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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대 불가사리 건축물...알렉산드리아 등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상징적 유산
고대 건축 기술과 예술의 정점 대리석으로 세워진 135미터의 등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등대의 유산 지진으로 파괴된 후에도 그 잔해는 유물로 남아, 발굴과 연구

전용욱 기자 | 기사입력 2024/09/24 [07:40]

세계 7대 불가사리 건축물...알렉산드리아 등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상징적 유산
고대 건축 기술과 예술의 정점 대리석으로 세워진 135미터의 등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등대의 유산 지진으로 파괴된 후에도 그 잔해는 유물로 남아, 발굴과 연구

전용욱 기자 | 입력 : 2024/09/24 [07:40]

[내외신문=전용욱 기자]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로,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상징적인 유적이다. 이 등대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알렉산드리아 항구에 세워졌으며, 항해자들에게 중요한 지표 역할을 하였다. 약 135미터에 달하는 높이를 자랑했던 이 등대는 고대 건축 기술의 정점이자, 항해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의 위상을 상징했다. 알렉산드리아 등대는 당시 기술과 예술의 집합체였으며, 그 기능성은 당시 항해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시설로 자리잡았다.

 

알렉산드리아 등대의 건설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가 알렉산드리아를 무역과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시키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근처의 파로스 섬에 항해자들의 안전을 위해 등대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이 등대는 그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푸스 시대에 완공되었으며, 그 당시 12~20년이라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건설되었다. 이 등대의 건축가는 소스트라투스라고 알려져 있으며, 그가 이 거대한 건축물을 설계하고 완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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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드리아 등대의 건설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가 알렉산드리아를 무역과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시키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근처의 파로스 섬에 항해자들의 안전을 위해 등대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이 등대는 그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푸스 시대에 완공되었으며, 그 당시 12~20년이라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건설    (미스테리겔러리 유투브 화면 캡쳐)

 

알렉산드리아 등대는 그 규모와 기능에서 고대 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등대는 3층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각 층은 정교한 비례를 유지하며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였다. 등대의 가장 높은 부분에는 불을 밝혀 그 빛이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도 보일 수 있게 하였다. 낮에는 태양광을 반사시켜 항해자들이 등대의 위치를 식별할 수 있게 했고, 밤에는 불빛을 밝혀 항구로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등대의 불빛은 최대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빛의 강도와 반사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등대는 단순히 항해자들을 위한 기능적인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예술적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 건축물이었다. 등대의 상층부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어의 해신 트리톤 조각상, 그리고 제우스와 포세이돈 같은 신상들이 장식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등대의 내부에는 불빛을 더 멀리 반사시키기 위한 거대한 거울이 설치되었으며, 이 거울은 적의 배를 태우거나 시야를 혼란시키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러한 기술은 그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자연재해의 피해를 입었다. 기원후 796년, 등대의 상층부가 큰 지진으로 인해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이후에도 950년과 956년 두 차례의 지진으로 외벽에 금이 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피해는 등대의 높이를 줄이는 결과로 이어졌고, 결국 1303년과 1323년 두 번에 걸친 강력한 지진으로 등대는 큰 부분이 파괴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대는 여전히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지키며 감시탑으로 기능을 유지했지만, 이후에도 크고 작은 지진이 지속되면서 결국 1480년에 완전히 붕괴되었다.

 

등대가 완전히 무너진 후에도 그 잔해는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특히 654년, 아랍의 칼리프 무아위야의 군대가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면서 등대의 잔해가 유대 상인들에게 팔려나갔다는 기록도 있다. 그 후 등대의 존재는 역사 속에서 점차 잊혀졌지만, 등대의 유물에 대한 탐사와 발굴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1968년, 알렉산드리아 항구 인근에서 등대의 잔해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 발굴은 당시 군사 지역에 해당되어 잠정 중단되었고, 1994년에 다시 발굴이 재개되었다. 프랑스의 고고학자 장 이브 엠페레르가 이끄는 발굴팀은 등대가 무너진 장소에서 수백 점의 유물을 발견하였으며, 이 중 34점은 등대의 상층부를 장식했던 것으로 보이는 조각상과 석재였다. 이는 등대의 실제 모습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특히 4톤에 달하는 거대한 석재가 발견되면서, 알렉산드리아 등대가 단순한 항해 보조 장치 이상의 상징적인 건축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등대의 잔해는 현재 알렉산드리아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이 잔해를 통해 고대 알렉산드리아 등대의 실제 모습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등대는 단순한 항해 보조 장치가 아니라, 당시 건축 기술과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이었음을 유물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 등대는 그 상징성과 기능성 면에서 당시로서는 독보적인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알렉산드리아 등대는 비록 여러 차례의 지진으로 인해 완전히 소실되었지만, 그 유산은 계속해서 인류 역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등대의 기능은 단순한 항해 보조 장치를 넘어서,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번영과 기술력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이었다. 이 위대한 건축물의 잔해와 그 유산을 복원하려는 시도는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언젠가 그 실체가 더욱 명확히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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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시민포털지원센터 이사
월간 기후변화 기자
내외신문 전북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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