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은 날씨가 아니라 재난이다…매년 48만9000명 목숨 앗아가는 ‘침묵의 살인자’기후변화로 폭염의 빈도·강도·지속시간 동시 증가…65세 이상 열 관련 사망률 85%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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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용차가 폭염으로 녹고 밀려난 아스팔트 위를 통과하는 모습 (사진=내외신문) |
2022년 여름 유럽에서는 약 6만1672명의 열 관련 초과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됐다. 2003년 유럽 폭염은 6월부터 8월까지 약 7만 명의 사망을 초래했고, 2010년 러시아에서는 44일간 이어진 폭염으로 약 5만6000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다. 폭염이 특정 지역이나 특정 세대만의 위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수치다.
몸이 보내는 경고…열사병은 즉시 치료해야 하는 응급상황
인체는 땀의 증발과 피부 혈류 조절을 통해 내부의 열을 외부로 배출한다. 그러나 고온과 높은 습도, 약한 바람, 강한 복사열이 겹치면 체온을 정상 범위로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통풍을 방해하는 옷이나 보호장비를 착용한 상태에서 육체노동까지 수행하면 신체에 축적되는 열은 더욱 빠르게 증가한다.
이 과정에서 열탈진과 열사병이 발생할 수 있다. 열사병은 체온 조절 기능이 무너지는 치명적인 응급질환이다. 의식 혼란, 경련, 실신, 뜨겁고 건조한 피부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응급의료체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고온은 심장과 신장에도 강한 부담을 준다. 심혈관 질환, 호흡기 질환, 당뇨병, 정신질환, 치매, 신장질환 등 기존 질환을 악화시키고 급성 신장 손상과 사고 위험을 높일 수 있다. 폭염에 따른 사망과 입원은 노출 당일이나 다음 날 빠르게 나타날 수 있어 폭염경보가 발령된 뒤에는 지체 없는 대응이 필요하다.
폭염의 위험은 개인 건강에 머물지 않는다. 전력 수요가 급증해 정전이 발생하면 병원과 요양시설의 냉방·의료 장비 운영이 흔들릴 수 있다. 교통과 수자원 시설이 멈추고 학교와 공공기관이 문을 닫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야외 건설현장과 물류·농업 현장에서는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산업재해 위험이 커진다.
![]() ▲ 2026년에는 강한 엘니뇨까지 이러한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다. 세계기상기구는 적도 태평양에서 엘니뇨가 발달하고 있으며 9∼12월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약 90%로 전망했다. 엘니뇨는 지역에 따라 폭우와 홍수, 가뭄, 폭염, 태풍 활동의 증가 또는 감소를 서로 다르게 일으키고 있다. |
같은 더위도 피해는 다르다…고령자·아동·야외노동자에 집중
열에 대한 취약성은 나이와 건강 상태뿐 아니라 직업, 소득, 주거환경, 냉방 접근성에 따라 달라진다. 고령자와 영유아, 장애인, 임신부, 만성질환자, 혼자 사는 사람은 폭염 상황에서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
야외노동자와 육체노동자, 운동선수, 소방·구조 인력은 업무 중 높은 온도와 복사열에 장시간 노출된다. 휴식시간과 그늘, 냉수, 작업 중단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폭염이 곧 산업재해로 이어질 수 있다.
도시와 농촌의 저소득층도 위험하다. 단열 성능이 낮은 주택과 금속 지붕, 부족한 녹지, 밀집된 건축물은 실내외 온도를 더욱 높인다.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충분히 가동하지 못하는 가구가 적지 않다. 폭염이 기후재난인 동시에 주거·소득·복지 격차가 반영되는 사회적 재난인 이유다.
도시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낮 동안 흡수한 열을 밤에 다시 방출하는 열섬현상으로 인해 야간에도 기온이 충분히 내려가지 않는다. 높은 주간 온도에 열대야까지 이어지면 인체가 회복할 시간을 잃게 된다. 도시계획 단계에서 녹지와 그늘, 바람길, 공공 냉방시설을 확보해야 하는 배경이다
![]() ▲ 여름 폭염 속 인천 도심 열섬 현상 |
폭염 피해는 예방할 수 있다…경보보다 중요한 실행체계
WHO는 열로 인한 건강 피해가 예측 가능하며 공중보건 정책과 다부문 대응을 통해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상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건소, 의료기관, 학교, 요양시설, 사업장, 지방정부가 동시에 움직이는 폭염 대응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민은 가장 더운 시간대의 외출과 격렬한 활동을 피하고, 하루 중 일정 시간은 냉방이 가능한 공간에서 보내야 한다. 직사광선 아래의 체감온도는 그늘보다 10∼15도 높을 수 있어 야외에서는 그늘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낮 동안 외부 온도가 실내보다 높을 때는 창문과 블라인드, 셔터를 닫아 햇빛과 뜨거운 공기의 유입을 줄이고, 밤에는 외부 온도가 내려간 뒤 환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선풍기는 기온이 40도를 넘는 환경에서는 오히려 뜨거운 공기를 몸으로 보내 체온을 높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가볍고 헐렁한 옷을 입고 시원한 물로 샤워하거나 젖은 천으로 피부를 식히는 것도 필요하다. 수분 섭취는 규칙적으로 하되 심장이나 신장 질환으로 수분 제한이 필요한 사람은 의료진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
어린이나 반려동물을 주차된 차량 안에 남겨두는 행위는 짧은 시간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 유모차를 마른 천으로 완전히 덮으면 내부 온도가 더 높아질 수 있으므로 통풍을 확보하고 직사광선을 피해야 한다. 고령자와 만성질환자, 장애인, 독거가구에는 가족과 이웃, 지역사회가 정기적으로 연락해 건강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확대돼야 한다. 폭염 조기경보, 무더위 쉼터, 방문 건강관리, 야외작업 중지 기준, 취약계층 냉방비 지원, 의료기관 비상대응, 도시 녹지 확충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해야 한다. 냉방시설이 부족한 병원과 요양원, 학교에 대한 우선 지원도 요구된다.
폭염은 기온이 내려가기를 기다리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기후변화 완화와 함께 당장 발생하는 피해를 줄이는 적응 정책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폭염을 기상현상이 아닌 보건·노동·복지·주거·에너지 정책이 결합된 국가적 재난으로 인식할 때 더 많은 생명을 지킬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