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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복있는 사람 / 전종문 목사, 시인, 수필가

조기홍 | 기사입력 2024/09/15 [21:49]

(성경 시편) 복있는 사람 / 전종문 목사, 시인, 수필가

조기홍 | 입력 : 2024/09/15 [21:49]



시편을 더 깊이 음미하고자 하는 노력

 

 

 

 

머리말

 

 

 

성경의 시편은 두 말이 필요 없는 하나님의 계시(啓示)다. 나는 평생을 목회전선에서 이 계시들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을 했다. 현직에서 은퇴를 하고도 이 성경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신앙인이기에 이제는 남을 가르치기 위한 말씀으로보다 내 영혼을 위하여 더 깊이 음미할 목적으로 나는 성경을 대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시편에 대하여 관심이 많이 갔다. 내가 세상에서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편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시인들의 영감 넘치는 신앙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노래다. 신앙인이며 시인의 감성이 심오하고 아름답게 드러난다. 나는 이 아름다운 노래를 어떻게 음미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물론 지금까지 시편을 해설하는 책이 많이 나온 줄 안다. 그러므로 똑같은 책이 나올 필요는 없다. 나는 이 계시가 계시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정서를 곱게 다듬는 역할을 기대하면서 이 글을 썼다. 어차피 시편은 계시지만 그 계시를 문학형식 특별히 시(詩)의 형식을 빌어 나타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한다면 더욱 우리의 신앙과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을 확신한 것이다. 그래서 시의 운율과 문장의 수사학적인 부분을 살폈다. 비유와 상징과 대구법, 의인법, 신인동형동성론(神人同形同性論)적 표현 등이 즐비하게 모여 있는 보고가 아닐 수 없다. 계시의 내용을 배우면서 형식의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유익한 일인가. 이를 깨달아가며 독자들의 영성과 정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 복 있는 사람(시편1:1-6)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1-2)

 

 

시편 1편은 시편 전체를 아우르며 여는 노래다. 시편 전체의 주제를 담고 있다. 그래서 시편 전체의 서시(序詩)라고 할 수 있다. 내용은 누가 복이 있는 사람인가를 말씀하면서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다.

 

 

1) 복 있는 사람은 거절할 것을 단호히 거절하고 받아드릴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다.(1-2)

 

 

복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복 없는 사람도 있다는 뜻이다. 악인이나 죄인이나 오만한 자는 복 없는 사람이다. 이 세 종류의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해이된 사람, 하나님의 뜻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사람이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자신은 하나님이 없어도 스스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나 그들을 따르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수 없다. 1절은 문장이 3단으로 되어 점층적으로 죄에 깊이 빠져듦을 묘사하고 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들어서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으면 의인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의인이 되지 못하면 복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을 떠나 산다면 당연히 생명이 없고 생명이 없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복은 하나님 자신이고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사람이 복을 받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죄인들의 유혹을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서서히 유혹하기 때문이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아니한다는 말씀이 그것을 말한다. 죄인을 따르다가 그 길에 들어서고 결국 그들의 자리에 함께 앉으면 벗어나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순종하며 더욱 기쁘게 따르는 사람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교훈이요, 말씀이요, 복음이다. 이 말씀을 기뻐하며 주야로 묵상한다면 복이 있다. 묵상은 조용히 생각하고 반추하며 실천까지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주야로 묵상한다.” 했으니 밤낮으로 생각하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형통할 때나 환난을 당할 때도 기쁘게 따른다는 의미다.

 

 

2) 복 있는 사람과 복 없는 사람은 현실에서 어떻게 다른가.(3-4)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비유하고 복 없는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로 비유된다. 여기서 복 있는 사람은 의인으로, 복 없는 사람은 악인으로 묘사된다. 의인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 그래서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 이 나무는 시냇가에 심겨져 있기 때문에 가뭄이 와도 걱정이 없다. 때를 따라서 열매를 맺으니 모든 행하는 일이 형통하다.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겨는 생명이 없다. 바람에 날아서 땅에 떨어지면 흙으로 돌아간다. 이는 의인이 현세에서도 형통하는 복을 받지만 악인의 삶은 허무하다는 것을 말씀한다.

 

 

3) 의인과 악인은 궁극적으로 어떻게 되는가.(5-6)

 

 

시인은 결국 모든 사람에게 심판이 있음을 말씀한다. 그 심판을 악인은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망한다. 그러나 의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결국 심판으로 인하여 악인이 가는 길과 의인이 가는 길이 다름을 말씀하면서 절대로 악인이 의인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가 복 있는 사람인가.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요, 하나님께서 마련한 영광의 자리에 드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그 말씀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을 따를 것인가. 그것을 구별하고 복된 길을 가는 것이 신앙의 궁극적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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