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에 있어 부끄러운 '시인' 이란 이름 요즘은 시인(이하 수필가 포함)들이 길에 밟힐 정도로 넘쳐 난다. 전국민이 작가인 듯한 '작가공화국' 을 연상케 한다. 3년 연속 신춘문예 본선에 오르고도 번번히 실패하다가 125편이나 쓰고는 겨우 등단한 필자 역시 시인이란 반열에 있는 게 사실이지만‘부끄러운 시인‘ 이란 이름일 뿐이다. 등단시 언론의 조명을 받을 때에는 멋 모르고 잠깐 우쭐했던 것조차 부끄럽다.
그들은 더 이상의 작품이 없다면서 평하는데 너무 깐깐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곳에서는 등단시켜 준다고 아우성인데 왜 그러냐는 식이다.
책값, 심사비 명목으로 사례비를 꽤 지불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함에는 철저한 검증도 없은 게 뻔하다. 모자란 듯한 시인이 모자라는 새끼시인을 배출한 셈이다. 세상에 시인이 이렇게도 많다. 이러한 '전국민의 시인화' 에 앞장서는 이들의 행위는 도를 넘친다. 부단한 노력은 없고 떼거리로 어울려 다니며 '나 시인이다' 면서 올곧은 작가까지도 일반인들로부터 외면받는 사태에 이르렀다.
문학지 발간이 아니면 많고 많은 직업 중에 그렇게도 할 일이 없을까. 기고 의뢰에 허접한 듯한 문예지에 기고하는 자체를 꺼리는 편이지만 표절될 우려로 그동안 발표를 미루었던 원고지 100매가 넘는 평론을 안면상 마지 못해 보낸 적이 있다. 무료기고도 은혜를 베푼 건데 발간하고는 출판비를 청구하는 어처구니 일도 발생하기도 한다.
정작 자신들은 한 줄의 글도 읽지 않으면서 패거리 문화에 젖어 '나 시인이다' 고 외쳤을 때 일반인들은 콧방귀 뀌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들만의 놀이패' 는 즐거운 모양이다.
패거리 문화와 마구잡이 등단은 물론 노년들의 추한 감투싸움에 얼룩진 단체로 변질되었음은 물론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많고 많은 '너도나도 시인' 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문文으로만 논하는 자세를 가지자.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내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