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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그리고 사랑이 있다면.......

김미령 | 기사입력 2015/07/21 [12:42]

(리뷰)그리고 사랑이 있다면.......

김미령 | 입력 : 2015/07/21 [12:42]


연극?'겨울 선인장'

사진제공/조은컴퍼니

[내외신문:김미령기자] 타버릴 것 같은 낮과 얼어붙을 것 같은 밤을 지나 쉬어갈 그늘은커녕 모래바람만 불어오는 사막에서 물조차 충분치 않다. 잎 대신 가시가 돋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걸까.

 

연극 '겨울 선인장(연출:김지원)'은 '천년의 고독'으로 테아토르 상을 수상하며 '가을 반딧불이' '야끼니꾸 드래곤' '코카서스의 백묵원' '아시안 스위트'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의 작품으로 고교 동창인 네 명의 성 소수자이야기를 통해 삶의 희망과 위로를 전하고 있다.

 

역전 만루 홈런으로 고교 야구 결승전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던 류지가 불의의 사고로 죽은 후 그를 추모하기 위한 모임이 생긴다. 후지오, 하나짱, 가즈야, 베양은 매 년 야구부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10년 후, 네 사람 중 후지오와 가즈야는 7년 차 연인이 되고 성 소수자들이 찾는 2번가에서 여장을 하고 술집에서 일하는 하나짱, 대인 공포증과 콤플렉스로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베양도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현재를 살아간다.

 

작품 전체에서 정의신 작가 특유의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온기가 느껴진다. 이제는 너무 흔해져 버린 성적 소수자의 이야기지만 아직은 ‘소수자’이기에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다를 것처럼 생각되기 마련이다. 모두가 같은 사람일 뿐인데.

 

자신을 바라보며 뿌듯하고 자랑스럽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람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어둠은 있기 마련이다. 후지오를 그토록 사랑해도 타인의 시선이 두려운 가즈야의 마음이 선뜻 이해되는 것은 역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자신 답게 살고 싶은 마음과 감추고 싶은 두 마음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라 그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어른이 되려고 애쓰지만 어른이 될 수 없어서 어른인 척하고, 상처를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상처를 줘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그게 어른이 되는 건가요?”

 

후지오에게 상처를 주고 무심한 척 넘기려는 가즈야에게 던진 베양의 날카로운 한마디는 긴 여운으로 남는다. 결국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아닌 척하는’ 법만 겨우 배워서 써먹는 지도 모른다. 솔직하면 어른이 아니라는 듯이. 감추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게이들이 찾는 2번가에서 살아가는 하나 짱이 있어 조금은 답답한 현실과 무거움을 덜어준다. 윤혁진 배우는 큰 키에 건장한 체구임에도 여장 남자로 오지랖이 태평양이긴 하지만 사랑스러운 하나짱을 잘 보여준다. 가즈야를 짝사랑하지만 그의 연인인 후지오와의 사랑과 마음을 자신의 방법으로 응원하고 보듬어준다. 마음이 예뻐 미소 짓게 만드는 ‘그녀’는 아름다웠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가즈야를 사랑하는 후지오와 같은 고민을 가졌던 모임의 계기가 된 류지, 죽음을 떠올렸다가 행복해 보이는 선배들을 지켜보고 싶어 야구부에 지원, 후배가 된 베양까지 다섯 명의 친구들은 담담하게 자신의 마음을 내보인다. 오늘을 살고 싶지만 지나간 시간을 자꾸 떠올리게 되는 그들의 모습은 안타까웠지만 긴 시간을 돌아 다시 만나는 그 순간을 지켜볼 수 있어 기뻤다.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고단함도, 삶의 무게도 변함없이 함께 하는 이가 있기에 사막 같은 세상일지라도 의미가 있는 지도 모른다. “용기와 희망과 얼마 안 되는 돈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이 있다면. 후지오의 축사를 오늘을 살아가는 ‘선인장’같은 우리 모두에게 응원의 메시지로 보낸다.

 

현실을 살아가는 가즈야 역에 김한, 정재훈, 그의 연인 사랑을 말하는 후지오 역에 서한열과 임희철, 사랑스러운 여장 남자 하나 짱 역에 윤혁진과 문용현, 그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다정한 후배 베양 역에 박현철과 류광환, 언제까지나 마음 속에 함께 할 친구 류지 역에 김기범이 호연한다. 오는 8월 16일까지 서울 신사동 윤당아트홀 1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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