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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선의 오발탄 , 문학작품 속 배경이 되었던 장소로...서울문학기행 시민과 함께: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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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선의 오발탄 , 문학작품 속 배경이 되었던 장소로...서울문학기행 시민과 함께

김학영기자 | 기사입력 2022/10/31 [15:05]

이범선의 오발탄 , 문학작품 속 배경이 되었던 장소로...서울문학기행 시민과 함께

김학영기자 | 입력 : 2022/10/31 [15:05]

 

  <해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원 연구원) 사진촬영 =김학영 기자>

지난 10월 22일 토요일 오전 10시 이번 서울문학기행은 이소영 (동화작가 ) ,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원 연구원)이 해설사로  "이범선의 오발탄"을 주제로 진행됐다. 코스로는 경리단길, 보성여고,해방촌성당,해방예배당, 해방촌오거리, 신흥시장, 108계단, 용산고등학교, 순서로 진행 되었다. 이날 모인 시민들은 10대 학생부터 60대 이상까지 연령이 다양했고, 혼자서 또는 친구와 함께 기행에 참여했다.

 <서울문학기행에 모인 참가자들 사진 =김학영>

이범선의(1920~1982) 대표작 ‘오발탄’, ‘학마을 사람들’로 유명한 소설가 학촌(鶴村)등, 그가 집필한 대부분의 작품들의 시간적 배경은 일제강점기 최후반기에서 6.25 전쟁 발발 전후 시기로 표현된다.

  보성여고 참가자들 

그는 1933년 고향의 청강보통학교를 거쳐 1938년 진남포공립상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평양부에서 당대의 엘리트인 은행원으로 근무했으며,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후에도 그는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고 1943년 고향의 신안주 금융조합에서 근무하다가, 그해 10월 평안남도 중화군 풍덕면 풍덕리 출신의 3세 연하인 홍순보와 결혼했다. 

 

이범선은 1950년 12월 중공군이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한강을 건너 피난을 결심한다. 그해 6월 전쟁의 포화로 모든 것을 잃었던 끔찍한 기억 때문이다.

 이동중인 참가자들 

한강을 건너 노량진으로 가야 했지만 징집대상이었기 때문에 그는 처자식을 먼저 수원의 지인에게 보내고 홀로 한강 이북에 남는다. 처자식을 떠나보낸 것을 후회하던 그는 결국 탈북 피난민으로 위장, 징병을 피해 가족과 다시 만나게 된다. 

 

1951년 1.4 후퇴가 되어서야 비로소 경상남도 부산시 대안동(현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으로 피난하여 동네에 있던 교회에서 살았다. 그해 가을부터는 백낙준의 소개로 거제고등학교 교사에 부임하게 되어 가족들이 거제도로 이주했다. 이범선은 거제고등학교에서 3년간 근무한다.

 

1952년 동국대학교 본과를 졸업했고, 1954년 서울로 돌아와 성북구 안암동,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현 경기도 안양시) 등에서 셋방을 얻어 살았다. 1955년부터는 대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고, 이때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해 『현대문학』 4월호에 단편 「암표」, 12월호에 단편 「일요일」을 각각 투고했다가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본격적으로 등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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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기자협회 초대회장
서울신문 편집부 팀장
내외신문 선임기자
월간기후변화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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