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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를 만든 아내, 그리고 일본과 한국의 정신사적 고찰

중국과 일본: 역사에서 배운 국가 전략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성공과 네네의 내조
한국의 현대사와 국가 정신의 형성

김학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9/13 [13:57]

히데요시를 만든 아내, 그리고 일본과 한국의 정신사적 고찰

중국과 일본: 역사에서 배운 국가 전략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성공과 네네의 내조
한국의 현대사와 국가 정신의 형성

김학영 기자 | 입력 : 2024/09/13 [13:57]

중국에서는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역사 드라마와 영화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청나라의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와 같은 황제들은 통치의 모범으로 자주 회자되지만, 이는 한족 입장에서는 과거 외세의 지배였다는 점에서 이질적인 면도 존재한다.

 

본래 "광복"이란 단어가 청나라를 물리치고 명나라를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늘날 청나라 황제를 이상화하는 것은 일종의 모순이다.

 

청나라는 '주인-노예' 체계를 바탕으로 한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구조는 현대 중국 공산당 체제에서도 사회적 순응을 유도하는 하나의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전국시대가 국민적 정신의 뿌리로 여겨지고 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을 통일하는 과정을 다룬 이 시기는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오늘날까지도 일본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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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킹 촬영 김학영 감독     김학영기자

 

오다 노부나가는 법가적이고 실용적인 통치로 질서를 잡았지만, 그의 엄격한 방식은 불만을 사기도 했다. 이는 중국의 진나라와 닮은 점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마부에서 출발해 점차 무사의 지위로 올라섰다. 그 과정에서 그의 아내 네네는 히데요시의 정치적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 네네는 가신단을 조직하고, 다양한 인맥을 구축하며 남편의 입지를 강화했다. 특히 여러 가문의 젊은이들을 돌보며 그들을 히데요시의 충성스러운 부하로 만들었다. 이들이 후에 히데요시의 통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만년에 판단 착오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명나라와의 무역을 원했고, 만주족과 협력해 명나라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조선을 침공했지만, 명나라와 조선 연합군의 저항에 부딪혀 결국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히데요시가 죽은 뒤 그의 측실 자차와 아들 히데요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권력에 맞섰지만 결국 패배하고 몰락했다.

 

이 시기는 일본의 지방분권적 정치 체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전국시대 동안 각 번국은 사실상 독립된 나라처럼 존재했고, 주군에 대한 충성은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였다. 이러한 배경이 오늘날 일본 지방자치의 근간이 되었으며, 유력 가문 후손들이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이 시대의 유산이다.

 

한국의 경우, 이승만 정부 이후 서구적 문명국을 지향하면서 조선 시대를 부정하는 경향이 강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경제성장을 이끌었고, 근로자 정신을 확립했다. 이후 한국은 자주국방을 위한 중공업 육성과 경제 번영을 이루며 현대화에 성공했다.

 

오늘날 한국은 자국의 과거를 부정하기보다는, 과거의 성과와 교훈을 현재와 미래에 적용하는 전략을 필요로 한다. 일본과 중국이 과거의 교훈을 현대 사회에 흡수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한국도 역사적 자산을 재평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국가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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