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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 현충원엔 아직도 친일파가 누워있다: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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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 현충원엔 아직도 친일파가 누워있다

편집부 | 기사입력 2013/08/15 [11:39]

국립묘지 현충원엔 아직도 친일파가 누워있다

편집부 | 입력 : 2013/08/15 [11:39]

[내외신문=편집부] 민주당 김광진 의원은 제 68주년 광복절을 맞아 지난 14일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국립묘지 안장을 금지하고, 동시에 이미 안장된 자도 이장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개정안에는 이미 국립묘지에 안장됐지만, 서훈이 취소돼 안장 자격을 상실된 자는 이장을 의무화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일본으로부터 억압과 고통을 받던 세월에서 독립된 날로 대한민국의 가장 큰 오점 중의 하나는 일제강점기에 같은 동포를 괴롭히며, 일본에 충성을 다 했던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던 일이다.

 

해방은 됐지만, 오히려 친일파들은 권력과 부를 형성해, 대한민국을 잘못된 가치관과 역사의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런 친일파의 후손들이 친일의 대가로 받은 엄청난 재산을 다시 물려받고, 심지어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숭고한 애국지사와 함께 버젓이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은 죽어서도 수십 년 동안 훈장 하나조차 받지 못했지만, 친일파들은 떳떳하게 훈장도 받고 국립묘지에 당당하게 안장돼 있다.

 

광복절을 맞아 비통하고도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친일파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통해 알아본다.

친일파 중에서 종교인의 타락은 일반인보다 더 치밀하고 무서웠다. 이들은 종교라는 특성을 활용해서 조직적으로 모금 운동을 전개하고, 법회와 예배 시간에 적극적으로 일본을 찬양하며 자신들의 제자와 신도들을 일본을 위해 희생시켰습니다.

 

백낙준은 1950년 이승만에 의해 문교부 장관에 임명되었지만, 친일 행적으로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재심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그런데,백낙준은 전두환 국정자문위원과 문교부 장관이었다는 자격으로 국가유공자 묘역에,이종욱은 초기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애국지사 묘역에 지금도 누워 있다.

 

엄민영은 일제강점기 고위공무원이 되는 엘리트코스인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해 조선총독부 임명으로 임실군수와 무주군수를 역임했던 인물로 그는 당연히 친일파였지만, 주일대사로 죽었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묘역에 안장됐다.

 

황종률은 일본 괴뢰정부 만주국에서 일본에 충성하는 인재를 양성기관인 대동학원 출신이었으며, 단순 대동학원 출신이 아닌 만주국 경제부 금융과 사무관으로 일본의 태평양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황종률도 충청북도 도지사와 체신부 장관을 거쳐 국회의원 재임중 사망했다고 국가유공자 묘역에 안장됐다.

 

만주국 협화회 회원이었던 이선근은 조선일보 입사 한 달 만에 사설을 쓰는 등 사실상의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내다가 자신의 야망을 위해 만주로 갔던 인물이다.

 

그는 만주에서 만주국 협화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항일단체를 토벌하는 관동군을 지원하는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 에서 일본에 적극적으로 충성했다.

 

만몽산업 주식회사 상무이사로 재직하던 이선근은 관동군에 군량미를 보급하면서 일본전쟁에 적극 참여한 친일파 중 가장 친일파에 속했던 인물이다.

 

이토록 이선근은 친일파로 살았지만, 해방 후에는 정치적 아부 수준을 넘어, 정권에 기생하는 지독히도 뻔뻔하고도 몰염치한 삶을 살았다.

이응준은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망명해 독립군으로 활약한 지청천과는 달리 일본군 장교로 일본의 침략 전쟁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던 인물이었다. 중일전쟁 당시 항일조직을 토벌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조선에 와서는 배속장교로 학생들의 군사 훈련 교관으로 복무했다.

 

그는 태평양 전쟁으로 1943년 징병제가 실시되자, 징병제를 선전하며 지원병제도와 학도병으로의 참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다녔다. 이응준은 일본으로부터 훈4등 서보장,훈3등 서보장의 훈장을 받았으며, 해방 후에는 미군정 고문으로 대한민국 국군 창설을 주도했다.

 

김창룡은 헌병보조원 출신으로 얼마나 지독하게 항일조직을 토벌하고 적발하고 다녔는지 헌병오장까지 특진했던 그의 성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정일권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 간도헌병대 대장으로 복무했다. 이 당시 헌병대는 최고의 권력기관으로 간도헌병대 대장은 실질적인 그 지역 사람들의 목숨을 쥐고 흔든 존재였다.

 

특히, 정일권은 자신의 모교인 광명중학교에서 “앞으로 군에 입대하는 것이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가장 유망하고 현명한 길이다“라고 연설하며, 조선인들의 군입대를 독려했다. 그는 일본인도 가기 어려운 만주국 육군대학을 거쳤는데, 이 과정은 일본군 현역장교가 장군이 되는 최상의 엘리트 코스였다.

 

항일투사들을 사냥한 간도특설대 출신인 백선엽은 죽기도 전에 현충원 안장이 결정됐다. 민족의 독립을 방해하고 탄압했던 그에 대해 한미동맹 60년을 맞아‘백선엽 한미동맹상’을 제정한 것에 대해 각계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립묘지는 신성한 민족의 성지다. 친일파가 당당하게 들어 올 자리가 절대 아니다.

광복절에 돌아가신 애국지사를 추모하기 보다,민족의 반역자들을 독립투사 옆에서 하루빨리 이장해야 할 것이다.

 

애국지사 묘역이 '일본의 성전을 위해 조선인들은 영혼까지 천황폐하에게 바쳐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조선인을 죽음으로 내몬 친일파 인물들이 묻혀 있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에서만 자행되는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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