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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사랑으로 다뜻한 겨울을....

안상규 | 기사입력 2009/12/15 [12:19]

김치사랑으로 다뜻한 겨울을....

안상규 | 입력 : 2009/12/15 [12:19]


19년간 정으로 나눈 김치사랑

- 이웃집 고아 성인될 때까지 십수 년 돌보는 선행에 주위 감동 -

 

동구 용전동에는 아는 사람만 안다는 맛있는 김치가 있다. 40년도 훌쩍 넘는 오랜 세월을 용전동에서 살아왔다는 이명재(65) 씨가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나누는 “이명재표 김장김치”가 바로 그것이다.

이 씨는 벌써 19년째 홀로 지내시는 동네 어르신들께 남몰래 김장 김치를 나눠드리고 있다. 배추가 비싸 ‘금치’라는 소리가 나올 때에도 한해도 빠뜨리지 않고 매년 이웃들과 김장김치를 나눠왔다. 이씨의 김장김치 나누기는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는 봉사단체의 그것과는 다르다. 순수하게 이씨 개인의 힘으로 매년 김장을 담가 이웃들과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난달 말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김장김치 200포기를 담갔다. 올해는 사돈댁에서 배추를 보내주어 넉넉히 담가 여러 어르신들께 나누어드릴 수 있었다며 흐뭇해하는 이씨. 어르신들이 번번이 얻어먹기 미안하다고 마다하시는 바람에 오셔서 거들어달라는 핑계로 나눠드렸단다. 막 버무린 겉절이로 점심상까지 차려내어 소박하나마 동네 노인잔치가 열리기도 했다.

한해 평균 김장 비용은 30~40만원. 젊은 시절부터 파출부 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왔던 어려운 형편에 한두 해도 아니고 19년 동안 그 비용을 어찌 감당했을까. “내가 어렵게 살다 보니 홀로 계신 어른들은 얼마나 더 힘드실까 싶어 우리집 김장하는 김에 한 포기씩만 더해서 나누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뿐이다. 나누려고 마음먹으니 없는 형편에도 나눌 것이 있더라”며 말을 아꼈다. 남들 나눠주는 거라 대충 담갔다고 생각하면 오산. 배추도 마늘도 최상품이고 생새우도 잔뜩 갈아 넣어 맛이 그만이라며 자랑이다.

이씨의 선행은 이 뿐이 아니다. 성치 않은 몸으로 네 살짜리와 돌쟁이 어린 두 딸을 데리고 힘겹게 살던 옆방 아저씨가 83년 갑자기 사망하자 졸지에 고아가 된 두 아이를 성인이 될 때까지 십수 년간 정성껏 돌봐왔던 사실이 알려져 주위에 감동을 주었다. 또 2002년에는 홀로 지내시던 이웃 어르신이 돌아가시자 친정엄마를 위해 준비해두었던 수의를 선뜻 내어놓아 가족들로부터 원망 아닌 원망을 듣기도 했다.

삼남매를 모두 출가시킨 지금도 이씨의 집은 조용할 때가 없다. 아무도 없는 집에 우두커니 앉아 계시지 말고 놀러 오시라는 이씨의 성화에 모여든 어르신들로 동네 사랑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르신들과 함께 나누는 김장김치도, 주변 이웃을 돌봐왔던 것들도 모두 내가 좋아서 한일인데 무슨 봉사냐”며 손사래를 치는 이씨는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것을 보면 내가 더 흐뭇하다. 이웃들과 나눌 것이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 할 생각”이라며 미소지었다.

추워지는 겨울날씨에 이같은 사랑만 있다면 따뜻한 봄날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전/ 안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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