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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현대 바둑의 성인 “오청원” 선생에 대하여> 1-일본 유학편: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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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현대 바둑의 성인 “오청원” 선생에 대하여> 1-일본 유학편

편집부 | 기사입력 2016/06/20 [12:07]

6.<현대 바둑의 성인 “오청원” 선생에 대하여> 1-일본 유학편

편집부 | 입력 : 2016/06/20 [12:07]


오늘은 6번째 시간으로 현대 바둑의 성인이라는 오청원 [吳淸源] 선생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우칭위안 선생은 1914년 중국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부터 바둑을 시작했다고 한다.


근데 8살부터 음악의 천재 모차르트가 3살 때 악기를 다루고 5살 때 작곡을 했다고 하는데 주위 사람들이 도무지 믿을 수 없다하여 직접 확인해보고 나서야 믿었다고 한다. 모차르트보다는 시작이 늦었다고 볼 수 있는데 중요한 점은 그게 아니다.


바둑 교실에서 잠깐 유치부 아동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데 보통 5, 6살 때부터 바둑을 시작한다. 하지만 유치부 아동들이라 잠깐 즐기는(?) 수준이다.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공부하는 수준이 아니란 얘기다.


 

오청원 선생의 자전 수필집 막수(莫愁)에서 보면 “바둑의 가르침을 받은 것은 8살 때이며 금방 두 사람의 형을 이겼다. 그리고 아버지를 상대로 선으로 둘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아침부터 밤까지 나에게 기보를 놓아보도록 시켰다.

 

 

당시 놓아보던 것은 위기신보의 합본 3권이며 무려 6백국이었다. 거의 매일 12시간씩이나 기보를 보며 돌을 늘어놓는 일을 하게 했다. 책이 무겁기 때문에 나중에는 좌우 가운데 손가락의 제1 관절이 굽어져버렸다.


오른쪽에서 보고 놓아보다가 다시 왼쪽으로 바꿔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가락 관절이 굽어버린 것이다!” 8살짜리 아이가 거의 하루 종일 고3 학생처럼 바둑 공부에 몰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것이다.


본인 스스로가 즐기지 않으면 못하는 것이다. 일찍 바둑을 접하는 아동들을 많이 보지만 어린 나이에 하루 종일 바둑 공부에 임하는 아이는 본 적이 없다. 이창호가 말하길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다고 했던가.


 

혹시나 바둑 쪽으로 진로를 생각하는 부모는 자녀가 얼마나 바둑을 좋아하는가. 얼마나 바둑 공부하는가를 살펴봐야한다. 바둑 두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많지만 바둑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아동은 드물다.?

 

각설하고 선생의 타고난 재능도 그러하거니와 노력도 남보다 여러 배니 10살이 넘어서는 주위에 이길 사람이 없어졌고 12살이 넘어서는 이미 아마 최고수로 성장했다.

 

오늘날로 치면 무명의 초등학생이 전국 아마바둑대회에 출전하여 내놓아라하는 최고수들을 꺾고 우승했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중국의 놀라운 재능을 가진 소년은 일본바둑 관계자까지 소문이 나게 된다.


 

성악을 전공하려면 이태리로 유학을 가라고 했던가. 당시 바둑으로 대성하려면 일본으로 유학을 가야 하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오청원 선생은 운명이 유학을 결정했다라고 볼 수밖에.. 당시 일본 바둑계의 유력 인사였던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 9단 (당시7단)은 “오소년의 기보를 보고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어떻게 하든지 일본으로 데려와서 키우고 싶지만 오소년의 어머니가 반대가 심했다. 일본말도 모르고 건강도 걱정되고 일본으로 데리고 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세고에 선생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자신이 아끼는 수제자 하시모토 9단 (당시4단)을 중국으로 보내어 시험기를 치르도록 한다. 하시모토 또한 어렸을 적에 천재소리를 들었던 프로기사였다.

 

결과는 다행히도 선으로 둔 오청원이 이겼다. 비록 작은 시험기에 해당할지 모르겠지만 결과론적으로 볼 때 인생의 진로를 결정지은 운명의 대국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마추어가 그것도 5년 동안 독학한 어린 소년이 정식으로 수업 받은 프로기사를 이기다니! 대국 결과를 대견하게 여긴 오소년의 어머니는 일본 유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유학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어 세고에 선생은 일본 재계를 주름잡는 거물을 오소년의 후원자로 삼게 되는데. “ 그 소년이 나중에 성장해서 일본 바둑계를 정복하게 될 텐데 그래도 상관없는가” 세고에 선생 왈 “ 물론이죠. 바둑의 발전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2년간의 생활비를 후원하지. 한 달에 2백 원정도면 되겠는가. 당시 2백 원이면 현재로써는 수백만 원에 해당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14세 때 일본으로 유학해,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다.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이광구의 바둑이야기, 오청원 요렇게만 두면 초단!에서 참고하였습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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