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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림사건' 피해자들 31년만에 무죄 확정 판결

안상규 | 기사입력 2012/06/15 [15:47]

'학림사건' 피해자들 31년만에 무죄 확정 판결

안상규 | 입력 : 2012/06/15 [15:47]


전두환 정권 시절 대표적 공안 사건인 '학림사건' 피해자들이 31년만에 무죄를 확정 판결받았다.

이에 따라 이태복(62)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민주통합당 민병두(54) 의원, 최경환(53)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 최규엽(59) 새세상연구소장, 엄주웅(54)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상임위원 등 사건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반국가단체를 조직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기소돼 7년4개월간 복역한 이 전 장관 등 24명에 대한 재심사건 상고심에서 무죄 및 면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의자신문조서가 임의성 없는 자백에 해당해 증거능력을 부정하고,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또 계엄법 위반과 관련해 "1979년 12월12일 군사반란과 1980년 5월18일 광주민주화항쟁을 전후해 '신군부'가 행한 일련의 행위는 내란죄로서 헌정질서 파괴 범죄에 해당한다"며 "이를 저지 또는 반대한 것은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구 집시법에서 '현저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집회 또는 시위' 부분을 삭제한 것은 종전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반성적 고려에 의한 것"이라며 "범죄 후 형이 폐지된 경우에 해당해 면소판결한 것도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 전 장관 등 피해자들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1982년 이른바 '쪽지재판'을 30여년이 지난 오늘이라도 바로 잡은 것은 한국사회의 정의와 법치주의를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적극 환영했다.

이 전 장관은 "개인적으로 고문경관 이근안과 사형을 구형한 안강민 검사 등을 이미 용서했다"면서도 "최종영, 황우여 판사 등은 사회 지도층인 만큼 군사정권의 시녀 노릇을 했던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와 화해의 큰 길로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선근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지난 30년간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면 관련 판사들이 진솔하게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반성과 사과를 요구했다.

유동우 '어느 돌맹이의 외침' 저자도 "사필귀정"이라며 "그동안 우리의 고통을 외면해 왔던 사법부가 지금이라도 사죄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 전 장관 등은 1981년 6월 민주운동과 노동3권 보장, 최저임금제 도입 등을 목적으로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과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민노련)을 결성해 활동했다는 이유로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가 19~44일간 불법감금된 채 고문 등 가혹행위에 시달리며 거짓자백을 강요당했다.

당시 서울지검은 이들 중 26명을 국가보안법 등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은 25명에 대해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했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이 사건을 국가가 조작한 대표적 공안사례로 규정하고 "국가가 피해자와 가족에게 사과하고 재심 등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으며, 법원은 이씨 등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재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2010년 12월 국가보안법과 계엄법 위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집시법 위반 혐의에 대해 면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전 장관 등은 강제연행된 뒤 불법구금 상태에서 검찰의 협박과 회유로 거짓 자백한 것으로 보이고, 전민학련과 전민노련은 민주화운동을 위한 단체일 뿐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결성된 반국가단체가 아니다"고 판시했다.

또 "이 사건은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이 국가보안법을 악용해 정당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불법수단을 악용해 반국가단체로 둔갑시킨 것"이라며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국가와 사법부가 범한 과오에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군사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을 반국가단체 조직범으로 몰아 처벌한 사건이다.

'학림(學林)'은 전민학련이 첫 모임을 가진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유래됐으며, 당시 경찰은 '숲(林)에서 무성한 학생운동 조직을 일망타진했다'는 의미를 이 용어를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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