적으로 자천타천 노벨평화상 후보를 거론해 왔는데, 지난해 갑자가 툰베리가 노벨상 후보로 급격히 떠오르자 경쟁심이 생기기보다는 자존심에 큰 손상이 갔을 것으로도 풀이된다.
툰베리와 트럼프, 노벨평화상 후보와 ‘올해의 인물’ 후보에서 두 차례 격돌 또 이뿐만이 아니다. 평소 “지구 온난화 위기론은 허구이자 속임수”라고 강변하면서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사용에 근거한 미국 산업 발전을 세계 환경문제보다 우선시하는 미국 우선 정책(America First)을 지속적으로 펼쳐온 트럼프는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한구석에서 나타난 소녀가 세계의 기후환경 문제를 지구촌 최대 이슈로 떠올려 놓자 속으로는 엄청 당황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트럼프는 4년 전 미국 대통령선거 때 지구 화석연료 사용 문제를 얽매고 있는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공약하였고, 실제로 지난해 가을 탈퇴를 공식 선언하였는데 열여섯 살 ‘풋나기’ 소녀가 미국 대통령의 정책 방향에 정면 승부를 걸어온 셈이어서 속으로 부아가 치밀어 올랐음이 분명하다. 트럼프는 올 가을 대선에서 대통령에 재선될 것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이처럼 2019년 하반기에 미국 대통령과 스웨덴의 ‘환경 소녀’ 사이에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설전이 오간 국면에서 연말에 다시 한 번 툰베리의 결정타가 터지어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툰베리는 12월 31일 영국 BBC 방송의 한 해를 정리하는 환경특집 프로그램에 나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기후변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툰베리는 그 이유를 “트럼프는 (기후변화) 과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의 말도 듣지 않는데, 그렇다면 그가 (10대 소녀인) 내 말까지 듣겠는가”라고 간단히 정리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아마도 전운(戰雲)이 감도는 이란과의 문제로 다른데 정신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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