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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전쟁 : 두근두근 키스 콘서트

이종학 | 기사입력 2014/02/15 [13:57]

별들의 전쟁 : 두근두근 키스 콘서트

이종학 | 입력 : 2014/02/15 [13:57]


2014년 2월 14일, 킨텍스 1관 홀 5에서 벌어진, 역사에 길이 남을 배틀을 아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다. 장소가 다소 외진 데다가, 오후 8시 반에야 공연이 시작되었고, 관심을 끄는 아이돌 그룹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아주 행복한 3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당초 발렌타인 데이 기념으로 치러진 이번 공연은, 별똥별과 좋은 사회를 위한 100인 이사회의 공동 주최 행사로 기획되었으며, 저스틴 데이비스(Justin Davis)를 비롯한 여러 회사들이 후원한 형태였다. 여기서 나는 저스틴 데이비스에 주목했다. 기본적으로 주얼리 회사로 다양한 악세서리와 보석 가공품을 만드는데, 그 컨셉이 특이하고, 한류 스타들이 애용할 만큼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간 많은 행사에 협찬을 해온 터라, 이번 이벤트 역시 내심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120% 충족이 되었다.

 

 

 

이번 행사의 테마는 발렌타인 데이로, 연인들을 위한 달콤한 러브 발라드와 솜사탕같은 몽실몽실한 분위기로 진행되었을 거라 대략 짐작했을 것이다. 물론 겉보기엔 그랬다. 하지만 당대를 대표하는 보컬들이 총집합한 이번 행사는 가수들에게 상당한 압박감을 줬다. 심하게 말하면 무슨 컴페티션과 같은 느낌이었고, 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박진감을 선사했다. 그야말로 스타 워즈, 별들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나는 과연 노래를 잘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단순히 성량이 좋거나, 톤이 매혹적이거나, 잘 질러대면 좋은 보컬일까  아니면 스캣 송을 잘하거나, 무대 매너가 좋거나, 외모가 출중해서 일종의 보너스 점수를 따야만 상찬을 받는 것일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무튼 그런 면에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들의 축제 한마당은 행사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무대엔 오프닝을 장식한 신초아, 김수찬 등을 제외하면 총 7명이 등장했다. 그중 남성 보컬은 신용재, 정동하, 휘성 등 3명이고 나머지 4명이 여가수들이다. 그런데 그 면면이 놀랍다. 알리를 필두로, 효린, 에일리 그리고 백지영 순이다. 세상에 이런 라인 업을 본 일이 있는가  자연스럽게 나는 이들 여가수에 포커스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남자 가수들이 상대적으로 기량이 떨어지거나 혹은 네임 밸류가 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다만, 이런 무대의 경우, 아무래도 남자가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여자의 경우, 외모라던가, 의상이라던가, 백 댄서와의 안무라던가, 아무튼 보여줄 게 많다. 그냥 MR을 틀어놓고 노래하는 텅 빈 무대라는 공간을 상정해보면,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남자 가수들을 직접 보고 느낀 점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잘 생기고, 성량도 풍부한 데다가, 무대 매너도 멋졌다. 그래서 더욱 백 밴드가 아쉬웠다. 꼭 록 그룹을 만들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기타리스트와 어우러져서 애드립을 하거나, 밴드를 뒤로 하고 멋지게 점프를 하는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예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가왕으로 칭송받는 조용필의 경우, 위대한 탄생이 없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런 무대에서 MR만 틀어놓고 노래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카리스마가 엄청 반감되지 않겠는가.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4명의 여가수들을 살펴보자. 첫 테이프를 끊은 알리의 경우, 당일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번 무대가 갖는 의미를 잘 아는 터라,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했다. 나는 방송국에서 몇 번 그녀가 출연해 를 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지만, 그녀의 본모습을 봤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특히 를 변형해서 관객과 호흡하는 부분에서 일종의 짜릿한 순간을 선사했으므로, 상당히 많은 가능성을 가진 가수라고 새삼 확인했다. 단, 본인의 히트곡인 의 다소 처량하고, 쥐어짜는 듯한 느낌이 그리 신선하게 와닿지 않는다. 전략을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효린의 경우, 워낙 타고난 재능이 뛰어나서 별로 쓸 말이 없다. 가창력, 안무 심지어 용모까지 3박자를 골고루 갖춘 데다가, 매번 무대에 오를 때마다 베스트를 다하기 때문에, 자잘한 부분을 갖고 트집을 잡고 싶지 않다. 오히려 앞으로 우리 가요계를 이끌어갈 재목이기에 주위에서 잘 보호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 이번에 솔로로 나온 그녀의 컨셉을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이 시대의 아이콘이 비욘세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노래나 퍼포먼스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또 효린의 목표가 비욘세라고 하더라도, 난 그보다 더 높은 기준을 갖고 정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다양한 음악을 듣고, 수많은 가수를 들은 내 경우, CD 랙에 비욘세 음반이 한 장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는 이런 팬들도 있는 것이다.

 

 

 

또 그녀의 솔로 곡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굳이 섹시함을 컨셉으로 화려한 안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그냥 수수하게 청바지 입고 나와 노래해도 된다. 이번 공연의 경우 를 훌륭하게 소화하는 부분에서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효린이라는 여가수를 계속 보호하고 또 키워가려면 이런 좋은 곡을 부르게 하는 것이 먼저지, 핫팬티로 무장한 괴상한 안무가 먼저는 아니다. 심지어 본인조차 그 안무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효린은 완벽하다. 그 때문에 쉽게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예전 메시를 누가 평하면서, 그에겐 축구가 너무 쉬워서 자칫 흥미를 잃을까봐 걱정이 된다고 했는데, 효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저렇게 노래를 잘하고, 순간수간 엑스터시도 주지만, 어딘지 모르게 건조한 느낌이 남는다. 내가 그녀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일까?

 

 

에일리는 데뷔 때부터 큰 관심을 가졌던 가수다. 나는 그녀의 이름 앞에 “붐 붐” (Boom Boom)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다. 붐 붐이라는 것은, 바주카 포를 쏠 때 나는 엄청난 굉음을 말한다. 진짜 그녀의 가창력은 바주카 포 못지 않다. 덕분에 그녀가 붐붐을 하면 객석은 혼비백산, 난리가 난다. 두 곡 정도 부르고 나면, 강력한 포화를 맞은 폐허가 연상될 정도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정말 관객들이 그런 붐붐을 원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냥 노래를 듣고 싶다. 그 노래가 조금이라도 의미를 갖고 우리의 삶에 다가오면 더욱 행복하고, 그래서 틈만 나면 흥얼거리고 따라하고 싶다. 그런데 아무리 노래 잘하는 분들이라도 이런 붐붐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혹시 본인이 일종의 서커스 광대가 아닌가 이 시점에서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재능이 아까워서다. 그런 목소리는 신이 준 선물이다. 그런데 그것을 낭비하고 있다. 붐붐 폭격에 쓸 용도로 난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무대를 한 두 번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계속해서 보라고 하면,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 것이다. 그러다가 혹 성대를 다치면 어쩌나 걱정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닐 듯싶다. 대개의 가수들이 댄스엔 약한데, 에일리는 안무도 잘 소화한다. 인물도 좋다. 정말로 귀한 인재다. 우리 가요계에서 이렇게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어떻게 가공할지 나는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볼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백지영. 무려 밤 11시가 넘어서 무대에 섰으니, 팬이나 가수나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역시 명불허전,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무려 4곡이나 불러준 데다가, 각 노래마다 충실한 감정이입에 그냥 탄복하고 말았다. 말하자면 신나는 춤곡을 멋진 율동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더니 이어지는 발라드에선 찔끔찔끔 눈물이 나온다. 그녀는 진짜 프로다!

 

 

여기서 나는 송강호나 김윤석같은 배우가 떠올랐다. 무르익을 대로 익어서 뒷통수에 카메라를 대도 연기가 가능한 장인들. 감정 처리나 표정 연기 심지어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철저하게 계산되었으면서도 자연스러운 경지. 백지영을 본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고, 또 즐거웠다. 그리고 그 앞에 출연한 여가수들이 그녀에게서 뭘 느끼고 뭘 배워야 하는지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제 슬슬 결론을 내자. 과연 노래를 잘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그것은 가수에게 답이 있지 않다. 바로 노래에 있다. 정말 자신에게 잘 맞는 노래를 직접 쓰거나 혹은 받는다면, 팬들은 금세 안다. 그런 노래엔 흡인력이 있고, 여운이 있다. 소주 한 잔 할 때, 밤에 버스 뒷자리에 혼자 앉아서 갈 때, 잠을 자다가 물 한 컵 마실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음과 가사들. 그런 노래와 우리는 함께 살고 싶은 것이다.

 

 

 

 

 

백지영이 자신의 히트곡을 한 소절 부른 후 관객들에게 마이크를 넘길 때 바로 이어지는 가사가 나왔다. 이건 모르겠지 하면서 다른 소절을 부르면 금세 화답이 온다. 일종의 퀴즈고, 놀이지만, 이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그게 바로 팬들의 마음이고, 즐거움이고, 바로 그게 가수가 노래를 잘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최고의 주방장은 칼을 잘 쓰거나 무슨 요리를 잘하는 데에 있지 않다. 단골 손님이 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선 순간, 그의 표정이나 동작만으로도 저 손님이 오늘은 뭘 먹고 싶어하는구나 알아내는 것이 최고의 주방장이다. 그러니 더 이상 붐붐은 삼가자. 꼭 필요할 때만 쓰면 되는 것이다.

 

 

 

P.S.) 공연을 끝내고 나서 무대에서 내려오는 알리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주위에서 부축하고, 조심스럽게 데리고 나갔는데, 얼핏 보니 얼굴이 창백한 데다 온통 땀투성이다. 그렇다. 탈진한 것이다. 이 엄청난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완전 연소를 하고 내려온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그녀에게 사랑에 빠졌다. 정말 멋지다. 그녀의 신곡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종학 blog.naver.com/john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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