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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보수의 전유물이 아니다....보수의 자유는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야 진정 민주 사회이다-보수에서 자유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다

김성우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 | 기사입력 2021/07/02 [06:18]

자유는 보수의 전유물이 아니다....보수의 자유는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야 진정 민주 사회이다-보수에서 자유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다

김성우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 | 입력 : 2021/07/02 [06:18]

 

우리나라에서는 이승만의 자유당으로 시작해서 군사 정권의 자유 민주주의를 거쳐 뉴라이트의 신자유주의까지 자유는 언제나 보수의 전유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4·19 혁명 시절부터 자유와 민주는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진보적인 학생과 시민이 외치는 구호였다.

김성우 교수
김성우 교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치적 민주화가 성숙해가고, 동시에 1990년 후반 이후로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며 불평등이 심해지자 자유와 민주 대신에 주로 민주와 정의, 또는 평등이라는 구호가 진보를 대표하는 단어가 되었다.

 

물론 보수와 진보가 사용하는 자유라는 말은 같이 쓰지만, 그 의미의 맥락은 전혀 다르다.

보수에 자유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자유주의 창시자인 존 로크의 재산권으로서의 자유,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가 제시한, 이기심으로 발동되는 시장의 자유이다.

다른 하나는 냉전 시대에 사회주의 체제인 인민 민주주의와 체제 경쟁을 벌인 자본주의 체제의 자유 민주주의라는 뜻에서의 체제 선전용 자유이다.

보수의 자유는 한마디로 내 것은 내 마음대로 소유하고 처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마스크 상인이 팔 수 있는 자유와 제약회사의 백신에 관한 지식재산권 등이 실제 사례들이다.

 

그런데 코로나 19 팬데믹과 같은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방역 필수품인 마스크 가격을 통제할 수밖에 없고, 가격을 낮추어 빠르게 전 세계 시민들에게 백신을 공급하려면 제약 회사의 지식재산권을 한시적으로라도 유예하지 않을 수 없다.

전체 시민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자본가들의 돈벌이의 자유보다 모든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회사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스크 회사와 제약 회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마스크 보급과 백신 개발의 속도를 높이려고 한다. 국민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못지않게 봉쇄를 빨리 풀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는 것도 긴요하다.

이와 같이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경제를 떠받치려는 것은 모든 시민의 이익에 부합한다. 이와 같이 공익을 위해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모델이 복지 자유주의 또는 수정 자본주의라고 불린다.

여기서 자유는 시장에서의 강자의 자유를 제한해 모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자유가 보통 중도의 자유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당이 부재한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진보의 자유가 된다. 이런 이유로 자유 대신 평등이라는 말이 더 많이 사용된다.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야 진정한 자유로운 사회라고 실존주의자 장폴 사르트르는 외쳤다. 그래서 그는 실존적인 개인의 자유를 주장했으면서도 공산주의 혁명에 동조했다.

이러한 자유 모델은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체제를 꿈꾼 헤겔의 이성 국가와 각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이 되는 연합을 주장한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에서 기인한다. 이것이 진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해방으로서의 자유이다. 노동 해방, 민족 해방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처럼 자유는 보수의 자유, 중도의 자유, 진보의 자유가 있다. 이는 유럽적인 이념 스펙트럼에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에서는 냉전 시대의 체제 경쟁과 안보 논리에 의해 유럽식의 진보는 설 자리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중도가 진보를 아울러왔다.

더군다나 동유럽 현실 공산주의 체제 무너진 이후에 드세진 신자유주의 시대에 보수는 자유를 공세적으로 외치고 우리나라와 미국의 진보는 방어적으로 민주 또는 평등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자유는 보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마치 보수는 기회의 평등을 전제하고, 중도는 공정한 평등을 주장하고, 진보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정의로운 평등을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평등도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유와 평등은 쌍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자유와 평등은 서로 대립한다고 말하는 것은 대단히 피상적인 논리에 불과하다.

 

시장의 자유와 기회의 평등이 능력주의의 기초가 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보수는 재산의 자유, 시장의 자유처럼 자유만을 강조하고, 여기에 대척점에 서서 진보는 평등만을 강조한다. 원래 진보는 모든 시민의 평등한 자유를 추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보수가 주장하는 자유는 소수는 자유롭고 다수는 부자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혼자만 자유로운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이고 자유 시장 경쟁에서 이긴 소수의 승자만이 자유로운 사회는 다수의 패자가 억압되고 착취 받는 부자유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소수만 자유로운 사회는 진짜 자유 사회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려면 착취하거나 타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소수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횡포이다.

마스크 안 쓸 자유도 횡포이며 비싸게 백신을 파는 자유도 횡포이며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희생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자유도 횡포일 뿐이다.

진보도 자유를 말해야 한다.

보수의 자유는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 대신에 모든 사람의 평등한 자유가 중요하다고! 이런 사회가 자유민주 사회라고!

원래 그리스 민주주의의 기원인 이소노미아가 평등한 자유를 의미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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