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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어느 새 가족이 되다, 연극<가을 반딧불이>

김미령 | 기사입력 2015/08/25 [14:46]

(공연리뷰)어느 새 가족이 되다, 연극<가을 반딧불이>

김미령 | 입력 : 2015/08/25 [14:46]


(사진제공:윤빛나 기자)

[내외신문=김미령기자]?연극리뷰

죽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야. 하지만 도리가 없어.

오래 전 약속을 지킨 아버지가 아들에게 애써 담담히 내뱉은 한마디에 저릿하다. 곧 ‘안녕’해야 하기 때문일까.


연극는 연극 으로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 겸 연출 정의신의 작품이다. 그를 세상에 소개한 은 소외된 재일교포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며 호평을 받았으며, 등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따스한 온도로 감싸 안고 있다.

낡고 한적한 보트 선착장. 다모쓰와 삼촌 슈헤이가 살아가는 곳이다. 넉넉하진 않아도 평온한 삶을 살아가던 두 사람만의 공간에 불청객이 나타난다. 슈헤이의 아이를 가졌다는 마스미와 자신도 같이 있게 해달라며 떼를 쓰는 사토시. 다모쓰는 두 사람이 불편하다. 게다가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유령이 종종 찾아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건 태평하게 그들을 받아들이는 삼촌 슈헤이의 모습이다. 그들에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변함없을 것 같은 삶이 어느 날 갑자기 들쑤셔진다면, 한 번도 원한 적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가족이 된다면, 분명 불편할 것이다. 어쩌면 다시 평온한 시간으로 도망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살겠다고 찾아왔지만 나름 가까이 다가서려는 마스미와 사토시의 노력은 다모쓰의 차가운 대응에 번번이 막혀버린다. 울퉁불퉁 맞지 않는 조각을 끼워 맞추려니 닿는 부분마다 아프고 쓰라리다. 달래도 보고 화도 내보지만 만만치 않은 다모쓰. 그런 그들의 줄다리기가 계속 되는 동안 어째서인지 미소를 짓게 된다. 서로를 향한 투닥거림이 사랑스러우니까.

결국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한 다모쓰가 실행에 옮기려던 비 오는 밤, 다모쓰를 말리려다 서로 나가겠다고 싸우게 된다. 그렇게 서로의 비밀을 드러내는 그들의 아픔은 잔잔하게 밀려온다. 가슴 깊은 곳에 묻고 덮어 누구에게도 꺼내 보이지 않았던 것까지 드러내면서 손을 내밀어 오는 데에는 도리가 없다. 결국 다모쓰는 그들을 받아들인다.

분명 언어유희랍시고 케케묵은 유머를 들먹이는데 웃음이 나고, 웃고 있는데도 가슴이 저릿하다.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고 있는데도 따뜻한 온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사람이기에 서로를 향한 시선에서도 온도는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돌아와 주길 바랐기에 원했던 슈크림 빵을 먹으며 서른 살이 된 다모쓰는 분명 훌쩍 자랐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는다는 것과 자라는 것은 다른 것이다. 받아들이고 감싸 안은 만큼 누군가의 세계 또한 훌쩍 커져가는 것이 아닐까.

“가을 반딧불이가 있다고 들어본 적이 있다. 죽은 나무 사이를 오가는 반딧불이를 실제로 보았다면 그건 조금 엉뚱하고, 조금 예쁘고, 조금 구슬퍼 보일지도 모른다. 캄캄한 연못 위에서 훨훨 떠다니며 빛나는 것이, 그 가을 반딧불이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영혼인지 잘 모르겠지만, 내게는 왠지 작게 손을 흔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엉뚱한 가을 반딧불이같은 그들의 삶, 사기 결혼을 당해 가졌던 모든 것을 잃고도 ‘아가야, 사는 것은 참 좋은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마스미처럼 곁에 있어줄 단 한사람도 없던 그들은 어느 새 가족이 되었다. 알 수 없는 먹먹함과 저릿한 감동, 그런데도 미소를 짓게 하는 좋은 작품이다.

삼촌 슈헤이 역에 조연호, 김태훈, 박근수, 다소 퉁명스럽지만 결국 마음을 열어주는 다모쓰 역에 최선일, 박주형, 한근섭, 생떼 쟁이지만 밉지 않은 사토시 역에 김승환, 김태향, 소란스럽지만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 마스미 역에 이선희, 구옥분, 민폐 아빠 분페이 역에 김준우, 김진, 문경초 배우가 함께하며, 오는 8월 30일까지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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