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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朔 / 장정순 시인

조기홍 | 기사입력 2017/03/15 [13:44]

삭朔 / 장정순 시인

조기홍 | 입력 : 2017/03/15 [13:44]


삭朔 / 장정순 시인

바다가 산 위에 올라 달을 삼켰다
산이 바다에 내려가 달을 토했다
본시 둥근 달이 빛을 잃자
바다는 까맣게 몰락하고
조개가 검은 진주를 토해
달 대신 바다에 걸었다
달은 여전히 둥글지만 아무도
검은 진주를 달로 여기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라고
빛나지 않는 것은 삭은 것이라고

달은 바다 밑 대륙붕에도 떠서
검푸른 바다의 전설을 캐고 있다가
달마다 은밀히 여자를 찾아와
생명의 빛을 뿌리고 간다
빛 속에서 나온 바다벌레가
여자의 몸속에서 자라나고
벌레의 꼬리에서는 숲이 태어난다
매월 초하루 산에 오르는 저 까만 달은
여자의 바다에서 태어났다

여자는 달의 기운으로 바다를 품고
생명의 바다에서는 창조가 이어진다
기울어 까만 달은 삭은 것이 아니라
채울 날을 위해 잠시 비운 것
바다에서 떠오를 준비를 마치면
서서히 태양을 향해 나아가
온몸 가득 빛으로 채우고
드디어 온 누리의 밤 신이 된다

여자의 몸은 바다였다가 달이었다가
종국에는 대지가 된다

장정순 시인은 삭, 숨비, 풍경, 달과 고무신, 복숭 등의 시로 월간 우리시 3월호에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다.

당선 소감

가로등도 없이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걸었습니다. 더듬더듬 딛는 발걸음이 늘 불안했습니다. 외지고 낯선 곳에서, 두려웠던 날이 더 많았던 삶에서, 하현달 같은 시 하나 붙잡고 웃습니다. 점점 퇴화하는 시력을 붙들고 지새운 밤들, 남의 옷을 입은 듯 헐렁했던 삶들, 무엇이 그리도 허전하고 그리운지 모르고 살았던 날들, 이제 돋보기 안에서 조금씩 보입니다.
책에만 있고 읽기만 하는 것인 줄 알았던 시였습니다. 머리 아프게 분석해야 하는 것으로만 대했던 시였습니다. 시가 사람의 가슴을 이리도 뜨겁게 하는 것인 줄 너무 늦게 깨닫습니다. 시를 만나고 삶이 열정적으로 변했습니다. 때로는 글자들과 심하게 다투기도 하지만, 그것조차도 흥분으로 다가옵니다.
니체는 무슨 배짱으로 관념의 제국에 돌을 던졌을까요  저는 그이에게서 시인의 자세를 봅니다. 틀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사람, 늘 새로운 눈으로 가슴을 여는 사람, 창조를 향해 굽히지 않고 걷는 사람이 시인 아니겠는지요.

밤새 소복이 쌓인 눈 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뛰노는 아이들
신났구나
플라스틱 미끄럼틀 쳐다도 안 보고
마른 잔디 동그마니 뭉쳐있는
낮은 더미 위에서 미끄럼 타며
꺄르륵 꺅꺅
그리도 재미있구나
인공 구조물보다
풀 더미에 앉은 눈이 더 좋은
네 마음이 신인 게지
신나는 세상
귀신 신神이 아니라
순우리말 신, 신명, 신바람 나는 세상
네 마음처럼 순수하고
맑은 세상을 그린다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걷겠습니다. 신명나는 시를 쓸 수 있게 많이 배우고 다듬겠습니다. 오염된 세상만 보던 눈을 깨끗이 씻고, 사랑의 돋보기를 쓰겠습니다. 탁해진 마음에 사랑의 씨앗을 뿌리겠습니다. 우리詩회가 둥근 보름달이 되고 가로등이 되어 저를 인도해 주셨으니, 질정叱正의 약을 받으며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어둠도 보고 밝음도 보겠습니다.
진정으로 고맙습니다.

약력) 충남 연기 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수료, 국어, 독서, 글쓰기, 논술 지도
현재, 《한국번역가협회》 (번역강좌) 우리말 강사

심사위원으로 홍해리 이사장, 임보 교수, 나병춘 주간이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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