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칼럼] 호남 반도체 시대, 광양은 ‘공장 유치’보다 생태계 전략으로 승부해야광주 연구·제조, 광양 소재·항만, 여수 화학소재 연계한 산업벨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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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충재 전 한국노총 부위원장 |
정부와 삼성, SK가 대한민국 미래 성장전략으로 추진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가 호남 산업지도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반도체와 AI 등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대규모 민관 투자 구상은 단순한 기업 투자계획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 생태계를 다시 설계하는 국가 전략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발표 직후 정치권 일각에서는 또다시 ‘호남 특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지역이 더 많은 예산을 가져가느냐를 따지는 소모적 논쟁이 아니다. 세계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이 어떤 첨단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것인지, 그리고 각 지역이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를 냉정하게 설계하는 일이다.
세계 반도체 산업의 성공 사례는 분명한 방향을 보여준다. 반도체는 공장 하나만으로 성장하는 산업이 아니다. 연구개발, 제조, 소재·부품, 장비, 산업용수, 전력, 물류, 대학, 전문인력이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비로소 경쟁력 있는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대만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TSMC만 성장한 것이 아니다. 신주는 연구개발, 타이난은 생산, 타이중은 정밀기계, 가오슝은 소재산업과 항만 기능을 맡으며 도시별 역할 분담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했다. 특정 도시 하나가 아니라 국가 전체가 기능을 나누며 함께 성장한 것이다.
호남도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광주가 반도체 연구와 제조의 중심축을 맡는다면 주변 도시는 각자의 강점을 살려 산업 생태계를 완성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광양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광양, 반도체 공장 경쟁보다 ‘소재·부품 전략도시’로 가야
광양은 이미 포스코와 광양국가산단, 세풍산단, 율촌산단, 광양항이라는 강력한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광양이 단순히 반도체 공장 유치 경쟁에 뛰어드는 방식은 전략적이지 않다. 오히려 반도체 산업을 뒷받침하는 소재·부품·장비 산업과 첨단 물류 거점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특히 포스코와 연계한 반도체용 특수강, 첨단소재, 장비 관련 부품 산업은 광양이 가장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분야다. 기존 철강산업의 기반 위에 미래 첨단소재 산업을 접목한다면 광양은 전통 제조업과 반도체 산업을 연결하는 새로운 성장축이 될 수 있다.
광양국가산단과 세풍산단, 율촌산단을 반도체 소재·부품 기업 유치 공간으로 재편하고, 여수 화학소재 산업과 연계한다면 광양만권 전체가 첨단소재 벨트로 도약할 수 있다. 이는 공장 하나를 유치하는 문제를 넘어 지역 산업 구조 자체를 고도화하는 전략이다.
광양항, 첨단산업 물류 거점으로 재설계해야
광양항의 역할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은 장비와 핵심소재, 고부가가치 부품의 안정적 공급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광양항은 단순 물동량 경쟁을 넘어 첨단산업 물류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반도체 장비와 핵심소재는 정밀한 운송, 안정적 보관, 신속한 통관, 글로벌 공급망 연결이 필수다. 광양항이 이러한 기능을 갖춘다면 호남 반도체 생태계의 물류 관문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광양항 배후단지에 반도체 장비·소재 물류센터, 보세창고, 첨단산업 전용 물류 플랫폼을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류는 더 이상 항만의 보조 기능이 아니다. 첨단산업 시대에는 물류 자체가 경쟁력이며, 광양항의 미래도 여기에 달려 있다.
광양만권 산업공동체로 호남 반도체 생태계 완성해야
호남 반도체 전략은 도시 간 경쟁이 아니라 역할 분담과 연계로 설계돼야 한다. 광주는 반도체 연구와 제조, 광양은 철강·첨단소재·항만물류, 여수는 화학소재, 순천은 교육과 연구지원, 구례·곡성은 산업용수와 친환경 배후기능을 맡는 방식이다.
특히 산업용수 확보는 국가 차원의 전략 과제다. 반도체 산업은 안정적인 용수 공급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섬진강 수계를 공유하는 광양·구례·곡성은 호남 반도체 산업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배후지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이는 무분별한 개발이 아니라 수질 보전, 환경 보존, 지역 상생을 전제로 추진돼야 한다.
광양만권 산업공동체가 구축된다면 호남 반도체 전략은 특정 지역에 집중된 개발이 아니라 여러 도시가 기능을 나누는 균형발전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는 정치적 특혜 논란을 넘어 국가 전략산업과 지역 균형발전을 동시에 달성하는 현실적 해법이다.
정부는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 방향을 제시했다. 이제 광양도 광양만의 역할을 제안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반도체 공장 하나를 유치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 프로젝트 안에서 광양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내는 것이다.
철강과 항만, 첨단소재와 물류, 산업용수라는 강점을 하나의 전략으로 연결한다면 광양은 호남 반도체 시대를 뒷받침하는 핵심 산업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산업의 대전환은 준비된 지역에 기회를 준다. 지금 광양에 필요한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현실적인 전략이다. 호남 반도체 시대를 향한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 광양도 그 변화의 중심에서 자신의 역할을 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