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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배비장전”, 흥겹고 유쾌한 잔치 한마당

윤준식 | 기사입력 2015/01/19 [17:31]

오페라 “배비장전”, 흥겹고 유쾌한 잔치 한마당

윤준식 | 입력 : 2015/01/19 [17:31]

[내외신문=시사미디어투데이] 창작오페라 “배비장전”은 조선 후기 제주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작자 미상의 구전문학을 근간으로, 가장 낮은 계층인 기생과 종들의 계책 속에 드러나는 양반들의 위선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고 있다.

 

[줄거리]

 

새로 부임하는 제주목사를 따라 제주를 향한 배비장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지 않겠다고 아내에게 약속하지만, 여색을 멀리하겠다며 방자와 한 내기, 배비장을 유혹하면 큰 상을 내리겠다는 사또의 호기로 인해 기생 애랑의 표적이 된다.

제주목 관원들과 기생들이 함께 한라산 꽃놀이를 떠나고 배비장은 산 속에서 목욕하는 애랑의 모습에 반하게 되고, 이후 애랑의 집에 몰래 찾아가지만 애랑의 남편으로 가장한 방자의 호통에 놀라 궤에 숨게 된다.

궤 속에 갖힌 채 제주 바다에 빠진 줄 안 배비장은 궤를 탈출해 수영을 하지만 그곳은 제주 관아의 동헌이었다. 관원들과 기생들의 조롱 속에 배비장의 아내가 등장해 배비장을 나무라는 장면을 끝으로 풍자와 해학의 한바탕 유쾌한 웃음으로 막을 내린다.

 

배비장전

 

이번에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린 오페라 “배비장전”은 제1회 대한민국 창작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사)대한민국 오페라단 연합회와 ‘더뮤즈오페라’단이 공동으로 주관했다.

 

이번 초연에 불과한 오페라 “배비장전”에는 여러 장점을 엿볼 수 있었다.

 

우선 한국의 전통적인 콘텐츠를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공연형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미국 브로드웨이, 영국 웨스트엔드 못지않게 급성장한 한국 공연문화를 생각해본다면 창작오페라 붐이나 오페라 한류도 충분히 꿈꿔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세계적인 관광지인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내용구성과 무대는 매우 좋은 시도다. 입체영상을 통해 제주 한라산, 천지연 폭포를 무대 위에 재현했고, 제주의 다양한 관광아이콘들을 극중에서 소개하고 있다.

 

다음으로 우리 구전문학이 갖고 있는 사회비판, 풍자와 해학의 콘텐츠를 살리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제주로 출항하는 대목에서 제주 목사가 사공들에게 “정원 초과하지 마라!”, “과적은 절대 안돼!”, “불법개조한건 아니지?”라며 “만일 그랬다간 ‘세월’없이 극형에 처하리라!!”는 대목에서는 관객 모두가 박수로 호응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또한 배비장의 위선을 통해 사회지도층의 성추문 사건을 드러내며 통렬한 웃음으로 비판하는 부분도 그렇다.

 

형식면에서도 무대와 객석이 호흡하는 판소리, 마당놀이의 형식을 자연스럽게 오페라에 적용했다.

애랑의 집을 찾아 배비장과 방자가 몰래 숨어들어가는 장면에서는 배비장과 방자역할의 배우가 객석으로 내려와 한바탕 웃음을 선사하고 오케스트라 지휘자도 이에 참여하는 등, 소리꾼과 고수, 관객이 추임새를 주고받으며 직간접적으로 극에 참여하는 자연스러움도 특징이다.

그 밖에 쉽고 전달력있는 가사와 “헐~!”, “멘붕” 등 동시대의 언어를 사용해 ‘오페라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라는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도 좋다.

 

아쉬움이 있다면 왜 하필 비장과 기생의 주색잡기를 바탕으로 한 에로틱한 스토리라인의 작품을 선택했나 하는 점이다.

물론 서양의 고전 오페라 중에도 선정적인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왕 고전음악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추려 했다면, 남녀노소 함께할 수 있는 보다 보편적인 서사구조가 적절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배비장전”은 매우 흥겹고 즐거웠다.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음악도 좋았고, 형형색색의 한복을 입고 무대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무용수들이 전하는 리듬감도 경쾌하다. 피날레에서 무대 천정까지 솟는 꽃보라의 장관도 눈을 사로잡는다. 오래 전에나 있었을 마을 큰 잔치에 초대되어 거하게 대접받고 돌아가는 듯한 감흥으로 공연나들이를 즐길 수 있다. 재연으로 돌아올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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