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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봉조 기자>우리 사회의 양지와 음지

강봉조 | 기사입력 2015/08/27 [03:53]

<칼럼 강봉조 기자>우리 사회의 양지와 음지

강봉조 | 입력 : 2015/08/27 [03:53]


(강봉조 취재본부장)

(1)그늘과 양지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나 으레 음지와 양지, 햇볕 쐬는 곳과 그늘진 곳이 있기 마련이다. 그 양극이 아옹다옹하고 있지 않으면 사회나 공동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한 공동체나 사회에서 또는 시대에서 음지와 양지의 이분법은 ‘필요악’이 아닌지 궁금해 지기도 한다.

아니 양지가 짙으면 당연히 음지도 짙기 마련인 것, 그것은 자연에서는 불가피한 이법이고 또한 섭리다.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철칙이다.

하지만 이 말이 인간 사회에 그대로 옮겨질 수는 없다. 그 같은 이분법이, 그와 같은 대립이 으레 있기 마련이라고 해도 그 대립을 극복할 책무가 한 사회에는 주어져 있고 매겨져 있다. 그걸 피하면 안 된다.

그래서는 음지를 극소화하고 그늘의 짙음을 여리게 하려는 노력들을 공동체 구성원 전원이 해나가야 한다.

그늘을 또 음지를 영영 지워낼 수는 없다 쳐도 엷게 하고 좁아들게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그 일에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동일한 공동체에 속해 있는 구성원들 누구나 정성을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병든 사회, 불구의 공동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다. 한데 오늘날 우리 한국이라는 사회는 그리고 그 공동체는 사정이 어떨까  그 병세는, 그 병의 징후는 어느 정도일까 

모르긴 해도 아무래도 좋은 답이 나올 것 같질 않다.

가령, 구체적인 보기를 들어 보자. 대-중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읍 단위의 소도시조차도 오늘날 우리의 거리는 번화해 보인다.

밤에 번화가는 불야성을 이루고는 휘황찬란하다. 밝으나 밝은 광명천지다. 양지라도 대단한 양지다.

(2) 보도(步道)가 음지다

한데 거기 차로를 따라서 개설된 보도를 바라보면 양지가 금방 무색해진다.

그 환한 보도(步道)에서 좌우측 통행의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기다. 서로 마주 보고 걷다가 아슬아슬 맞부딪치기를 면하곤 한다.

이것만으로도 우리의 그 밝은 보도에는 이내 어둔 그림자가 끼치게 된다. 보도에 조차 음지가 있고 양지가 있다.

뿐만 아니다. 보도를 걷다가는 남의 앞을 예사로 가로지르곤 한다. 그게 남의 통행을 방해하고 훼방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다.

어느 경우나 공중도덕도 시민 윤리도 무시 당하고 있다. 각자 제 멋대로 제 좋고 제 편할 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공중도덕과 시민 윤리는 일상생활의 것이고 다들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공간에서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것이지만 그게 무시당하면 , 이들 두 가지 윤리도 도덕도 무너지고 만다. 사회는 쑥밭이 되고 쓰레기 밭이 되고 만다.

한데 서구나 미국 등지에서는 보도의 윤리가 지켜진다. 거리의 윤리가 존중된다. 보도를 걸을 때, 좌우를 지키고 남의 앞을 가로지르는 따위, 몰상식한 짓은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옆으로 두셋이 늘어서서 걷지도 않는다. 또한 앞에 가는 사람들에게 바싹 다가붙지도 않는다. 무심코라도 남의 말을 엿듣게 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이걸 작은 일이라고 하지 말자. 그까짓 보도 걷는 것 가지고 시비걸 것 없다고 소리치지는 말자. 그런 작은데서 지켜지지 않으면 큰 데서도 시민윤리가 또 공중도덕이 지켜질 턱이 없다.

거리의 음지 줄이기에 보도의 그늘 지우기에 "당진시"민들 다함께 발 벗고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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