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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 해외에서도 인지도 높은 “청계천 헌책방 거리”

편집부 | 기사입력 2018/03/14 [12:11]

[현장 취재] 해외에서도 인지도 높은 “청계천 헌책방 거리”

편집부 | 입력 : 2018/03/14 [12:11]


봄가을 수학여행 철 “중국, 일본 학생들 단체로 몰려들어”

[내외신문=김윤정 기자] 청계천 헌책 방가는 요즘 '중흥기'에 접어든 느낌이다 . 헌 책을 찾는 인구들이 2,3년 새 부쩍 늘어 거리 전체에 활력이 넘친다. 물론 IMF덕이 크다. 이 곳에서 30년째 '홍문관'을 운영하고 있는 임원영씨는 "3~4년전에 비해 30% 이상이 증가했다"며 "IMF 직후에는 발디딜 틈 없이 손님이 몰렸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유는 또 있다. 근처에 밀리오레, 두타등 대형 패션상가 건물이 들어서면서 유동인구가 급증했다. 이 곳을 찾았던 쇼핑객들이 엎어지면 코닿는 인근 헌책방으로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상현서점의 주인은 "쇼핑가방을 손에 들고 책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고 밝혔다. 동화책을 뒤적이던 주부도 ????아이들 겨울옷 사러 나왔다가 아이들 책도 구경할 겸 해서 들렀다????고 말했다.

새로 문 여는 가게도 늘고 있다. 올 들어서만 3집이 새로 신고식을 해 헌책방은 모두 50여개로 늘었다. 홍문관 서점 임원영씨는????고서점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곳이라 웬만해선 쉽게 차리기 어려운데 3개나 늘었다????며 새로운 헌책방의 등장을 반겨했다.

청계천 헌책방 거리는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일본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자주 찾고 있다. 30년 동안 이 곳을 지켜온 양지서림의 성세제씨는 "봄 가을 수학여행 철만 되면 어떻게 알고 왔는지 일본 학생들이 단체로 몰려든다.????며 ????책은 안사가지만 책방 안에들어와 무슨 책이 있나 살펴보고 일본서적이 있으면 반가와 한다"고 말했다.

주위에 들어선 대형 패션상가는 청계천 헌책방의 분위기를 바꿔놨다. 2년 전에 문을 연 "정은도서 동대문점. 청계천에선 보기 드물게 새 책을 취급하는 체인 서점이다."의류나 패션 관련 외국 서적을 20년 넘게 수입해왔다"는 정은도서의 한 관계자는 ????동대문 주위에 패션디자이너들이 많이 드나들어 이 곳에 분점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 체인점답게 널찍한 매장에 신간서적들을 시원스럽게 진열해 놓아 헌책방 거리에선 튀는 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청계천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싼 가격. 소설은 모두 헌 책이다.대부분 1천500원~2천원에 거래된다. 주로 유명 작가들의 베스트셀러가 여기서는 스테디셀러로 한몫 톡톡히 해낸다. 삼국지, 대망, 혼불, 태백산맥, 토지 같은 국내외 대하역사소설도 전집으로 잘 나간다. 사회과학 서적은 정가의 50% 정도면 거뜬히 손에 넣을 수 있다.아동용 전집류는 많게는 시중의 70% 정도. 패션이나 디자인 등 외국 전문서적은 신간이 70%,헌책은 50% 이하다. 사전류는 보통 20~30% 할인돼 시중에서 2만7천 원 하는 영한사전 새책이 2만원, 출판된지 1년이지난 재고는 1만5천원,좀 낡았다 싶은 것은 1만원선이다.

그러나 싼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정주나 조지훈 같은 시인들이 해방 전에 낸 초판 시집은 한마디로 "값이 없다."부르는 게 값이다. 그래서 이 곳의 단골 가운데는 교수나 대학원생 등 연구자들이 많다. 그들은 대부분통계에 잡히지 않는 청계천 고객이다. 주로 전화로 책을 주문하고 택배로 받아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계천에는 "보물 찾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서가 빼곡히 들어찬 수만권의 책을 쭉 둘러보고 필요한 책들을 하나둘 수확해간다. 국내외 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한 고객은 "인도와 중국문화에 관한 영문 서적 2권을 5만원에 구입했다"며 "많이 싼 가격은 아니지만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책을 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한 달에 한번은 꼭 들른다."고 말했다.

청계천에 헌책방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초반.고물상에서 수집한 중?고교 교과서를 내다 팔면서 거리가 형성됐다. 70년대말만 해도 100여곳이 넘게 성업을 했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함께 헌책방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양지서림의 성세제 사장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선 경제가 좋아지면 헌 책이 더 많이 팔린다더니 우리나라는 그 반대다"며 80년대 중반 이후 침체기를 겪었다고 전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이 거리를 드나드는 사람들도 달라졌다.60년대 고객은헌 교과서를 찾던 중?고생들.70년대와 80년대 중반까지는 고시생이나 대학교재와 사회과학서적을 찾는 대학생들이 주로 드나들었다.22년째 이곳에서 고서를 만지고 있는 상현서점 이상화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단골로 드나들던 학생이나 고시생들이 대학에 입학했다거나,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며 인사하러 오는 경우가 많았다.그 때 고서점하는 보람을 맛본다"고 밝혔다.

요즘은 패션잡지를 사는 중고교 여학생들이 부쩍 많아졌다. 이들이 주 고객으로 등장하면서 가게 앞 판매대는 주로 일본이나 미국의 패션잡지들이 점령했다. 홍문관 임원영씨는 "예전엔 공부하기 위해 헌 책을 찾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감상하기 위해 지질 좋고 예쁜 책만 찾는다."며 변화한 세태를 꼬집었다.

가게들은 분야별로 전문화돼 있다.대학교재,아동도서,고서,종교서적 등 다루는 품목들이 정해져 있다. 이 곳 가게 가운데는 25년 이상 된 곳이 많다. 아예 대물림하는 곳도 5집 정도.새로 가게를 내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 곳에서도제 수업을 거쳤다.

IMF 이후 "반짝경기"를 맞은 청계천이지만 앞날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아동서적을 취급하는 한가게의 사장님은 ????인터넷에서 전집류의 헌책을 직거래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그 가격이 이 곳과 거의 비슷해 사람들이 일부러 이곳에 올 필요가 적어졌다"며 "인터넷이 헌책방의 고객을 많이 빼앗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문 세대가 사라지는 것도 청계천을 우울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상현서점의 이상화씨는 "한자가 많은 고서는 요즘 한글세대에게는 책으로서 의미가 별로 없다"며 "50대 이후 세대들이 사라지면 고서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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