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심사’에 갇힌 독립유공자 선정....시대에 맞게 개혁해야... 독립유공자 선정은 국가가 갚아야 할 빚이다.-독립유공자 심사는 더 이상 ‘깜깜이’로 운영돼서는 안 되며, 회의록과 판단 근거를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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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보훈부 장관 권오을 (사진=내외신문) |
[내외신문=전태수 기자] 대한민국은 광복 80년을 앞두고 있다.
광복은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이 아니라, 이름을 남긴 지도자들과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쌓여 이룬 역사적 결실이다.
누군가는 감옥에 갇혔고, 누군가는 만주와 연해주 벌판에서 사라졌으며, 누군가는 군자금을 전달하고 사람을 숨기고 교육과 언론, 산업을 통해 민족의 숨통을 지켰다.
독립유공자 포상은 이들의 삶을 국가가 뒤늦게 인정하는 일이다.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어떤 역사를 기억하고 어떤 가치를 계승할 것인지를 선언하는 국가적 행위다. 그런데 지금까지 독립유공자 심사는 ‘깜깜이 심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떤 자료가 검토됐는지, 어떤 쟁점이 논의됐는지, 왜 인정됐고 왜 탈락했는지 신청인과 후손은 물론 국민도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결과는 가결 또는 부결로 통보되지만, 판단 근거와 토론 과정은 장막 뒤에만 있을 뿐 아무도 모른다. 오늘날 국정 운영과 주요 정책 결정도 국민 앞에 공개되고 검증되는 시대다.
그런데 국가 정체성과 직결된 독립유공자 심사가 여전히 밀실의 문법에 갇혀 있다면 국민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 심사회의록 공개, 판단 근거 공개, 탈락 사유의 구체적 설명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되어야 한다.
![]() ▲ 패널들이 사례발표를 하고 있다(사진=내외신문) |
심사위원회는 역사 위에 군림하는 기관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심사 기준이 낡았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심사위원회가 역사적 명예를 판단하는 막중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그 권한에 상응하는 설명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립유공자 심사위원회는 한 사람의 생애와 가문의 명예, 나아가 국가의 역사 인식을 좌우하는 자리에 있다. 그럼에도 심사 과정은 외부에서 들여다보기 어려운 구조로 운영돼 왔다.
어떤 위원이 어떤 자료를 근거로 문제를 제기했는지, 어떤 반론이 있었는지, 어떤 쟁점이 최종 판단에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다. 이 정도라면 심사가 아니라 사실상 ‘역사 판정의 블랙박스’다.
독립운동가에게는 한 줄의 이력까지 엄격하게 따지면서 정작 심사위원회의 판단 과정은 공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정이 아니다. 독립운동가에게만 엄격하고 심사위원회 자신에게는 관대한 구조라면 국민은 그 결론을 신뢰하기 어렵다.
심사위원회는 역사를 창조하는 기관도, 역사를 독점하는 기관도 아니다. 남아 있는 자료와 당대의 평가, 생애 전체의 행적을 종합해 국가가 뒤늦게 갚아야 할 명예의 빚을 정리하는 기관일 뿐이다.
그 역할을 넘어 특정 해석을 절대 기준처럼 행사하고, 회의록도 공개하지 않고, 탈락 사유도 모호하게 통보한다면 이는 행정의 이름을 빌린 역사적 전횡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생의 마지막 선택과 당대의 평가가 핵심 기준이어야 한다
독립유공자 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한 인물의 생애 전체와 마지막 선택이어야 한다. 사람의 삶은 한 줄의 이력이나 단편적 기록으로 단정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라는 극한의 시대에는 생존과 저항, 침묵과 실천, 제도 안의 활동과 제도 밖의 투쟁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누군가는 관직을 거쳤지만 끝내 독립운동의 길로 갔고, 누군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민족운동을 도왔다.
그렇기에 한 인물이 생의 마지막에 어디에 섰는가를 반드시 봐야 한다. 그는 일제의 질서 안에 머물렀는가, 아니면 독립운동의 대열에 섰는가. 자신의 안위와 재산을 지키는 길을 택했는가, 아니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삶을 던졌는가.
특히 당대 독립운동가들의 평가와 당시 사회의 평가는 심사의 핵심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함께 싸웠던 사람들, 함께 망명했던 사람들, 임시정부를 세우고 조직을 지켰던 사람들이 그를 동지로 보았는지 배신자로 보았는지는 결코 가볍게 다룰 문제가 아니다.
후대의 일부 심사위원이나 연구자가 제한된 자료만으로 당대 독립운동 지도자들의 평가를 쉽게 뒤집는다면, 그것은 신중한 역사 검토가 아니라 역사 위에 군림하는 태도에 가깝다.
새로운 자료와 명백한 반민족 행위가 확인된다면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 증거 없이 의혹과 단편적 기록만으로 생애 전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 ▲ 참석한 인사들 (사진=내외신문) |
친일 낙인은 명확한 증거 위에서만 적용돼야 한다
친일이라는 규정 역시 엄격하고 선명해야 한다. 친일은 단순한 흠결이나 시대적 한계가 아니라 일제의 병탄과 식민 통치에 적극 협력한 행위에 붙여져야 할 무거운 역사적 판단이다.
따라서 친일은 명확한 사실과 증거가 있을 때만 적용돼야 한다. 친일의 범위를 모호하게 넓히면 오히려 진짜 친일 행위의 책임이 흐려진다.
모두에게 친일의 그물을 던지면, 정작 적극적으로 일제에 협력하고 민족을 배반한 자들의 죄가 희석된다. ‘선친일 후독립’이라는 프레임도 신중해야 한다.
실제 협력 행위가 확인된 뒤 독립운동으로 돌아선 사례라면 엄정하게 따져볼 수 있다. 그러나 명확한 협력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인물에게까지 이 프레임을 덧씌우는 것은 또 다른 낙인이다. 작위 수여나 관직 이력도 마찬가지다.
형식적 이력만으로 친일의 대가라고 단정하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인물이 실제로 일제의 통치에 적극 협력했는지, 국권 상실 이후 어떤 길을 걸었는지다.
더구나 일제의 기록만으로 독립운동의 가치를 재단하는 것도 위험하다.
일제가 체포하고 처벌한 사람은 기록에 남았지만, 끝까지 붙잡히지 않고 조직을 지킨 사람, 군자금을 전달한 사람, 독립운동가를 숨겨준 사람은 기록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일제가 잡아간 사람만 독립운동가인가”라는 질문에 국가는 답해야 한다.
회의록 공개와 실질적 재심사로 심사체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이제 독립유공자 심사위원회 운영 방식은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회의록은 원칙적으로 공개하고, 위원별 주요 의견과 쟁점별 판단 근거를 남겨야 한다. 개인정보나 민감한 사안은 필요한 범위에서 보호하더라도, 판단의 핵심 근거와 결론 도출 과정은 국민 앞에 공개돼야 한다.
탈락 사유도 “자료 부족”, “공적 미흡”, “행적 논란” 같은 추상적 문구로 통보해서는 안 된다. 어떤 자료가 부족했고, 어떤 공적이 인정되지 않았으며, 어떤 논란이 어떤 근거로 판단됐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의신청 절차 역시 형식적 재심이 아니라 실질적 재검토가 가능해야 한다. 심사위원 구성도 특정 학문 경향이나 특정 해석에 치우치지 않도록 독립운동사, 법학, 기록학, 지역사, 후손 단체, 시민사회가 균형 있게 참여하는 구조로 재편해야 한다.
독립유공자 심사는 더 이상 밀실의 권한이어서는 안 된다. 심사위원회가 국민 앞에 판단 근거를 내놓지 못한다면 그 결론 역시 국민적 권위를 갖기 어렵다.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심사하려면 심사위원회의 판단도 함께 심사받아야 한다.
독립운동가의 명예는 국가가 베푸는 선물이 아니라 국가가 뒤늦게 갚아야 할 빚이다.
그 빚을 갚는 방식이 깜깜이여서는 안 된다. 광복 80년을 앞둔 지금, 대한민국은 독립유공자 심사를 국민 앞에 공개하고 더 넓고 깊은 역사적 기준으로 다시 세워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