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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문화산책)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 오세혁 각색/연출 ‘분노의 포도’

편집부 | 기사입력 2015/08/08 [12:12]

(박정기의 문화산책)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 오세혁 각색/연출 ‘분노의 포도’

편집부 | 입력 : 2015/08/08 [12:12]


[내외신문=박정기 문화공연칼럼니스트]게릴라극장에서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의 존 스타인벡 원작, 오세혁 각색.연출의 ‘분노의 포도’를 관람했다.

 

존 스타인벡 (John Ernst Steinbeck, Jr. 1902~ 1968)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고향은 농업 지역이었기 때문에, 스타인벡은 농업 노동자들의 삶을 이해하면서 자랄 수 있었다. 1920년 스탠포드 대학교에 생물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했다. 대학생 시절 목장, 도로 공사장, 목화밭, 제당공장에서 일했다. 이때의 경험은 훗날 스타인벡이 작가가 되었을 때 밑바닥 인생들의 삶을 작품에 그려 넣는 바탕이 되었다.

 

대학을 중퇴한 후 ‘뉴욕 타임스’지의 기자로 일했으며, 1929년 해적 소설 ‘황금의 잔’으로 문단에 등장하였고 ‘생쥐와 인간’으로 유명해졌다. 1936년 스타인벡은 미국 공산주의운동을 소재로 한 ‘의심스러운 싸움’(영어: In Dubious Battle)을 발표하였다. ‘의심스러운 싸움’은 1936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공산주의자가 착취당하는 과수원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조직한다는 소설의 내용은 당연히 이념논쟁을 불러와서, 당시 우파들은 공산주의자들의 동정을 끌어 모으려 했다고 비난하였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노동운동이 활발하던 미국 상황을 제대로 묘사한 적절한 것이었다.

 

1939년에는 노동자들과 같이 일한 경험을 소재로 한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를 발표했다. 스타인벡은 이 작품에 토지 소유주인 은행에 의해 농장을 빼앗긴 톰 조드 일가를 등장시켜, 지주, 은행, 경찰의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고발했다. 그래서 오클라호마 주등의 여러 주에서는 금서로 지정되고, 책이 불태워지기까지 했다. 미국 연방 수사국(FBI)에선 스타인벡을 공산주의자로 의심하고, ‘분노의 포도’가 반미선전에 이용될 것을 우려하였다.

 

그러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는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리고 ‘에덴의 동쪽’ ‘진주’ ‘달은 지다’를 발표하고, 1961년에 발표한 ‘불만의 겨울(The Winter of our Discontent)’로 존 스타인벡은 1962년에 노벨상 수상작가가 된다.

 

‘분노의 포도’는 오클라호마에서 시작하지만 캘리포니아가 주요 무대다. 캘리포니아는 오랫동안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낙원의 하나로 꼽혀 왔다. 따뜻한 엘 에이(LA)를 꿈꾸는 더 마마스 앤 더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이나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라고 노래한 스캇 맥킨지의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서 느낄 수 있듯이, 캘리포니아는 햇볕과 활기와 평화를 상징해 왔다.하지만 캘리포니아가 언제나 살기 좋은 낙원은 아니었다. 지난 20세기를 돌아보면 이곳에도 빛과 그늘이 존재했다. 그 어두운 그늘을 날카롭게 그린 대표적 소설이 ‘분노의 포도’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사 구했다 하더라도 턱없이 낮은 임금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지 않는다. 또 농장주들의 교묘한 책동은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집단적 대응인 파업의 중요성을 서서히 깨달아 가는 게 ‘분노의 포도’의 줄거리를 이룬다.‘분노의 포도’가 발표된 1939년 당시 미국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부가 들어서 있었다. 대공황 이후의 대규모 실업 및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루스벨트 정부는 뉴딜정책을 추진해 사회통합을 모색했고, 또 나름의 성취를 일궈냈다. 루스벨트 정부의 개혁정책이 전후 미국 사회의 발전은 물론 캘리포니아의 번영에 중요한 기반을 제공한 셈이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낭패의 빛이 떠오르고 굶주린 사람들의 눈에는 분노가 서린다. 사람들의 눈에는 분노의 포도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분노가 충만하고 그 포도 수확기를 위하여 알알이 더욱 무겁게 영글어 가는 것이다.”‘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구절이다.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스타인벡은 사랑과 연대의 새로운 발견을 강조한다. 그는 전통적 사회주의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랄프 에머슨”, “헨리 제임스”, “월트 휘트먼” 등 전통적인 미국 사상가들로부터도 영감과 통찰을 가져왔다. 대단원은 아이를 사산한 샤론의 로즈가 굶주린 남자에게 젖을 먹이는 것으로 끝나게 되는데, 스타인벡은 타자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자각에서 새로운 희망의 단초를 찾고자 했다.

 

무대는 몇 개의 나무로 만든 조형물이 놓여있다. 이 조형물은 의자구실과 연단 구실을 하고, 차례로 늘어놓으면 톰 조드 일가가 타고 이주하는 트랙터로 사용된다. 소품으로 등장하는 총기도 당시의 라이플에 방불하다. 출연자들은 톰 조드 일가가 생존했던 당시에 널리 유행했던 노래인 “마틴 로빈슨(Martin Robinson (1925~1982)”의 ‘홍하의 계곡(Red River Valley)’을 극의 도입에서부터 대단원에까지 때맞춰 부르며 연기한다. 후반부에 부르는 창작곡도 적절한 것으로 느껴진다. 1인 다 역의 등장인물설정이 독특하고, 이념문제나, 위기의 순간, 그리고 고통과 고난을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희극적으로 묘사하려는 연출력이 감지되기도 한다. 배우들의 감성연기도 조화를 이루어 오케스트라 단원의 협연 같은 느낌이 든다.

 

최현미, 이봉하, 이중길, 류성국, 이빛나, 주민호, 송영미, 신정은, 김수웅, 김기일, 안진혁, 황지하 등 출연자 전원의 조화를 이룬 연기와 노래가 객석에 감동을 선사하고,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의 발전적 앞날을 예측케 한다.

 

기획.제작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 작편곡.음악감독.음향오퍼레이팅 박기태, 조연출.조명오퍼레이팅.영상편집 김향희, 무대디자인 오태훈, 무대제작 박정길.이중길, 조명디자인 류성국, 포스터사진 김 신, 그래픽디자인 최현미, 영상편집 박준영, 홍보 구하나, 진행 극단 걸판 2기 단원들 등 스태프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의 존 스타인벡 원작, 오세혁 각색.연출의 ‘분노의 포도’를 원작을 넘어선 한 편의 새로운 표현주의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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