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라 늙어가고 있다”②유럽의 위기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 시스템의 노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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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중앙은행 ECB (사진=내외신문 DB) |
1편에서 살펴본 것처럼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주권 회복’이라는 정치적 구호와 달리 경제적 고립, 생산성 정체, 생활수준 하락이라는 현실에 직면했다. 유럽 대륙 역시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 제조업 쇠퇴, 고령화와 복지 부담, 기후 전환비용이라는 복합 위기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유럽이 이 위기를 해결할 정치적 속도와 결단력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유럽연합은 거대한 제도적 실험이었다. 전쟁의 대륙을 평화의 공동체로 바꾸고, 국경을 넘어 시장과 법, 통화를 통합한 역사적 성취였다. 그러나 통합의 성공은 어느 순간 통합의 부담으로 바뀌었다.
유럽은 하나의 시장을 만들었지만 하나의 국가가 되지는 못했다. 하나의 통화를 만들었지만 하나의 재정정책을 갖지는 못했다. 하나의 규범을 만들었지만 하나의 정치적 의지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이 모순이 오늘날 유럽 위기의 핵심이다.
유로존 국가들은 같은 화폐를 쓰지만 경제 체질은 다르다. 독일은 제조업과 수출 중심 경제이고, 프랑스는 공공부문과 내수 비중이 크며, 남유럽은 관광과 서비스업 의존도가 높다. 같은 금리와 같은 통화정책이 이들 모두에게 동일하게 작동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유럽중앙은행은 하나의 통화정책을 운용하고, 각국 정부는 제각각의 재정 압박 속에서 움직인다.
그 결과 위기가 올 때마다 유럽은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미국은 대규모 재정 투입과 산업정책으로 경기와 기술 패권을 동시에 방어하지만, 유럽은 회원국 간 이해 조정과 규정 검토, 재정준칙 논쟁에 시간을 허비한다. 위기가 번개처럼 오는데 대응은 우편배달부처럼 느리다.
브뤼셀 관료주의도 문제다. 유럽연합은 인권, 환경, 소비자 보호, 노동권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규범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규범이 산업 경쟁력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규제는 필요하지만, 규제가 산업전략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유럽은 기술을 만드는 속도보다 규칙을 만드는 속도가 빠른 대륙이 됐다.
AI, 반도체, 배터리, 클라우드, 플랫폼 산업에서 유럽의 존재감은 제한적이다. 미국은 빅테크 기업과 벤처자본을 중심으로 기술 생태계를 키웠고, 중국은 국가 주도 산업정책으로 제조 기반을 강화했다. 반면 유럽은 개인정보 보호와 플랫폼 규제, 탄소규제 등에서 세계적 기준을 만들었지만, 정작 그 규제를 감당하며 세계 시장을 지배할 기업은 충분히 키우지 못했다.
![]() ▲ 글로벌 규제의 확산과 기업의 대응-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공급망 실사법이 도입 (회의중인 EU) |
규범의 대륙이 산업의 대륙을 잃고 있는 것이다.
청년 문제는 더 심각하다. 유럽의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가 누렸던 성장의 사다리를 더 이상 기대하지 못한다. 주거비는 치솟고, 안정된 일자리는 줄어들며, 세금과 사회보험 부담은 커지고 있다. 고령층 복지를 유지하기 위해 청년층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구조가 굳어지면서 세대 간 불만은 누적되고 있다.
유럽 복지국가는 전후 성장기에는 강력한 사회적 안전망이었다. 그러나 저성장과 고령화 시대에는 그 자체가 거대한 재정 부담으로 변하고 있다. 문제는 복지를 줄이기도 어렵고, 늘리기도 어렵다는 데 있다. 줄이면 사회 불안이 폭발하고, 늘리면 재정이 무너진다. 유럽 정치가 진퇴양난에 빠진 이유다.
이 틈을 파고드는 것이 포퓰리즘이다.
극우정당은 이민자와 유럽연합, 엘리트 관료를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극좌정당은 긴축과 자본주의, 금융권력을 공격한다. 양쪽 모두 현실의 분노를 정치적 에너지로 바꾸는 데는 능숙하지만, 복잡한 구조개혁의 해답을 제시하는 데는 한계를 보인다. 그럼에도 이들이 성장하는 이유는 중도정치가 더 이상 국민에게 설득력 있는 미래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거리 시위, 독일 극우정당의 약진, 이탈리아의 우파 민족주의, 네덜란드와 북유럽의 반이민 정서 확산은 개별 현상이 아니다. 이는 유럽 시민들이 기존 정치질서에 보내는 불신의 신호다. 사람들은 더 이상 “조금만 기다리면 좋아질 것”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유럽 정치의 가장 큰 위기는 정책 실패보다 신뢰 상실이다.
이민 문제 역시 유럽의 깊은 균열을 드러낸다. 유럽은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이민자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사회통합 정책은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다. 일부 대도시에서는 교육, 주거, 치안, 종교, 문화 정체성 문제가 겹치며 갈등이 커졌다. 이민을 무조건 거부할 수도 없고, 무조건 확대할 수도 없는 딜레마가 유럽 정치를 갈라놓고 있다.
여기에 외교·안보의 전략 부재가 더해진다. 유럽은 오랫동안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에서 경제 통합과 복지국가 모델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세계질서가 다시 힘의 정치로 돌아가면서 유럽의 전략적 취약성이 드러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이 에너지와 안보를 얼마나 외부에 의존해 왔는지를 보여줬다.
미국은 자국 중심의 산업·안보 전략을 강화하고 있고, 중국은 거대한 제조력과 자원 외교로 세계 공급망을 흔들고 있다. 그 사이에서 유럽은 가치 외교와 현실 외교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인권과 법치를 말하지만 에너지와 원자재는 필요하고, 중국을 견제해야 하지만 중국 시장도 포기하기 어렵다. 미국과 보조를 맞춰야 하지만 미국의 보호주의는 유럽 산업에도 부담이다.
![]() ▲ 우경화의 파도, 프랑스에서 유럽 전역으로 (사진=내외신문DB) |
유럽은 세계질서의 설계자에서 조정자로, 다시 관찰자로 밀려나고 있다.
그렇다면 유럽의 부활은 불가능한가. 그렇지는 않다. 유럽은 여전히 강력한 자산을 갖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과 연구기관, 정교한 제조기술, 문화와 관광 자산, 법치와 제도 신뢰, 고급 인력, 축적된 자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이 자산을 미래 산업으로 연결하는 정치적 결단이다.
유럽이 다시 일어서려면 첫째, 에너지 전략을 현실화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필요하지만 산업 기반을 무너뜨리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원전, 재생에너지, 수소, 전력망, 저장장치,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를 종합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친환경은 구호가 아니라 가격과 공급 안정성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둘째, 복지국가를 세대 간 계약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고령층 보호와 청년층 기회 확대를 대립시키는 순간 사회는 찢어진다. 연금, 의료, 주거, 교육, 직업훈련을 하나의 생애주기 정책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청년에게 세금 부담만 주고 미래를 주지 않는 사회는 오래 버틸 수 없다.
셋째, 유럽은 규제국가를 넘어 산업국가로 돌아가야 한다. AI, 반도체, 바이오, 배터리, 방산, 우주, 친환경 소재, 차세대 모빌리티 분야에서 공동 산업전략을 세워야 한다. 미국식 빅테크 모델이나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를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유럽식 모델도 자본, 속도, 위험감수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세계 시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넷째, 이민과 통합 정책을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다뤄야 한다.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한 이민은 필요하지만, 교육과 언어, 직업훈련, 지역사회 통합이 함께 가지 않으면 사회 갈등만 커진다. 유럽은 관용의 이름으로 방치해서도 안 되고, 질서의 이름으로 배제해서도 안 된다. 통합은 선의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다.
다섯째, 유럽 정치가 다시 장기적 비전을 말해야 한다. 지금 유럽의 위기는 국민이 고통을 감당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 아니다. 고통 이후 무엇이 오는지 정치가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개혁은 언제나 비용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비용이 미래의 기회로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을 때 사회는 버틴다.
영국 역시 마찬가지다. 브렉시트의 후유증을 인정하지 않은 채 과거 제국의 향수에 머문다면 회복은 어렵다. 영국은 금융, 교육, 바이오, AI, 문화콘텐츠, 법률서비스 등 자신이 여전히 강점을 가진 분야를 중심으로 새로운 개방 전략을 짜야 한다. 유럽과 완전히 단절된 영국도, 미국만 바라보는 영국도 답이 아니다. 영국은 다시 세계와 연결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결국 영국과 유럽의 위기는 ‘무너지는 문명’의 이야기가 아니라 ‘낡은 시스템이 새 시대를 감당하지 못하는 이야기’다. 제국의 시대가 끝난 것은 오래전이다. 문제는 그 이후에도 유럽이 과거의 풍요와 제도적 우월감에 기대어 미래 산업과 인구구조, 에너지 현실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유럽은 지금 선택의 문 앞에 서 있다. 느린 쇠퇴를 품격 있는 안정으로 착각할 것인가, 아니면 고통스러운 개혁을 통해 다시 살아 있는 대륙이 될 것인가.
![]() ▲ 미국과 유럽연합의 관세전쟁 (사진생성 AI 활용) |
몰락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성장률이 낮아지고, 다음에는 청년이 떠나며, 그다음에는 기업이 빠져나가고, 마지막에는 시민이 미래를 믿지 않게 된다. 유럽이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경제지표의 하락이 아니라 희망의 이탈이다.
유럽의 부활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 부활은 과거의 영광을 복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시스템을 다시 짜는 방식이어야 한다. 제국의 기억이 아니라 혁신의 설계도, 복지의 관성이 아니라 세대 간 새 계약, 규제의 자부심이 아니라 산업의 재건이 필요하다.
영국과 유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더 이상 과거의 이름값만으로 미래를 살 수 없는 시간에 들어섰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