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대신 비 내리는 날이 많아지는 히말라야산맥‘세계 3대극지’이면서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에도 갈수록 자주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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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NBL)와 미시간대학 등 미국 합동 연구진은 세계적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 최근호에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히말라야산맥 일대에서는 특히 여름철에 아주 높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눈보다 비가 더 많이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강설량보다 강우량이 더 많다는 얘기이다. 지구온난화가 본격화되기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이 연구 결과는 영국 BBC 방송을 통해 전세계에 전파돼 뜻있는 사람들에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연구진은 전 세계 산악지역의 강우량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해발 8848m로 세계 최고봉인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산을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에서 강설량(눈)과 강우량(비)을 측정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인 만큼, 연구진은 해발 5364m의 정상 남쪽 네팔 베이스캠프에 기상관측소를 차리고 실제 측정 작업을 했다. (정상 북쪽 베이스캠프는 해발 5150m의 중국 지역)
올해 6월 1일부터 8월 10일까지 71일 동안 베이스캠프의 강수량은 245.5㎜였는데, 이 가운데 무려 75%가 빗물, 즉 강우량이었다. 나머지는 비와 눈이 섞인 진눈깨비이거나 눈이 내린 경우였다. 지난해 6~9월 집계된 강수량에서는 강우량(비)이 차지하는 비율이 32%에 불과했다. 또 2021년과 2020년 비슷한 기간에도 그 비율은 각각 43%, 41%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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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산맥을 맞대고 있는 인도 북부 지역 우타라칸드주의 기상청장 비크람 싱은 이 같은 연구 결과와 관련해 BBC 방송에 나와 “우타라칸드주 산간 지역에서는 강설 빈도가 확실히 감소하고 강우 빈도가 늘어났다”면서 “산악지역일지라도 고도가 낮을수록 몬순(우기) 때에 폭우가 쏟아지는 일이 잦아졌고, 홍수도 자주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에는 눈 녹은 물과 얼음 녹은 물이 강물을 이루었는데, 이제는 빗물이 모여 강을 이루는 형국”이라고 촌평했다.
이번 ‘네이처’ 연구 결과 발표에 앞서 지난 2019년 유엔(UN)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특별보고서도 “상대적으로 고도가 낮은 산악지역에서 지구온난화에 따라 강설량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이 보고서의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샤뮤엘 모린 프랑스국립기상연구센터 전무이사는 “상대적으로 고도가 높은 산악지역일지라도 사계절 내내 비가 내리는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고 밝혔었다.
이처럼 히말라야 일대에 비 내리는 날이 많아지는 것은 ‘0도 등온선(等溫線)’이 지구온난화 탓에 점점 더 높은 고도로 올라가고 있기 때문으로 설명된다. 비와 눈이 서로 바뀌는 지점인 ‘0도 등온선’은 일기도에서 온도가 같은 지점을 죽 연결해 이은 선이다. 히말라야 산간 지역에서는 지구온난화가 전 세계 평균보다 3배가량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히말라야 강우량은 점점 더 증가할 것이라고 ‘네이처’ 연구 결과는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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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구 평균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바다와 내수면의 수증기 증발량은 15%가량 증가하는데, 이는 곧 강우량의 증가와 직결된다. 특히 습한 공기는 높은 산에 부딪힐 때 눈이나 비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눈 대신 비 오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 연구팀의 옴바디박사는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고지대 산악지역이나 그 하류에 살고 있다”면서 “이들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극단적 폭우 현상 증가의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설량보다는 강우량의 증가가 홍수와 산사태 등 자연재해의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또 히말라야 지역 이외에도 지구 북반구 전반으로 고지대 지역의 1950~2019년 기후관측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거의 모든 산악지역에서 눈 대신 비가 내리는 현상이 뚜렷해졌다고 밝혔다. 히말라야 지역 외에 특히 북미 태평양 쪽 산악지대인 요세미티국립공원과 시에라네바다산맥, 캐나다~캘리포니아 해안산맥 등의 극단적 강우 현상 위험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지구온난화로 더 따뜻해진 북동태평양의 바닷물에서 올라온 수증기가 이들 바다 가까운 산악지역에 부딪혀 눈 대신 비로 쏟아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한편, 히말라야산맥은 ‘세계의 지붕’이라는 말 그대로 지구상 7개 대륙 그 어느 곳보다도 더 험하고, 더 높은 험산(險山) 준령(峻嶺)을 자랑한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비롯하여 8천m 이상의 고봉만도 14개나 되는데, 지구상에서 8천m가 넘는 산들은 오로지 여기 밖에 없다.
흔히 히말라야산맥이라고 하면 동쪽으로는 중국 윈난성과 미얀마로부터 서쪽의 네팔 및 인도 북부까지 장장 2,500㎞가 넘는 산맥을 말한다. 여기에 서북쪽으로 더 나아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및 중국 신장웨이얼지구를 아우르는 카라코람산맥을 더해 대(大)히말라야(Greater Himalaya)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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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라는 말은 고대 인도 힌두교도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범어 梵語)로 ‘눈’을 뜻하는 ‘히마’(hima)와 ‘사는 곳’을 뜻하는 ‘알라야’(alaya)의 합성어로서 말 그대로 ‘눈이 사는 곳’을 일컫는다. 그러하니 남북극을 제외하고는 지구상에서 ‘눈과 얼음’이 가장 많다. 눈 없는 히말라야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런데 인간이 초래한 기후 위기, 즉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히말라야의 눈과 얼음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따뜻한 날씨에 녹고, 눈 대신 내리는 비에 녹아 바위와 자갈투성이의 표층을 점차 드러내고 있다. ‘0도 등온선’이 점점 산꼭대기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협곡마다 장엄하게 미끄러져 내리던 빙하도 점점 뒤로 물러난다. 이른바 ‘빙하후퇴’(氷河後退)의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