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교회 /서창희 목사] 임무를 통해 미래가 열린다 에스겔의 파수꾼 사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순종
신앙의 길은 단순히 개인의 선호를 따라가는 길이 아니다.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편한 자리를 찾아가고,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인생의 미래를 여는 방식이라고 세상은 말한다.
그러나 에스겔서가 보여주는 신앙의 길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실 때 단순히 위로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맡기실 임무를 함께 부여하신다. 부르심에는 반드시 사명이 따른다. 그리고 그 사명은 때로 사람의 선호와 충돌하고, 평판에 대한 두려움을 흔들며,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정렬하게 만든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뒤 파수꾼으로 세워진다. 파수꾼은 먼저 보고 먼저 말해야 하는 사람이다.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침묵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에는 선택권을 묻는 장면이 없다. 하나님은 “이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정하신다. 그리고 그 정하심이 곧 임무가 된다.
파수꾼의 임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이 오고 계심을 알리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삶에 개입하신다는 사실, 죄와 악을 방치하지 않으신다는 사실, 회개하지 않는 삶에는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파수꾼의 미래가 듣는 사람의 반응에 달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악인이 경고를 듣고도 돌이키지 않으면 그는 자기 죄 가운데 죽는다. 그러나 파수꾼은 말했기 때문에 산다. 반대로 하나님께 받은 말을 전하지 않아 악인이 죽는다면, 하나님은 그 피값을 파수꾼에게서 찾겠다고 하신다.
이 대목은 신앙인의 삶을 움직이는 기준을 완전히 바꾼다. 인생의 미래는 선호가 아니라 임무를 통해 열린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직장, 좋아하는 환경을 찾아가는 것이 미래를 여는 핵심이라고 믿는다면, 삶은 쉽게 원망으로 기울어진다. 원하는 것과 현실이 다를 때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내가 있는 자리가 불행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중심을 제시한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임무가 무엇인가. 내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해야 할 말과 감당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신앙인의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된다.
설교자는 한 직장인의 사례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내성적인 성향을 가진 한 성도가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조용히 일만 하고 싶었다. 사람들과 깊이 얽히는 것도, 신앙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팀장은 자꾸 삶의 공허함과 영적인 질문을 꺼냈다.
주말에 무엇을 했느냐고 묻고, 교회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들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직접 전도하기가 두려웠다. 특히 직장 상사는 자신의 평가와 커리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말하는 대신 신앙 서적 한 권을 건넸다.
놀랍게도 그 책을 읽은 상사는 영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교회에 바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열렸고, 그 책을 자신이 아끼는 책장에 꽂아 두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이후 그 성도의 직장생활이었다. 그는 조용히 일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커리어를 열어 가셨다. 상사는 그를 특별히 챙기기 시작했고, 중요한 사람으로 대우했다. 설교자는 이 사례를 통해 말한다. 인생의 길은 사람의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임무에 순종할 때 열린다.
신앙인이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평판 때문이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미움을 받으면 내 길이 막히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입을 닫게 만든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평판은 생존을 담보하지 못한다. 사람의 평가가 내 인생을 살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임무를 감당할 때 삶의 길이 열린다.
이 지점에서 설교자는 가정과 직장,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앙인이 침묵하는 현실을 짚는다. 세상 이야기는 잘한다. 자녀에게 공부, 학원, 성공, 진로 이야기는 열심히 한다. 직장 동료에게 투자, 집, 주식 이야기는 열정적으로 한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 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니다”, “우리 가족은 회개해야 한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다시 서야 한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듣기 좋은 말만 하려 하고, 관계가 불편해질까 봐 침묵한다. 그러나 파수꾼의 임무는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을 거르지 않고 전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교회 유튜브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경험도 나눈다. 코로나 이전에는 온라인 예배나 영상 생중계가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성도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카메라와 삼각대를 가져와 설교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영상은 세련되지 않았고, 썸네일도 투박했다.
헌금 계좌가 크게 들어가고, 색감도 과해 보였다. 젊은 목회자로서 사람들의 평가가 걱정됐다. “이 영상을 보고 사람들이 교회를 촌스럽게 여기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 영상은 오히려 은혜의 통로가 되었다. 누군가는 그 영상을 보고 교회에 왔고, 지금은 그 투박함마저 정겨운 추억이 되었다. 이 경험 역시 같은 결론을 향한다. 평판이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감당하는 것이 미래를 연다.
그러나 임무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제약이 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다고 해서 아무 때나, 아무 방식으로 말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말하라고 명하신 뒤, 동시에 그를 집 안에 묶어 두고 혀가 입천장에 붙어 말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하신다. 이것은 모순처럼 보인다.
말하라고 하시면서 말하지 못하게 하신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신앙의 원리가 담겨 있다. 옳은 내용이 주인을 이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터뜨리는 것이 곧 순종은 아니다. 옳은 메시지를 받았어도 그 메시지를 언제 말할지, 어떤 방식으로 말할지는 주인이신 하나님이 정하신다.
하나님이 입을 열게 하실 때 말하고, 하나님이 잠잠하게 하실 때 잠잠해야 한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삶에 열매가 없는 이유는 때로 내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매임이 부족해서다. 하나님께 매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설교자는 이를 진돗개와 셰퍼드의 비유로 설명한다. 훈련된 셰퍼드는 명령이 같으면 주인이 바뀌어도 반응한다. 그러나 진돗개는 다르다.
자신이 따르는 주인이 아니면 같은 명령에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설교자는 신앙인에게 필요한 태도가 바로 이와 같다고 말한다. 내용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주인에게 매인 사람이어야 한다. “이 말은 옳으니까 지금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나님,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이 맞습니까. 이 방식이 맞습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목회자의 삶 역시 이 매임의 훈련이다.
개척 초기 청년들을 향한 열정으로 많은 조언을 했지만, 그것이 항상 열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고백한다. 사랑으로 말했지만 상대는 오해했고, 도우려 했지만 상처가 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통로, 맡기신 시간, 맡기신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는 매주 말씀을 준비해야 하고, 기도해야 하며, 주어진 자리에서 성도들을 섬겨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는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매여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삶이 사명자의 길이다.
세상은 자유를 말한다. 말하고 싶을 때 말하고, 쓰고 싶을 때 쓰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것이 자유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는 아무렇게나 사는 자유가 아니다.
하나님께 매인 자유다. 돈도, 말도, 시간도, 능력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와 방식에 맞추어 사용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 내게 능력이 있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내가 주님께 매여 있는가이다.
마지막으로 설교자는 에스겔의 임무와 예수 그리스도의 임무를 대비한다. 에스겔에게 주어진 임무는 “말하라, 그러면 너는 살 것이다”였다. 듣는 사람이 돌이키든 돌이키지 않든,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생명을 보존한다. 그러나 참된 선지자이신 예수님께 주어진 임무는 달랐다.
예수님은 “말하라, 그러면 네가 죽게 될 것이다”라는 길을 걸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고, 그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다. 듣지 않는 자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죽으셨다.
이 복음 앞에서 신앙인의 순종은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바뀐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벌받을까 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를 살리기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순종하게 된다. 에스겔은 말하면 살았다. 예수님은 말했기 때문에 죽으셨다.
그리고 그 죽음으로 듣지 않던 자들에게도 생명과 부활의 길을 열어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인을 멸망시키기 위한 명령이 아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보장된 생명의 길로 초대하는 은혜의 음성이다.
임무는 부담이지만 동시에 미래를 여는 통로다. 평판은 삶을 살리지 못한다. 선호는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능력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때와 방식으로, 하나님께 매인 사람으로 살아갈 때 신앙인의 길은 열린다. 파수꾼의 사명은 오늘도 유효하다.
먼저 본 사람은 말해야 한다. 먼저 들은 사람은 증언해야 한다. 그러나 그 말은 자기 확신의 소음이 아니라 주인에게 매인 순종이어야 한다. 그 길 위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평가를 넘어, 상황의 반응을 넘어, 순종하는 자의 미래를 열어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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