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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쩌면 정해진 운명처럼, 연극<심청전을 짓다>

김미령 | 기사입력 2015/07/17 [18:39]

(리뷰)어쩌면 정해진 운명처럼, 연극<심청전을 짓다>

김미령 | 입력 : 2015/07/17 [18:39]


사진제공:모슈컴퍼니

 

[내외신문=김미령] 어두운 밤, 환한 대낮에도 으스스한 성황당. 효녀였던 심청이를 제사 지내주려는 몇 사람과 갑작스런 비를 피하려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마치 빛을 찾아 모여드는 것처럼.

 

한국여성연극협회가 주최하는 제 3회 한국여성극작가전의 개막작 김정숙 작가의 이 무대에 오른다. 판소리계 소설 '심청전' 이야기를 새롭게 재해석해 직접 연출하여 선보인다. 2015 서울 문화재단 예술 창작 지원사업 선정작, 연극 창작환경 개선지원사업 우수 연극단체 대관료 지원사업 선정작이다.

 

'심청전을 짓다' ‘숙영낭자전을 읽다’를 통해 우리 옛 여인들의 고소설사랑을 조명한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읽다’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심청전'의 이야기를 지어내고 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고유의 정서인 '효'와 '한'을 따뜻하게 풀어냈다.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진 후 어느 밤 심청이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을 성황당에 모인 사람들과 비를 피하기 위해 그 곳을 찾아 든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연극이 시작된다. '효녀 심청'의 이야기를 말하는 그 시절의 다양한 인물 군상이 등장하여 여성과 남성, 양반과 천민의 입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여성'과 '사람다움'에 대한 진실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심청이가 살던 마을인 도화동 마을의 성황당, 비오는 밤에 그녀의 이웃이자 소꿉친구인 귀덕이와 어미는 제사를 지내주려 한다. 갑작스런 비를 피하려고 높으신 양반 나리, 검을 든 젊은 선달, 대가 집 며느리라는 정신 나간 여인과 그 몸종, 수상해 보이는 젊은 종놈 개동, 그리고 심청을 인당수에 제물로 바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을 지불했던 남경상인까지, 모인 사람들은 적적하기도 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고자 심청이의 사연을 듣게 된다.

 

눈 먼 아비의 눈을 뜨게 하고자 목숨까지 버린 그녀의 효심에 감복하던 중, 정신을 놓아버린 대가 집 며느리가 발작을 일으킨다. 밖에는 여전히 비바람이 거세다. 멈추지 않는 비, 그 밤이 지나고 그들은 어떤 아침을 맞이하게 될까?

 

이 땅에 나고 자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답게’ 풀어내어 공감과 위로가 가득한 작품들을 계속해서 무대에 올리고 있는 김정숙 작가특유의 따뜻함과 위트가 작품 곳곳에 녹아있다. 무엇보다 사람을 향한 그녀의 시선은 참 다정하다.

 

귀덕이와 엄니, 남경상인은 험한 세상을 살아가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후회하는 인물들이지만 또한 자신의 후회를 속죄하고자 노력하는 인물이기도하다. 거센 비바람 속에 몸을 피하고자 찾아온 이를 상것이라 하여 칼을 빼드는 높으신 양반네들과는 다르다. ‘체면’이라는 굴레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당치 않은 짓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를 위해 머리를 조아리는 것도 서슴지 않으니 말이다.

 

죄를 지은 이에게 속죄할 수 있다면 더 좋았을까, 그러나 삶이란 그리 만만치 않으니 잘못을 후회하고 진심으로 속죄하고자 하는 것만으로 위로를 얻는다. 잘못이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를 통해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갈 수 있다면 그 또한 속죄가 아닐까.

 

비바람 몰아치는 밤, 그들을 불러 모은 것은 짖던 개조차 웃게 만들었던 심청이일 거라고 믿은 귀덕네와 같은 믿음을 가져본다. 어쩌면 정해진 운명처럼 모여 진정한 속죄와 용서를 향할 수 있게 되다니, 우연치고는 멋진 필연이기에.

 

뭔가를 감추고 있던 인물들의 속이 드러날 때조차 날 것 그대로보다는 층위를 둔 배려가 작가의 필력을 느끼게 한다. 심각한 중에 호흡을 느닷없이 잡아가는 웃음이 있고 마음에 스며드는 따뜻함에 뭉클해지는 감동이 있다. 이야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굉장히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배우들이 한결같은 호흡으로 관객들을 웃기고 울린다. 귀덕이네 역에 김현, 남경상인 역에 정래석, 웃음코드의 일등공신 양반 나으리 역에 신문성,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아씨 역에 홍수현, 아씨를 끔찍이 보살피는 몸종 만홍 역에 박옥출, 선달 역에 박재홍, 개동 역에 최상민, 귀덕이 역에 오유라가 열연한다.

 

기간이 매우 짧은 것이 이 연극의 최대 단점이니 꼭 챙겨보시길. 대학로 소극장 알과 핵에서 오는 19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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