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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교회/서창희 목사] “개선의 저주” / 마태복음 12:43-45 / 20240128: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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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교회/서창희 목사] “개선의 저주” / 마태복음 12:43-45 / 20240128

서창희 | 기사입력 2024/01/29 [07:55]

[한사람교회/서창희 목사] “개선의 저주” / 마태복음 12:43-45 / 20240128

서창희 | 입력 : 2024/01/29 [07:55]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하게 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열악했던 삶이 개선될 때이다. 위기가 왔으나 건지시고, 병들었으나 고치시고, 백수였으나 돈 벌게 하신 개선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왔다. 잘 되게만 해주신다면 얼마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

 

하나님 없는 삶의 개선은 저주이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태복음 13:43,45) 예수님은 내 삶을 망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 주셨다. 그러나 그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우지 않으면, 오히려 삶은 더 강한 악의 세력에 사로잡힌다.

 

개선되는 내 삶과 하나님은 비례하고 있는지 점검하라. 개선의 저주란 하나님을 찾게 되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 더 많이 생긴 만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시간을 쏟고 있는가? 삶이 더 견고해진 것에 비례하여, 기도시간도 충분히 늘어나고 있는가? 살려주신 만큼, 하나님 원하시는 뜻대로 행하고 있는가? 개선에 취하면, 더 이상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표현도 가능하다. 하나님이 개선되지 않고 머무르게 하신 자리는, 더 하나님을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나를 훈련시키시는 과정이다.

 

죄인이 받아야 할 심판은 무엇인가? ‘개선되지 않는 저주’이다. 그것이 죽음이다. 죽으면 끝이다. 죽음은 좋아질 수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죽음을 영생으로 개선하셨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한복음 6:40) 이제 내 삶은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개선이 보장되어 있음을 믿는가? 오늘의 삶도 확신해야 한다. 내 삶에 모든 ‘좋아지는 것’은 하나님께만 있다. 더 좋아지려면, 주님만 사랑해야 한다.

 

현재의 개선에 안주하는 미련함을 버리라. 죽음도 개선하신 분이, 내 삶을 더 좋게 개선하실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두려운 경고로만 받지 말고, 초대와 사랑으로 받아들여 보라. 더 좋아지고 싶지 않은가? 끝까지 하나님께만 매달리라. 그것이 개선의 저주를 피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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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사람교회 서창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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