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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에 있어 부끄러운 '시인' 이란 이름

정종암 | 기사입력 2011/11/27 [02:09]

작금에 있어 부끄러운 '시인' 이란 이름

정종암 | 입력 : 2011/11/27 [02:09]

작금에 있어 부끄러운 '시인' 이란 이름

요즘은 시인(이하 수필가 포함)들이 길에 밟힐 정도로 넘쳐 난다. 전국민이 작가인 듯한 '작가공화국' 을 연상케 한다.

3년 연속 신춘문예 본선에 오르고도 번번히 실패하다가 125편이나 쓰고는 겨우 등단한 필자 역시 시인이란 반열에 있는 게 사실이지만‘부끄러운 시인‘ 이란 이름일 뿐이다. 등단시 언론의 조명을 받을 때에는 멋 모르고 잠깐 우쭐했던 것조차 부끄럽다.


금년부터 주변의 두 남녀로부터 '시인' 이 되고 싶다는 의뢰를 받아 작품력이 되면 심사하겠다고 다섯 편 이상을 보내라고 했지만, 다들 두 편밖에 보내오지 못했다.

그들은 더 이상의 작품이 없다면서 평하는데 너무 깐깐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곳에서는 등단시켜 준다고 아우성인데 왜 그러냐는 식이다.


그러나 둘은 얼마 전 '시인' 이 되어 있었다. 며칠 교육에 누군가 자기 시를 고쳐서 등단시켜 주더란 것이다.

책값, 심사비 명목으로 사례비를 꽤 지불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함에는 철저한 검증도 없은 게 뻔하다. 모자란 듯한 시인이 모자라는 새끼시인을 배출한 셈이다. 세상에 시인이 이렇게도 많다.

이러한 '전국민의 시인화' 에 앞장서는 이들의 행위는 도를 넘친다. 부단한 노력은 없고 떼거리로 어울려 다니며 '나 시인이다' 면서 올곧은 작가까지도 일반인들로부터 외면받는 사태에 이르렀다.


일부 시인들은 산을 깎아 이 지구상 대한민국에만 있을 법한 '시비詩碑동산' 이란 이름하에 작품 하나 비평을 받아보지도 않은 채 자비로 비석까지 세운다. 산 자의 비석이 공동묘지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 우습지 않나. 그 조형물 앞에서 천지신명께 소원이라도 빌듯이 절까지 하는 이도 있다. 삭풍이 휘몰아치는 '월하月下의 공동묘지' 에서 청소하는 정성까지 다한다. 살아생 전에야 자신이 정성을 다 할 수야 있지만, 염라대왕의 사제들은 물론 후손들 또한 방치할 것이 뻔한 일을 어찌하랴.


이들은 기고시에 홍보비조를 지불하고 자신을 대단한 시인인 것처럼 각색하기도 한다. 문학지나 동인지 발간에는 시와 수필만이 있는 형편 없는 문학지가 많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문학지 발간이 아니면 많고 많은 직업 중에 그렇게도 할 일이 없을까. 기고 의뢰에 허접한 듯한 문예지에 기고하는 자체를 꺼리는 편이지만 표절될 우려로 그동안 발표를 미루었던 원고지 100매가 넘는 평론을 안면상 마지 못해 보낸 적이 있다. 무료기고도 은혜를 베푼 건데 발간하고는 출판비를 청구하는 어처구니 일도 발생하기도 한다.


누구나 시인일 수 있다. 그러나 등단은 아무나 시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문학지 지탱과 패거리 확장을 위해 질 낮은 작가 배출은 독자들로부터 외면만 있을 뿐이다. 끼리끼리 주고받는 문학상에 거창한 외국시인의 이름을 차용하여 명작가인 것처럼 독자들을 속이기도 한다.

정작 자신들은 한 줄의 글도 읽지 않으면서 패거리 문화에 젖어 '나 시인이다' 고 외쳤을 때 일반인들은 콧방귀 뀌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들만의 놀이패' 는 즐거운 모양이다.


진정한 작가라면 죽어서도 작품만으로 말할 뿐이다. 창작에만 몰두할 뿐 문학계를 대표한다는 양대 단체에 회원가입 자격이 되어도 가입을 않는 작가들도 많다.

패거리 문화와 마구잡이 등단은 물론 노년들의 추한 감투싸움에 얼룩진 단체로 변질되었음은 물론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많고 많은 '너도나도 시인' 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문文으로만 논하는 자세를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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