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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총리 후보자 결국 사퇴

조경종 | 기사입력 2013/01/29 [22:16]

김용준 총리 후보자 결국 사퇴

조경종 | 입력 : 2013/01/29 [22:16]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삼청동 인수위공동 기자회견장에서 브리핑을 갖고?총리 후보직을 전격 사퇴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으로부터 총리직 제의를 받은 지 6일 만의 일이다.

김 후보자는 발표문을 통해 "저의 부덕의 소치로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드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누를 끼쳐 국무총리 후보직을 사퇴하기로 결심했다"며 고개 숙였다.

김 후보자가 인수위원장에 발탁된 것도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오늘 밝힌 총리후보직 사퇴역시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에 부응하는 현명한 결단이라는 평이 우세하다.

후보자 본인을 비롯한 두 아들 병역면제, 부동산 투기와 편법증여 의혹, 등 좀처럼 숙으러들지 않는 많은 문제들로 눈덩이처럼 커져버린 각종비리 의혹을 속 시원히 해결할 능력도 방법도 마땅치 않은 시점에서 후보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았다는 평이 우세하다. 여의도 정가의 한 인사는 “부동산 투기 붐이 일던 70~80년대 개발호재가 있는 이른바 알짜배기 토지와 주택을 매입하는 것으로부터 7세 아들명의로 구입한 골프장 개발 호재 노린 투기행위, 세금을 회피할 목적으로 장 차남의 명의로 구입한 서초동 대지와 은평동 주택, 서울과 수도권 일대 8건에 대한 부동산을 매입했다”며 “김 후보자의 사퇴는 그나마 다행이고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치유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준 위원장은 학업에 관한한 천부적인 소질과 놀라운 두뇌를 가졌다는 평을 받아왔다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이 이를 증명해 준다. 지금도 수많은 사건 서류들을 꼼꼼히 살피고 정확히 핵심을 짚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법관에 임용된 후 서울가정법원, 광주 고법, 서울 고법 부장판사를 거처 서울가정법원장을 역임하고 1988년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고 시민의식이 아직 성숙하지 않던 과도기적 시대에 장애인으로서 처음으로 대법관에 임명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김 위원장은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중증 장애인이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어머니의 등에 업혀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졸업하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쳐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그 당시에는 학교에서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나 대우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지금은 ‘장애우‘라는 신조어를 쓸 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에는 장애인 학우에 대한 편견과 학대가 공공연히 학내에서 벌어졌던 시기였다.

사회적으로 열악한 환경과 학교생활에서도 남다른 심적인 고초를 당했을 법한 김 위원장의 인생여정을 뒤 돌아본다면 결코 편치 않았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금 후배 법조인으로부터 ’신선’이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법치주위에 대한 소신과 청렴한 성격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그는 흔한 스마트폰은커녕 휴대전화도 없다, 허례허식을 싫어하고 남다른 검소함이 몸에 밴 말 그대로 신선의 경지에 오른 우리사회의 원로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 그것은 그도 역시 세월의 흐름 앞에 어쩔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과 견주고 좀 더 잘 살아보겠다는 욕심을 자제하지 못한 인간적인 미완의 아쉬움은 지금도 그의 뒷모습 그림자로 남아있다.

“열심히 일한 그대 이제는 떠나라“라는 광고 문구가 생각난다.

김 위원장에게 위로의 말을 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한 마디 덕담하자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지었거든 나에게로 와 쉬거라’ 성경구절을 인용해 본다.

조경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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