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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는데 / 이용식 수필가

편집부 | 기사입력 2017/12/02 [10:22]

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는데 / 이용식 수필가

편집부 | 입력 : 2017/12/02 [10:22]


?농사가 쉽지 않음을 새삼 느낀다. 뭐니 뭐니 해도 우선 농사짓는 땅이 좋아야만 하고, 둘째 날씨가 받쳐 주어야 하며, 그리고 농사를 짓는 사람의 정성이 그 다음이다. 당연히 씨앗이나 모종의 품질은 두말할 것 없이 좋아야 할 것이지만.
그런데 이렇게 힘이 들면서 어렵고 손이 많이 가며, 갖은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인 농사를 업신여기면서 너무 하찮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괜스레 화가 치민다.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하는 일이 힘들면’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야겠다.”라고…. 농사를 알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그저 푸념으로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의 무지한 말 한마디는 농부들의 실상을 너무나 잘 모르고 그저 봄날 땅에 씨앗을 뿌려 놓으면 가을에 추수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한번 생각을 해 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농사나…” 하며 업신여기는 표현을 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소리며, 농부들이 들으면 눈살을 찌푸릴 뿐만 아니라 화를 내고도 남을 말이다. 제발 그러지 마시기를….
예부터 농사는 모든 것의 근본이라 했다.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을 들어보기는 했는가 묻고 싶다. 이는 비록 농경시대에 생겨났겠지만, 아무리 첨단을 달리는 현대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농업은 근본이며 어느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진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촌부(村夫)가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농부는 아니다. 다만 자그마한 텃밭 농사를 지으며 농부들 흉내를 낸다고나 할까, 부업으로 자그마한 텃밭 농사를 짓고 있지만 농사의 기본만큼은 지키고 배우고 익히며 농사를 지으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이라서 감히 스스로를 농사짓는 촌부라고 말하곤 하는 것이다.

벌써 며칠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고, 기억하기도 싫은 비가 연일 추적거리다가 또 쏟아지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가을 장마도 아닐 텐데 왜 이런 날이 계속되는 것일까  한창 익어야 할 콩 작물 열매들이 잦은 비에 익지를 못하고 있다. 멀대처럼 키만 웃자라서 꺽다리가 되었다가 열매의 무게와 빗물 무게를 못 이겨 그다지 강하지도 않은 바람에 그만 가지가 꺾이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아예 통째로 자빠지기까지 해서 걱정스럽다. 콩과 고추가 그렇고, 커다란 키의 들깨도 마찬가지다.
작년에는 야생동물 고라니 습격으로 고전하다가 뒤늦은 잦은 비로 인하여 콩 농사를 망쳤는데 올해 또 그럴까 봐 노심초사하는 촌부이다. 올해는 네 종류의 콩을 심었다. 포실포실한 맛이 좋은 호랑이 무늬 줄콩, 콩깍지가 엄청 큰 작두콩, 백태라고도 하는 메주콩, 약효가 탁월하여 약콩이라 하는 자그맣고 까만 쥐눈이콩(서목태)이 그것들이다.
콩 농사 중에 줄콩과 작두콩은 그런대로 꽤 많은 열매가 대롱대롱 열려서 익고 있다. 지지대를 잘못 세운 것이 문제였지만 나무를 잘라다 보완을 했으니 괜찮을 듯싶다. 이대로만 잘 익는다면 머잖아 괜찮은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메주콩은 지금 한창 열매가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냥 봐선 잘 안 보이지만 잎을 살짝 들춰 보았더니 주렁주렁 열매가 꽤나 많이 달려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 하다. 지난해에는 겨우 씨앗을 할 것을 제외하고 아주 조금 수확을 하여 실망을 했었는데, 설마 올해는 그 정도는 아니겠지  현재 상태만 유지된다면 풍작 예감인데….
쥐눈이콩은 이제 아주 자그맣고 앙증맞은 꽃이 피기 시작하였는데 잦은 비와 바람 때문에 온 사방으로 이리저리 쓰러지고 자빠져 있다. 앙증맞을 정도로 아주 자그마한 꽃은 무척이나 많이 피었지만 과연 열매가 얼마나 열리고 잘 여물게 될지가 궁금하다. 날씨가 좋아서 꽃이 핀 만큼만 열매가 맺혀서 잘 익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쥐눈이콩은 촌부와 산골 아낙이 꽤 자주 즐겨 먹는 약콩인데, 잘 자라서 여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사실 콩 농사는 씨앗을 뿌리고 나면 그리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것이라 게으른 촌부로서 선택한 것이다. 다른 농작물은 심고 나서 수확을 하기까지 품을 많이 팔아야 하지만 콩은 기르는 동안은 다소 수월한 편이다. 콩을 좋아하는 아내에게는 좋은 선물이 되고 점수도 따고…, 다만 수확 후에 갈무리를 하는 일이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 농사를 짓는 재미를 느끼게 될 테니까.
 
고추 농사는 해마다 거의 풋고추를 따먹는 용도로 심었다.
올해는 아내가 “우리도 이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서 말려 보자”고 하여, 그러자며 조금 많이 심었다. 매운맛 청양고추도 몇 그루 심던 여느 해에 비해 몇 배나 더 많은 양을 심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반장님 댁에서 모종을 주셔서 심은 아삭이고추까지 합치면 꽤 많다. 여름 내내 비타민이 풍부한 풋고추를 실컷 따먹고도 충분히 빨간 고추로 수확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날씨가 따라 주지를 않는다.
열리기는 엄청 많이 열렸다. 열리기만 하면 되겠는가, 햇볕이 좋아야 고추가 빨갛게 익을 수 있을 텐데…. 그 뿐만이 아니다. 요즘 연일 추적거리거나 쏟아지는 비로 인해 1.2m짜리 고추 지지대를 훨씬 넘게 웃자라 버렸다. 고추밭에 들어가면 작은 키의 촌부는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키가 크고 하얗게 꽃이 피고 열매가 많이 열리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고 반갑지만 정작 원하는 홍고추는 더디게 익으니 괜스레 조바심이 나곤 한다. 모름지기 농사는 듬직하게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이 기본을 터득하지 못하고 있는 촌부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드디어 비가 그쳤다. 비 안 내리는 아침을 맞는 것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이른 아침 발걸음은 자연스레 밭으로 향한다. 그런데 아뿔싸, 이게 뭔가! 간밤의 비바람에 가지가 꺾이고 자빠지고… 보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세울 수 있는 것은 세워 주어야 되겠다 싶어 우의를 입고 하나씩 세우고, 지지대 사이에 끈을 묶어 둔 곳에다 다시 고무 밴드처럼 생긴 것으로 또 묶어 주었다.
그런대로 고추는 괜찮은데 피망이며 들깨는 아예 땅바닥에 드러누웠고, 가지가 꺾여나가 못쓰게 된 것도 여기저기 보인다. 줄콩도 군데군데 쓰러져서 지지대를 보완해서 세우기는 했지만 또 거센 바람이라도 불면 또다시 쓰러질까 걱정스럽다. 오랫동안 연일 내린 비가 남기고 가 버린 상처가 여기저기 남아 있다. 안타깝지만 자연현상이고 하늘의 뜻인 걸 어쩌겠는가  나름의 방법을 동원하여 최대한 복구를 해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음이다.
농사가 참 어렵고 힘들다. 이 만만찮은 과정을 도시 사람들이 얼마나 헤아릴까.


위 작품은 '푸른문학' 겨울호 수필부문 신인문학상 수상작품이다. 이용식님은 이 작품으로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작품 심사평)

자기 응시를 통한 각성의 메시지


수필문학은 자기 응시로 존재를 확인하는 통찰력과 분석에 의한 사색적인 글일 때 가치를 더한다. 글을 쓰는 자체에 만족하지 않고 이성과 감성으로 독자들의 영혼을 씻어 줄 수 있다면 보다 보람된 일이 없을 테니까. 신인상 응모작에서 그 기대를 거두었다. 여간한 수확이 아니다.
이야기는 곧 수필 부문의 이용식 님의 작품, 1차 예심을 거치고 본심에 올려진 에 눈여겨진 것.

이용식 님은 우선, 소재를 분석하고 그 원인과 결과를 확인하는 지성이 따뜻하고 겸손하다. 자신이 체험한 삶의 고뇌가 작품 속에 고루 배어 있어서다.
“벌써 며칠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고, 기억하기도 싫은 비가 연일 추적거리다가 또 쏟아지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가을 장마도 아닐 텐데 왜 이런 날이 계속되는 것일까  한창 익어야 할 콩 작물 열매들이 잦은 비에 익지를 못하고 있다. 농사가 참 어렵고 힘들다. 이 만만찮은 과정을 도시 사람들이 얼마나 헤아릴까. …예부터 농사는 모든 것의 근본이라 했다.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하는 말을 들어보기는 했는가 묻고 싶다.”곧 이 작품의 핵심이다.
아무렴 이 수필은 手記的 관점에서 서술한 작품이지만 歸農을 가벼이 여기는 도시민들에게 메시지를 던져 주는 매력이 있다. 이 같은 능력은 비록 보편적 생각이라 할지라도 작가에게 예술적 성향이 내재되지 않고서는 쉽지 않다. 앞으로도 사회적인 글에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로서 대성하기를 기대한다.
문학상심사위원회 한상렬 이은별 吳容秀(글)


(당선소감)
 
50년 만에 이룬 꿈…
?50년 전 섬마을 소년이 서울로 유학을 오면서 꿈을 꾸었다. ‘글 잘 쓰는 국어 선생님이 되어야지!’라고…. 그러나 그 꿈은 그저 꿈에 불과 했을 뿐 현실은 그 소년의 꿈을 외면했다.
마음 한 켠에 숨겨 두었던 그 소년의 꿈을 버릴 수가 없어 줄곧 책을 읽고, 글을 썼다. 50년이 지난, 오늘 드디어 그 소년의 꿈이 이루어졌다. ‘수필가’라는 칭호를 받게 된 것이다.
 
?“글은 마음이다. 마음이 깨끗해야 하듯이 글은 마음으로 써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주셨던 은사님이시며, 시인이시고 결혼식 주례를 맡아 주셨던 故 안장현 선생님의 당부대로 깨끗한 마음의?글을 쓰련다.

늘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도와준 40년지기 사랑하는 아내 한상숙 여사와 아비의 꿈을 대신하여 선생님이 된 아들 이지훈에게 오늘의 영광을 나누고 싶다.

이용식 (李龍植)
경남 남해 출생
덕수상업고등학교 졸업
1975년 8월~ 2003년 5월 해태제과(주)
광고회사 (주)코래드 본부장 역임
2006년 7월~ 2010년 5월 광고회사 (주)영점오 상무이사 역임
2001년 10월~ 현재 전원생활 및 앤하우스 펜션 공동 운영


(상임고문 조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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