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신문/전태수 기자] 강원도에서 우상호 지사가 전임 도정이 임명한 산하기관장들의 자진 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임기일치제’ 제도화에 나선 가운데, 인천에서도 민선 8기 유정복 전 시장이 임명한 산하기관장들의 거취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26년 8월 13일 기준 공개 보도와 기관 활동 자료를 종합하면, 유정복 전 시장이 2025년 임명한 주요 공사·공단 및 출자·출연기관장 가운데 사의를 밝히지 않고 재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는 인사는 7명이다.
다만 이들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명시적으로 “사퇴하지 않겠다”거나 “자리를 지키겠다”고 밝힌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사퇴를 거부한 기관장’으로 단정하기보다는 ‘민선 9기 출범 이후에도 사의를 표명하지 않고 임기를 이어가는 전임 시장 임명 기관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류윤기 인천도시공사 사장은 지난 11일 행정안전부 지방공기업 경영평가 ‘나’ 등급 획득과 관련해 경영 성과를 직접 발표했다.
김재보 인천시설공단 이사장도 13일 아시아드주경기장과 영종 씨사이드파크 안전점검을 주관했고, 최정규 인천교통공사 사장 역시 8월 현재 공사 운영을 지휘하고 있다. 유지상 인천관광공사 사장과 이부현 인천신용보증재단 이사장도 최근 기관 사업을 공식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전임 시장 임기 말에 집중된 기관장 인사
유정복 전 시장은 2025년 4월 인천도시공사와 인천환경공단, 인천시설공단, 인천교통공사 수장을 잇달아 교체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인천관광공사 사장을 임명했고 11월과 12월에는 인천신용보증재단과 인천문화재단 수장 인사를 단행했다.
이들 기관장의 임기는 대부분 3년이어서 박찬대 인천시장이 2026년 7월 취임한 뒤에도 적게는 1년 9개월, 많게는 2년 4개월가량 남게 됐다. 박 시장이 임기 전반부 상당 기간을 전임 시장이 임명한 기관장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구조다.
특히 이부현 인천신용보증재단 이사장은 유정복 전 시장과 제물포고 동기 동창으로 알려졌다. 이종관 인천문화재단 대표는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유정복 후보 캠프에서 문화예술특보를 지냈다. 전문성과 별개로 정치적 인연을 바탕으로 임명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해당 인사들의 임명 경위와 남은 임기는 박찬대 시장 취임 전부터 ‘유정복 사람들과의 불편한 동거’라는 이름으로 지역사회에서 논쟁이 됐다.
반면 김정민 인천여성가족재단 이사장은 임기가 2028년 11월까지 남아 있었지만 지난 6월 30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송도국제화복합단지개발 제갈원영 대표도 2028년 9월까지 임기가 남아 있었으나 추진 중인 사업을 정리한 뒤 물러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임기가 방패가 되면서 새 시장의 책임정치는 제약
박찬대 시장 인수위원회는 민선 9기 출범 전부터 산하기관장들이 새 시정의 철학에 협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임 시장 임기 말에 이뤄진 기관장 인사와 공기업의 인력 충원, 근태 및 업무추진비 사용 등에 대한 점검 필요성도 제기했다.
그러나 공사·공단 기관장의 임기는 지방공기업법에 따라 3년이 보장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사퇴를 강요할 경우 직권남용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인천시가 2025년 제정한 ‘인천광역시 출자·출연 기관의 장의 임기에 관한 조례’에도 시장과 기관장의 임기를 맞추는 취지가 담겼지만, 2026년 7월 1일 조례 시행 이전에 임명된 기관장은 기존 임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돼 있다는 사실과 정치적·도덕적으로 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다른 문제다. 전임 시장의 시정 철학을 공유하거나 선거캠프와 개인적 인연을 바탕으로 임명된 정무형 기관장이라면, 새로운 시장이 선출된 시점에 스스로 재신임을 묻는 것이 책임 있는 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대로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경영평가에서 성과를 낸 기관장까지 정치적 이유만으로 일괄 교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류윤기 인천도시공사 사장의 경우 2026년 지방공기업 경영평가에서 전년보다 한 단계 오른 ‘나’ 등급을 받았다. 이런 성과는 거취 판단 과정에서 함께 평가돼야 한다.
인천형 임기일치제는 정무형과 전문가형을 구분해야
인천 사례는 임기일치제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제도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도 드러낸다. 기관장의 임기를 법으로 보장해 놓고 정권이나 시장이 바뀔 때마다 비공식적으로 사퇴를 압박하는 방식은 투명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기관장은 버티기에 들어가고 시는 감사와 업무평가를 통해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정책 보좌와 시정 철학 공유가 중요한 기관은 시장 임기와 기관장 임기를 연동해야 한다. 반면 환경시설 운영, 도시철도, 기술 연구, 금융보증처럼 전문성과 장기적 사업 관리가 필요한 기관은 객관적인 경영평가와 인사청문을 거쳐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타당하다.
현직 기관장들에게는 새 시장의 공약과 시정 방향을 반영한 경영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인천시의회가 공개 검증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전임 시장과의 인연이 아니라 기관 운영 성과와 민선 9기 정책 수행 의지를 기준으로 재신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인천의 문제는 단순히 “누가 물러나지 않고 있느냐”에 머물지 않는다. 전임 시장이 임명한 기관장들이 자리를 유지하는 동안 민선 9기 정책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시민에게 돌아간다. 반대로 성과를 내는 전문가를 정치적 이유로 몰아낸다면 공공기관의 안정성과 전문성이 훼손된다. 인천형 임기일치제는 낙하산 인사를 반복하는 교체 장치가 아니라 인사권과 정책 책임을 일치시키는 제도로 설계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