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기자 수첩>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하여

강봉조 | 기사입력 2014/03/16 [20:54]

<기자 수첩>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하여

강봉조 | 입력 : 2014/03/16 [20:54]


(강봉조 취재본부장)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가끔씩 미묘한 의문에 휩싸일 때가 있다.

숱한 의문중에서도 가장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 착해서 못사는 것인가’ 아니면 ‘못살기 때문에 착한 것인가’라는 의문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난한 사람들은 대개가 착하게 살고 있으며, 사회의 지탄을 받는 사람들은 엄청난 부를 누리고 사는 경향이 뚜렷함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훨씬 많음을 늘상 보아왔다.

이럴 때마다 필자는 위에서 언급한 의문의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각종 종교에서도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고 하면서 착하게 살기를 권유한다. 악하게 살라고 종용하는 종교는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종교를 믿는 수는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우리네 세상은 무슨 까닭으로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가난한 삶을 누려야 하는지 도대체 답이 안나온다.

사회에 대한 경험이 일천했던 어린 시절에는 그들이 게으르고 못나서 그런 줄만 알았지만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서 작은 지식과 경험을 쌓아가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이 못난 탓도 아니고 게으른 탓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착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사회의 구성원들은 모두 공동체라는 사실을 망각한데서 발생한 것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로서 상대가 있어야만 자신의 삶도 있다는 너무도 평범한 진리를 잊고 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이익만을 지나치게 추구하다보니 독점을 할려고 하고, 자신을 세상에 있게 하는 중요한 상대방에게 나눔을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장사를 하는 사람은 상품을 사주는 이웃이 있어야 이득을 창출할 수 있다. 또 농사를 짓는 사람은 먹거리를 소비하는 이웃이 있어야만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충분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직업은 어느 것이나 상대가 존재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심지어 사기꾼조차도 사기를 칠 상대가 있어야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너무도 소중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서로에게 너무도 소중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결과 부의 불균형이 생겨났다.

한번 생겨난 이 불균형은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결정에 있어서 영향력이 강한 집단과 전혀 영향력을 가질 수 없는 집단으로 구분되어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돼 착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더욱 가난하게 사는 기이한 현상을 초래했다.

이젠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과감하게 깨뜨릴 때이다. 경제발전도 중요하지만 발전으로 인해 창출된 부의 균등한 분배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모든 구성원이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눈앞의 이득만을 보는 기득권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비인간적인 법이나 제도는 기득권자들 역시 언젠가는 한순간에 피해자로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속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세상은 소수의 천재 또는 위대한 지도자들의 이론이나 각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수의 보통사람들이 스스로 이룩해 가는 공동체적 삶의 질이 훨씬 보편적인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나 논리보다는 구체적 인간 개개인의 삶이 소중하다는 말이다.

이념은 인간이 보다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생겨난 파생물인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인간보다 이념이 우선시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앞뒤가 완전히 뒤바뀐 일이기에 다함께 타파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만이 세상이 바로 서게 되고, 바로 선 세상이라야 누구나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하겠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