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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南怡)장군의 기백을 기린다

편집부 | 기사입력 2013/11/27 [09:56]

남이(南怡)장군의 기백을 기린다

편집부 | 입력 : 2013/11/27 [09:56]


[내외신문=최윤주 기자] 역모의 누명을 쓴 채 억울하게 죽어 한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조선 세조때의 무신 남이(南怡)장군을 기리는 기원제가 경기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 남이장군 묘(경기도 기념물 13호)에서 진행됐다.

지난해 화성문화원에서 한 차례 제를 지냈으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올해부터 비봉면이 주최하고 주민자치위원회의 주관으로 새로 제를 올리게 된 이날 기원제는 이명자 비봉면장과 이장단, 주민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김홍성(민주), 박기영(새누리)의원 등 지역구 의원들은 제126회 제2차 정례회가 겹치며 참석치 못했다.

초헌관으로 나선 이명자 비봉면장은 “남이장군의 기백을 이어받은 우리 비봉면에서 이런 행사를 개최하게 되어 뿌듯한 마음이 든다”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비봉면이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데 앞장서고, 한편으로는 지역 주민이 단합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남이장군은 이시애의 난에서 세운 전공으로 26세에 병조판서의 자리에 올랐으나, 유자광의 고변으로 역모의 혐의를 받아 1468년(예종1) 10월 27일, 강순, 변영수, 변자의 , 문효량 등과 함께 저자거리에서 처형되며 28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또한, 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 돌을 칼을 갈아 없애고) 頭滿江水飮馬無(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男兒二十未平國(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後世雖稱大丈夫(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랴)는 시가 전해져 남이장군의 충절과 기백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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