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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엔군 참전의 날을 기리며: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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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엔군 참전의 날을 기리며

편집부 | 기사입력 2017/07/19 [10:10]

[기고] 유엔군 참전의 날을 기리며

편집부 | 입력 : 2017/07/19 [10:10]


 

부산지방보훈청 현충교육팀장 조진희 기고문

 

 

 

[내외신문=변옥환 기자]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즘, 내리쬐는 햇볕 사이를 걷다 녹아내리지 않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폭염에 사람들은 무엇에 관심이 있을까  모르긴 해도 보양식, 더위 식히는 법, 에어컨 등을 검색해보고 있는 분들이 많지 않을는지. 그중에서 지난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 3년이 지난 7월까지 지속한 것을 아는 분들은 몇 사람이나 될까?

 

 

 

올해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불법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이 발발한 지 67주년을 맞은 해이며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 체결 64주년이기도 하다. 물론 6.25전쟁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매년 7월 27일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을 들어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6.25전쟁 발발 이후 패전의 위기 속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결의안에 따라 유엔군 참전이 결정됐고 미국의 참전에 이어 32개국이 유엔의 결의를 지지했으며 7월 중순에는 지지 국가가 52개국으로 증가했다. 이 중 우리나라에 도움의 손길을 보낸 유엔 참전국은 총 21개국으로 16개국이 전투부대의 파병을, 5개국이 의료 또는 시설을 지원했으며 총 195만 7000여명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전쟁 발발 후 1년이 지나며 유엔군과 북·중 연합군은 1951년 6월 한반도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1951년 7월 10일부터 판문점에서 휴전 회담에 들어갔다. 그러나 협상은 교착화됐고 양측은 2년여 기간이나 38선 근처에서 피의 능선 고지 전투, 단장의 능선 고지 전투, 펀치볼 전투, 고양대 전투, 백마고지 전투, 저격 능선 전투, 금성 전투 등 수많은 고지 쟁탈전을 벌이며 엄청난 비용과 인명 손실을 치러야 했으니 그동안 국군과 유엔군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유엔 참전국 및 참전용사의 희생과 위훈을 후대에 계승하기 위해 정부는 정전 60주년을 맞은 지난 2013년,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제정해 국군과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고 참전국과의 우호를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정전협정이 있기까지 3년의 전쟁 기간 국군 전사자는 약 14만명, 부상을 당하거나 실종, 포로가 된 사람도 약 49만명에 달했으며 유엔군 또한 4만여명이 전사하고 1만여명이 실종되거나 적의 포로가 되는 아픔을 겪었다. 젊은 시절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나선 대한민국의 젊은이들과 군인들 그리고 생면부지의 나라에 도착해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애쓴 유엔군들. 이날 하루만이라도 유엔군들과 참전유공자들의 공훈을 기리고 그들을 기억하며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길 바란다. 우리는 그들의 고귀한 희생과 공헌 아래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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