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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고 싶은 곳 / 이태식 수필가

편집부 | 기사입력 2018/04/16 [09:26]

여행하고 싶은 곳 / 이태식 수필가

편집부 | 입력 : 2018/04/16 [09:26]


사람들은 어딘가에 지금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 먼 곳은 이곳보다는 더 좋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산다. 그것은 현실이 힘들고 부족하여 채워지지 않고 초라하기 때문이고 힘든 현실에서도 계속 살아가기 위해 뭔가 보이지는 않지만 먼 어떤 곳은 여기보단 적어도 더 나을 것이라고 여기며 지금 여기를 견디어 가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현실을 잊기 위해 속에 품고 있는 꿈과도 같은 것이다. 어떤 희망이나 지금보다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어야 사람은 현실을 더 충실히 힘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아마 종교도 인간이 그래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바로 종교의 이름으로 완벽하고 나를 구원할 신을 가슴에 품고 현실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자신이 현실에선 초라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어떤 보이지 않는 세계는 지금보다 덜 힘들고 기분 좋을 거라 여긴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늘 불안하다. 종교 같은 산 너머, 바다 건너 저 먼 곳은 여기보다 더 좋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리고는 언젠가는 그곳을 방문할 거라 다짐한다. 그래서 지금의 힘든 현실을 겪으며 견디어 간다. 그런 희망이나 꿈이 없으면 인간은 힘든 현실에서 주저앉고 더는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힘든 현실을 견디는 힘은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희망이 있고 완벽한 곳을 언젠가는 방문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를 더 잘 살아나가는 것이리라.

여행은 바로 이런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지금과 현실을 떠나 새로운 설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신대륙도 그런 보이지 않는 설레는 곳을 가다보니 인간이 발견한 곳이리라. 내가 가는 곳을 잘 몰라 불안하기도 하지만 뭔가 긴장이 되면서 두려움 속에서도 어떤 설렘과 기분 좋음이 나를 찾아온다. 그러나 요즘은 갈 곳에 대한 정보를 거의 다 알고 가고 그곳엔 우리나라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여행자들의 안전을 책임지기도 한다. 그러면 설레고 두렵고 그런 가운데 희열 같은 게 많이 줄어든다. 그러나 이것이 있다. 바로 지겨운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다.

현실 속에 묻혀 살면 삶의 목표도 모르고 계속 앞으로만 간다. 그러다가 병이 들고 나이가 들면 인생이 허무해진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가서 현실과 주변인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을 거리낌 없이 행한다. 나를 아는 사람이 지켜보지 않으니까 행동에 자신감이 붙는 것이다. 그러면 속에 쌓였던 불만들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은가, 이 넓은 세상 속에서 내 존재의 의미 같은 철학적인 물음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자기 삶을 돌아보고 주변 속에서 내 위치를 파악해 보고 전체를 관조해 본다. 먹고사는 현실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새의 눈으로 밑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나의 위상과 삶에서의 나의 역할, 내가 가진 것을 실현할 방법 같은 것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일상에 파묻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비로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현실과 연결되어 있으면 발견하기가 힘들다. 여행은 현실을 끊어버리고 현실에선 하지 못했던 것을 하러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혼자 가야 한다. 같이 가면 완전히 현실과 결별할 수 없다. 여행을 떠나 현실과 담을 쌓은 곳에서 나를 객관화해 보고 앞으로 남은 삶과 내 존재, 그리고 큰 흐름 속에서 나의 실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일상에 얽매여 있던 내 모습을 그곳에서 끄집어내어 일상과 나를 나란히 놓고 그 둘의 관계와 그 속에서의 내 역할에 대해 폭넓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런 것 때문에 우린 여행을 가는 것 같다. 현실과의 단절을 맛보기 위해. 온전히 나와 세계만 존재하는 곳에서.

나는 책을 좋아한다. 앞으로 남은 삶 동안 책만 읽고 글을 쓰면서 살 것이다. 나는 글을 잘못 써도 상관없다. 그래도 계속 쓸 것이다. 그래야만 내 속에 있는 분노 같은 감정 덩어리를 조금이나마 식힐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글을 통해 계속 쌓이는 응어리를 끄집어내서 태워야 한다. 나는 강원도로 떠나고 싶다. 강원도는 작가가 많은 고장이다. 아마도 산천이 수려하고 외부와 고립되어 있어 그런 것들과 대화하고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 많아서일 것이다. 외부 소음은 차단되고 자연과 자신만이 존재하여 자연과 자신이 일대일로 만나는 시간이 많아서일 것이다. 그곳엔 내가 잘 아는 작가들이 있다. 신사임당, 김유정, 이효석, 현역 작가 이순원, 윤후명, 강영숙. 이기호, 김미월, 김희선, 최은미 등 작가가 많다.

나는 그들이 태어난 곳이나 커가면서 거쳐 간, 작품에 등장하는 곳을 방문해 보고 싶다. 내가 강원도를 여행하는 것은 관광지가 많아서가 아니라 작가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쓴 책을 필수품으로 휴대하고 강원도를 여행하면서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를 방문하고 글과 비교하면서 그곳에서의 감상을, 숙박지에서 또는 휴게소 같은 곳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적어나가고 싶다. 나는 강원도를 여행해 그들 작품을 더 실감나게 감상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그 작품과 그 장소가 내 머리에서 더 오랫동안 머물 것 같다. 단지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강원도로 가고 싶은 것이다.

 

이태식 수필가 프로필

충북 음성 출생

청주대학교 영문학 전공

1991년 서울교통공사 입사

컴퓨터 자격증 14개

회사에서 치른 ‘정보화경진대회’ 대상

퇴직자를 위한 기억에 남는 글쓰기 ‘가족사랑 체험수기’

서울교통공사 통합기념 사보에 게재

현)서울교통공사 근무

「푸른문학」 수필 등단, 「푸른문학」 운영이사

공저: 「푸른시 · 수필」 100선집

 

(상임고문 조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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