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는 오직 나에게만 속한다" 누적 관객 1,250만 명의 신화, 뮤지컬 '엘리자벳'황후의 화려한 삶 뒤에 감춰진 자유에 대한 갈망…‘죽음’은 파멸 아닌 궁극적 해방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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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제공) |
[내외신문/이소영 기자] 이 작품이 처음 무대에 오른 것은 1992년 9월 3일, 오스트리아 빈의 안 데어 빈 극장(Theater an der Wien)이었다. 대본을 쓴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Sylvester Levay)는 처음부터 이 작품을 '죽음의 무도(Totentanz)', 즉 중세 이후 유럽의 연극과 미술에서 반복되어 온 '죽음과의 춤'이라는 모티프 위에 세웠다.
이후 <엘리자벳>은 12개국, 7개 언어로 공연되며 독일어권 뮤지컬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가 됐고, 누적 1,250만 명의 관객을 만났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후 엘리자벳의 생애에 '죽음'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를 끌어들인 이 작품의 힘은 단순히 화려한 역사극이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에 있지 않다. <엘리자벳>은 한 여인의 삶을 통해 거대한 체제 안에서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과연 얼마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지를 끈질기게 묻는다.
이지혜가 연기한 엘리자벳, 서경수가 연기한 죽음, 노윤이 연기한 루케니가 만들어낸 이번 무대 역시 그 질문을 중심에 두고 나아간다.
루케니의 시선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엘리자벳의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따라가지만, 공연이 진행될수록 이것이 단순히 '죽음'이라는 초자연적인 존재와 한 여인의 관계를 그린 작품만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평생 자유를 갈망했던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실제 엘리자벳이 남긴 시에는 자신의 삶을 감옥에 비유한 구절들이 있다.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의 황후였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충분히 가질 수 없다고 느끼며 살았다.
시어머니 조피 대공비와의 갈등, 아들 루돌프 황태자와의 관계, 그리고 아들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마이얼링 사건까지. 그녀의 삶은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끝내 그 자유를 완전히 손에 넣지 못하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뮤지컬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 위에 '죽음'이라는 존재를 세워둔다. 죽음은 엘리자벳을 단순히 파멸시키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때로는 유혹하고, 때로는 그저 머물며, 그녀가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순간마다 모습을 드러낸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래서 단순한 로맨스도, 공포도 아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 평생 싸워온 엘리자벳과, 그 자유의 가장 위험하고도 궁극적인 형태를 상징하는 존재 사이의 관계에 가깝다.
실제 역사 속 엘리자벳은 1898년 제네바에서 이탈리아 아나키스트 루이지 루케니에게 암살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작품은 이 마지막 순간을 단순한 살인의 결과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극 속에서 엘리자벳의 죽음은 그녀를 평생 옥죄어 온 세계로부터 벗어나, 마침내 '죽음'이라는 연인의 품으로 향하는 순간으로 그려진다.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단순히 죽음이라는 이미지가 가진 비극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평생 자신의 삶을 선택하기 위해 싸워온 사람이, 마지막 순간만큼은 누구의 명령도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다가온다.
배우 이지혜는 그 순간의 표정 하나로 극 내내 쌓아온 감정을 설명해냈고,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어진 커튼콜에서는 객석의 반응이 유독 뜨거웠다.
엘리자벳은 평생 황실의 황후였고, 아내였으며, 어머니였고, 제국이 만들어낸 수많은 역할 속에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작품이 끝날 무렵 관객에게 남는 것은 그 모든 이름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삶만큼은 자신에게 속하고 싶었던 한 인간의 모습이다.
화려한 의상과 압도적인 넘버, 고딕양식의 웅장한 무대연출 그리고 그 열기를 그대로 되돌려준 커튼콜의 박수까지 모두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 것은 결국 엘리자벳의 마지막 선택과,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치열한 삶이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엘리자벳>이 수많은 관객을 붙잡고 있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11월 15일까지 블루스퀘어 우리은행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