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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 태풍’이 던진 경고…기후위기 시대에는 날씨의 길까지 달라진다

일본 태풍 ‘찬홈’, 통계 작성 이후 처음 이바라키현 남부 상륙…동쪽에서 서쪽으로 열도 관통

뜨거워진 바다와 늘어난 수증기, 블로킹 고기압과 한랭 소용돌이가 태풍 경로·강수 피해 증폭

유럽 폭염·캐나다 산불·아시아 홍수 동시다발…기후재난은 환경을 넘어 경제·안보 위기로 확산

전용현 기자 | 기사입력 2026/08/13 [08:30]

‘역주행 태풍’이 던진 경고…기후위기 시대에는 날씨의 길까지 달라진다

일본 태풍 ‘찬홈’, 통계 작성 이후 처음 이바라키현 남부 상륙…동쪽에서 서쪽으로 열도 관통

뜨거워진 바다와 늘어난 수증기, 블로킹 고기압과 한랭 소용돌이가 태풍 경로·강수 피해 증폭

유럽 폭염·캐나다 산불·아시아 홍수 동시다발…기후재난은 환경을 넘어 경제·안보 위기로 확산

전용현 기자 | 입력 : 2026/08/1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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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열로 가열되는 바다 이미지(사진=세계환경기구 홈페이지 사진    

 

[내외신문/전용현 기자] 일본 열도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른 제15호 태풍 ‘찬홈’은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마주할 새로운 재난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태풍의 강도만 위험해진 것이 아니라 발생 위치와 이동 경로, 상륙 지역, 바람의 방향, 비가 내리는 시간과 공간까지 기존의 경험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찬홈은 도쿄 북동쪽 이바라키현 남부에 상륙한 뒤 일본 본토를 동에서 서로 관통했다. 일본에서 태풍 상륙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51년 이후 이 지역에 태풍이 직접 상륙한 것은 처음이다.

 

평소 일본에 접근하는 태풍은 남쪽 해상에서 북상한 뒤 편서풍을 타고 북동쪽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찬홈은 북동쪽에 자리 잡은 고기압과 남서쪽 상공의 한랭 소용돌이 사이에서 평소와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다.

 

태풍은 단순히 비와 바람만 남기지 않았다. 평소 바람이 불어오던 방향과 반대쪽에서 강풍이 들이닥치면서 나무가 쓰러지고 공사장 가림막이 뜯겨 나갔다. 항공편 97편이 결항됐고 이바라키현에서는 한때 1만6000가구의 전력 공급이 끊겼다. 자전거를 타던 고령자가 넘어지는 등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태풍이 지나간 뒤에도 태평양에서 밀려온 수증기가 남아 국지성 집중호우를 만들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비정상적인 이동이 한 차례의 예외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다. 뒤이어 발생한 제17호 태풍 ‘낭카’ 역시 태평양에서 일본을 향해 동에서 서로 이동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태풍의 통상적인 길을 전제로 구축된 방재시설과 도시 인프라, 항공·철도 운항체계, 산림 관리 방식이 새로운 기후 조건에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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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7월 세계는 폭염·가뭄·홍수·태풍이 동시에 발생하는 복합기후재난을 겪었다. 기록적인 해수온 상승은 태풍과 집중호우를 강화하고, 북극·남극 해빙 감소는 온난화를 가속한다. 일부 지역의 일시적 한파와 관계없이 지구의 장기적인 기온·해수온 상승세는 뚜렷하다.(세계기상센터 홈페이지 화면)    

 

태풍이 ‘역주행’한 이유…고기압과 한랭 소용돌이가 길을 바꿨다

 

태풍이 스스로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태풍의 이동은 주변을 둘러싼 거대한 고기압과 저기압, 제트기류, 편서풍 등 대규모 대기 흐름이 결정한다. 이번 찬홈의 특이 경로도 북동쪽 고기압이 태풍의 북상과 동진을 막고, 남서쪽 상공의 한랭 소용돌이가 태풍을 서쪽으로 끌어당기면서 형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현상을 한 번의 기후변화 결과로 단정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신중해야 한다. 과거에도 고기압과 저기압의 위치에 따라 태풍이 서쪽으로 이동하거나 예상 밖의 진로를 보인 사례는 있었다. 태풍 한 개의 경로를 온실가스 증가와 직접 연결하려면 별도의 기후 귀속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태풍이 활동하는 배경 조건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세계기상기구와 유럽연합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에 따르면 2026년 7월 전 세계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47도 높았다. 2026년 7월은 관측 사상 두 번째로 더운 7월이자 두 번째로 더운 달로 기록됐다. 최근 10차례의 가장 더운 7월은 모두 2016년 이후에 집중됐다.

 

바다는 더 심각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2026년 7월 극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 해수면 평균온도는 20.96도로, 7월 기준 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6월19일부터 7월 말까지는 매일 해당 날짜의 역대 최고 해수면 온도가 이어졌다. 태풍은 따뜻한 바다에서 에너지와 수증기를 공급받는다. 해수온이 높아지면 태풍이 반드시 더 자주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발생한 태풍이 더 많은 수증기를 품고 강한 비를 뿌릴 가능성은 커진다.

 

미국 해양대기청 산하 지구유체역학연구소는 지구 평균기온이 2도 상승하는 조건에서 태풍 중심부 반경 약 100㎞의 평균 강우율이 약 14%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강한 태풍의 비율과 급격한 강도 증가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전 세계 태풍의 총발생 횟수가 일관되게 증가할 것이라는 증거는 충분하지 않다. 기후위기의 핵심은 태풍 숫자만 늘어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발생한 태풍이 더 많은 비와 높은 해일, 강한 바람을 동반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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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에는 강한 엘니뇨까지 이러한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다. 세계기상기구는 적도 태평양에서 엘니뇨가 발달하고 있으며 9∼12월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약 90%로 전망했다. 엘니뇨는 지역에 따라 폭우와 홍수, 가뭄, 폭염, 태풍 활동의 증가 또는 감소를 서로 다르게 일으킨다. 온실가스로 높아진 기본 기온 위에 엘니뇨라는 자연 변동이 더해지면 지역별 극한현상이 한층 강해질 수 있다(사진=AI활용)    

 

폭염과 홍수, 산불이 동시에 발생하는 ‘복합재난의 시대’

 

일본의 역주행 태풍은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이상기후의 한 장면이다. 2026년 여름 북반구에서는 폭염과 가뭄, 산불이 이어지는 동안 다른 지역에서는 극한호우와 홍수가 발생했다.

 

서유럽은 2026년 6월과 7월을 합쳐 관측 이래 가장 더운 두 달을 보냈다. 프랑스와 스페인, 영국,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서는 평년보다 3∼5도 높은 기온이 이어졌다. 장기간 고기압이 한 지역에 머무는 블로킹 현상이 뜨거운 공기를 가두면서 이른바 ‘열돔’을 만들었다.

 

폭염은 토양의 수분을 빼앗고 식생을 마르게 한다. 메마른 땅에서는 증발을 통한 냉각 효과가 줄어 기온이 다시 상승한다. 고온과 가뭄이 서로를 증폭하는 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건조해진 숲과 초지는 작은 불씨에도 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는 조건이 된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2026년 산불 탄소 배출량은 평년을 크게 웃돌았고, 캐나다에서도 수백 건의 산불이 동시에 발생했다.

 

반대편에서는 물난리가 이어졌다. 방글라데시와 아프가니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에서는 집중호우와 돌발홍수가 발생했고, 중국에서는 태풍과 폭우로 대규모 주민 대피가 이뤄졌다. 한국 역시 7월 잇따른 집중호우를 겪은 데 이어 8월 초 기록적인 폭염에 노출됐다. 세계기상기구는 한국과 일본이 8월 첫 주 이례적이고 기록적인 고온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이 현상들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지구가 따뜻해지면 증발량이 늘어나 토양과 숲은 더 빠르게 마른다. 동시에 따뜻해진 대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을 수 있다. 고기압이 장기간 머무는 지역은 폭염과 가뭄에 시달리고, 수증기가 저기압과 전선이 형성된 지역으로 이동하면 짧은 시간에 폭우가 쏟아진다. 같은 지구 온난화가 한쪽에서는 가뭄을, 다른 쪽에서는 홍수를 만드는 구조다.

 

2026년에는 강한 엘니뇨까지 이러한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다. 세계기상기구는 적도 태평양에서 엘니뇨가 발달하고 있으며 9∼12월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약 90%로 전망했다. 엘니뇨는 지역에 따라 폭우와 홍수, 가뭄, 폭염, 태풍 활동의 증가 또는 감소를 서로 다르게 일으킨다. 온실가스로 높아진 기본 기온 위에 엘니뇨라는 자연 변동이 더해지면 지역별 극한현상이 한층 강해질 수 있다.

 

과거의 평균으로 설계된 도시, 달라진 기후를 견딜 수 있나

 

역주행 태풍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태풍의 방향이 왜 달라졌느냐에만 있지 않다. 기존 사회 시스템이 예상 밖의 방향에서 찾아오는 재난을 견딜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건축물과 방음벽, 가로수, 공사장 시설물은 지역별로 통상적인 풍향과 풍속을 기준으로 설치된다. 하천과 하수관, 저류시설도 과거의 강수량과 재현주기를 기준으로 설계된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양과 속도, 태풍의 이동 방향이 달라지면 과거 기준에 맞춰진 시설은 예상보다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일본에서 반대 방향의 바람을 견디지 못한 나무가 쓰러진 것은 이러한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도 태풍이 주로 남해안과 제주도를 거쳐 북상한다는 경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동해의 높은 수온과 북태평양고기압의 비정상적인 확장, 제트기류의 굴곡에 따라 태풍이 동해에서 급격히 발달하거나 서해를 따라 북상하고, 한반도 부근에서 이동 속도가 느려질 가능성까지 대비해야 한다.

 

방재 기준도 ‘100년에 한 번’이라는 과거 통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시 배수시설과 지하차도, 반지하주택, 산사태 취약지역, 해안 방파제, 송전망을 미래 기후 시나리오에 맞춰 재설계해야 한다. 태풍의 최대풍속뿐 아니라 풍향 변화, 이동 속도, 시간당 강수량, 해수면 상승과 폭풍해일이 동시에 발생하는 복합위험을 반영해야 한다.

 

기후재난은 환경 분야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항공편 결항과 철도 중단, 공장 가동 차질, 농작물 피해, 전력망 붕괴, 보험금 급증, 식량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제 문제다. 주요 항만과 반도체 공장, 데이터센터, 에너지 시설이 피해를 보면 국가 공급망과 산업안보까지 흔들릴 수 있다.

 

일본을 가로지른 찬홈은 ‘태풍도 길을 잃었다’는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태풍이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태풍을 움직이는 대기의 길이 달라지고 있다. 뜨거워진 바다와 늘어난 수증기, 장기간 정체하는 고기압, 흔들리는 제트기류가 과거의 기후 지도를 바꾸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재난이 발생한 뒤 복구하는 대응을 넘어, 기후가 낯선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까지 고려한 국가적 적응 전략이다. 역주행 태풍은 예외적인 기상 현상으로 기록될 수 있지만, 그 피해가 전하는 메시지는 예외가 아니다. 과거의 경험만으로 미래의 재난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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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신문 인천본부 기자
월간 기후변화 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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