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그룹은 대한민국 주류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기업이었다. 특히 소주 시장에서 '진로 소주'는 오랜 기간 사랑받으며 국민 소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진로 그룹은 창립 이후 여러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오히려 위기를 맞았다.

특히 맥주 사업에서의 실패는 그룹 전체의 운명을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80년대 중반, 장진호 회장은 소주 외에도 다양한 사업에 진출하여 그룹을 키우고자 했다. 백화점 유통, 건설업, 중공업 등 다양한 산업에 투자하면서 사업 반경을 넓혀갔지만, 이는 자금 부족과 내부 갈등을 야기했다. 맥주 사업에서도 진입 장벽이 높고,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드는 장치 산업의 특성상 진로 그룹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급기야 1997년, 진로 그룹은 파산 위기에 몰리며 화의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외부 경제 상황의 악화와 내부 경영의 부실이 겹쳐진 결과였다.

진로 그룹이 몰락하게 된 주요 요인 중 하나는 과도한 사업 확장과 가족 간의 갈등이다. 그룹 창업자의 후손들 사이에서 경영권을 두고 갈등이 발생했고, 이는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장진호 회장이 취임한 후, 그는 그룹을 더욱 공격적으로 확장하려 했으나 이는 그룹의 자금난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맥주 사업의 실패는 그룹의 재정적 위기를 가속화했다. 장치 산업 특성상 초기 자본이 많이 필요했으며, 경쟁이 치열해진 국내 맥주 시장에서 공급 과잉과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진로 그룹의 이러한 재정 문제는 결국 법정 관리로 이어졌으며, 장진호 회장은 비리와 분식회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으며 그룹의 몰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진로 그룹이 몰락하는 와중에도, 진로 소주는 여전히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자랑했다. 1998년 출시된 '참이슬'은 진로의 대표 제품으로서 대한민국 소주 시장에서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특히 참이슬은 기존 소주의 독한 맛을 줄이고, 깔끔한 맛을 강조하며 새로운 소비자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참이슬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제품의 차별화와 브랜드 마케팅 전략이었다. 당시 IMF 외환위기로 인해 소비자들은 가격에 민감해졌지만, 참이슬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높은 품질을 유지하며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또한 광고 모델로 당대 최고의 연예인들을 기용하며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고, 이는 소주 시장에서 참이슬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만들었다.

진로 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에도 참이슬은 꾸준히 판매량을 늘려갔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 소주 시장에서 참이슬의 점유율은 꾸준히 상승했으며, 진로 그룹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참이슬은 국내 소주 시장의 선두를 유지했다.

이는 참이슬의 품질 관리와 소비자 요구에 맞춘 제품 개발 덕분이었다. 참이슬의 성공은 진로 그룹의 경영 위기 속에서도 브랜드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또한 참이슬의 부활은 브랜드 관리와 마케팅 전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진로 그룹의 몰락은 지나친 사업 확장과 내부 갈등, 외부 경제 상황에 대한 무신경이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참이슬의 성공은 기업이 위기를 겪더라도 핵심 제품이 지속적인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오늘날 진로 소주, 특히 참이슬은 여전히 대한민국 주류 시장에서 강력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그룹의 몰락 이후에도 브랜드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