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재앙] 세상에서 가장 높은 쓰레기장, 에베레스트(8848m)장기간의 등반 과정에 쓰였던 용품들의 무게를 줄이려 그대로 버리고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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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대륙과 중국대륙 경계에 동서 길이 2400㎞(한반도 길이 1,000㎞), 남북 폭 200~400㎞로 장대한 산맥을 이루고 있는 히말라야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범어.梵語)로 당초의 뜻이 ‘눈의 나라’(hima+alaya)이다. 한마디로 설국(雪國), 곧 만년설의 땅이다. 지구 지각판의 이동 과정에서 인도대륙과 유라시아대륙의 충돌에 따라 대략 8백만 년 전부터 해저에서 해수면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한 히말라야산맥은 적어도 인류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8백만 년 만에 처음으로 ‘산 아래 생물체’에게 등정(登頂)을 허용한 것이다. 다만, 히말라야가 해수면 위로 융기(隆起)하기 전에 바다에서 살았던 조개들과 산호들의 화석이 오늘날 에베레스트산에서 발견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이토록 8백만 년 동안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땅이었던 에베레스트가 힐러리 등정 이후 70년 만에 볼썽사나운 쓰레기장으로 변해 가고 있어 뜻있는 사람들을 매우 안타깝게 하고 있다. 사람에게 한 번 발길을 허용했더니, 끝내는 ‘사람의 배신’이 에베레스트를 멍들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 어디를 가든지 필연적으로 쓰레기를 남기게 되어 있어서 에베레스트가 그 인간의 쓰레기에 몸살을 앓는다. 인간이 대자연 순백(純白)의 설산에 버린 쓰레기와 배설물에다가 대자연이 눈과 얼음 속에 버린 인간의 사체(死體)까지 더해져 에베레스트는 거대한 쓰레기 냉동고로 변해 가고 있다. 썩어서 분해되지도 않고 냉동 상태 그대로 차곡차곡 눈과 얼음 속에 쌓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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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첫 등정 70주년을 맞아 에베레스트가 다시 세상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9차례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네팔 셰르파 밍가 텐지는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내가 본 것중 가장 더러운 베이스캠프”라며 쓰레기로 가득찬 에베레스트 정상 아래 베이스캠프 일대의 모습을 낱낱이 공개했다. 이 사진들은 곧 세계의 주요 언론들에 보도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사진들을 보면 우선 베이스캠프 숙소로 사용되었던 텐트가 각양각색의 형태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광경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등반가들이 하산 길의 짐 무게를 줄이려고 일부러 버리고 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셰르파 밍가 텐지는 “등반대가 자신을 후원했던 기업체의 로고가 있는 부분은 잘라서 다시 가져가고, 후원 업체를 알 수 없는 텐트 쓰레기들이 대부분이었다”라고 전했다. 그는 또 “텐트 외에 산소통, 그릇, 숟가락, 위생 패드, 옷 등 오랜 등반 과정에 필요했던 생활용품들은 마치 도회지의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에베레스틀 감시하는 네팔 정부는 산에 버려지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2014년부터 1인당 미화 4000달러 가량의 ‘쓰레기보증금’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나 그 실적은 매우 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출발 전 해당 금액을 낸 뒤, 하산 때 일정량의 폐기물을 수거해 오면 다시 보증금을 돌려주는 방식이지만 장기간의 등반 일정에 지친 사람들이 짐 무게 때문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관리하는 공무원들이 쓰레기 투기를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수거해 오는 일도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에베레스트의 쓰레기는 그야말로 ‘처치 곤란’의 형편일 뿐이다.
네팔 정부는 힐러리의 첫 등정일인 5월 29일을 ‘에베레스트의 날’로 지정하고 해마다 청소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2019년에는 11톤, 2021년에는 27톤, 지난해에는 33톤의 쓰레기를 수거했다. 그러나 이처럼 수거량을 늘려가고 있음에도 버려지는 쓰레기량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게 현실적인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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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에베레스트의 쓰레기에는 등반객들이 버린 등산 장비 및 음식물, 그리고 배설물 등 실로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거기에 추가되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사람의 사체(死體)이다. 정상 도전 과정이나 하산 길에 사고나 신체적 결함 등 갖가지 원인으로 등반객이나 셰르파가 숨지는 일이 해마다 봄철 등반 시즌이면 마치 통과의례(通過儀禮)처럼 다수 발생한다.
히말라야산맥 등정 관련 기록을 정리하여 공개하는 ‘히말라야 데이터베이스’와 에베레스트 등반 허가 당사국인 네팔 당국에 따르면 올해 봄철 등반 시즌에 에베레스트 원정에 나선 산악인 가운데 5월 말까지 이미 17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12명은 사망 사실이 확인됐고 나머지 5명은 5일 이상 연락이 끊겨 사망한 것으로 추정 집계됐다.
이 사망자 수는 기존 연간 최다 사망자 기록인 2014년의 17명과 이미 맞먹는 수치이다. 정상 일대에 ‘사람교통체증’을 일으키면서 하산 시간이 길어져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었던 2019년에도 에베레스트 등정 사망자는 올해보다 적은 11명이었다. 이 같은 수치는 물론 히말라야산맥 전체 등반 사망자 수와는 전혀 별개로, 에베레스트에 국한된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5월 말 사망자가 이미 17명이어서 초여름 등반사고까지 예상하면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에베레스트 등반은 혹한과 강풍 및 폭설이 누그러지는 5월과 인도양 몬순(계절풍)이 지나간 뒤 10월 무렵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는데 아직 시즌이 끝난 게 아니어서 사망자는 더 나올 수 있다. 따라서 올해 에베레스트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날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에베레스트 등정은 숙명처럼 사망자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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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망자 가운데 일부는 끝내 하산하지 못하고 눈 속에, 얼음 속에 반영구적으로 갇히어 에베레스트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결국 ‘쓰레기’로 남게 된다. 안타깝게도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 이래 70년 동안 이 같은 ‘인간사체쓰레기’는 해마다 빙설(氷雪) 속에 차곡차곡 쌓여왔다. 인간의 에베레스트 도정이 지속되는 한 이 같은 일은 거듭될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일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달 30일 “올해는 인간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지 70년이 되는 해이면서, 등반 과정 중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최악의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금세기 들어 에베레스트 등반 중 사망 인원은 연평균 5~10명 정도였는데 최근 수년간 사망자가 급증하는 추세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전문가들은 에베레스트 사망자 수가 늘어난 주요 원인으로 네팔 당국의 등반 허가 남발과 기후변화에 따라 변덕스러워진 날씨 등을 꼽고 있다. 네팔 정부는 올봄 등반 시즌에 5월 말까지
역대 최고인 479건의 등반 허가를 60여 개 나라의 등반객들에게 내줬다. 초여름 등반 신청자까지 합하면 올해 900여 명이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등반 허가 수수료는 1인당 1만2천파운드(한화 약 2000만원)로 고액이어서 네팔 정부의 주 수입원이다. 이에 따라 등반 허가가 갈수록 늘어나고, 사망자 수 역시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또 에베레스트 등정의 패턴이 변한 것도 사망자 증가의 한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등반 허가 건수가 늘어나면서 숙련된 전문 산악인 속에 어정쩡한 미숙련 등반객들이 섞여 사망 사고를 부추긴다고 한다. 게다가 지구온난화의 결과로 강도가 약해진 빙하가 녹으면서 사망 사고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더해진다.
이래저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주변에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와 자연의 위력 앞에 쓰러져간 사람들의 ‘인간사체쓰레기’가 차곡차곡 쌓여 간다. ‘지구상에서 하늘과 제일 가까운’ 에베레스트의 먼 훗날 모습은 과연 어떠할지, 상상하기 싫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