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된 국민참여재판, ‘국민의 사법 참여’는 왜 멈춰 섰나사법 투명성 확대 방안으로 거론됐지만 현장 실적은 여전히 저조
|
![]() ▲ 국민참여재판 (사진=ai활용) |
인천지법 접수 895건 중 실제 재판은 25.1%뿐
법원행정처가 발행한 ‘2025 사법연감’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24년까지 인천지법에 접수된 국민참여재판 사건은 모두 895건이다. 이 가운데 장기 계류 중인 45건을 제외한 850건 중 실제 국민참여재판으로 실시된 사건은 213건으로, 비율은 25.1%에 그쳤다. 접수된 사건 4건 가운데 1건만 실제 국민참여재판으로 이어진 것이다.
나머지 사건 상당수는 피고인이나 검사의 신청 철회, 또는 법원의 배제 결정으로 국민참여재판 절차에 이르지 못했다. 통계상 456건, 53.6%는 신청 이후 철회됐고, 181건, 21.3%는 법원이 배제 결정을 내렸다. 제도상 신청은 가능하지만 실제 진행까지 가는 길목 곳곳에 제동 장치가 작동하고 있는 구조다.
법원의 배제 결정이 많다는 점은 제도 활성화를 가로막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현행 국민참여법은 배심원의 생명·신체·재산에 침해 우려가 있는 경우, 성폭력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 그 밖에 법원이 국민참여재판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경우 배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배제 사유가 비교적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인천지법의 한 판사는 코로나19 확산 시기 국민참여재판 접수 자체가 줄어든 측면도 있었지만, 접수 이후 피고인이 신청을 철회하거나 법원이 특정 사유로 배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원이 배제할 수 있는 사유가 넓게 열려 있어 개별 재판부의 재량에 맡겨진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사법개혁 논의 속 국민참여재판 확대론 다시 부상
국민참여재판 확대 문제는 사법개혁 논의와 맞물려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이 법원행정처 폐지와 퇴직 고위법관의 변호사 개업 제한 등을 담은 2차 사법개혁안을 제시하자, 법원행정처는 사법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 중 하나로 국민참여재판 확대를 내세웠다.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12월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방향과 과제’ 공청회를 열고 국민참여재판 확대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는 사법부가 외부 통제나 조직 개편 논의에 대응하면서 국민 참여 확대를 제도 개선의 한 축으로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실제 현장 통계는 법원의 제안과 현실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음을 보여준다. 제도 확대를 말하면서도 실제 사건에서는 배제 결정과 신청 철회가 반복된다면, 국민참여재판은 상징적 제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는 강력범죄 등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에 대해서는 국민참여재판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국회에는 살인 등 생명 침해 범죄를 반드시 국민참여재판으로 심리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돼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받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일수록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이 재판 과정에 반영돼야 한다는 취지다.
국민참여재판은 단순히 배심원 몇 명을 법정에 앉히는 절차가 아니다. 사법 판단이 법관만의 폐쇄적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의 경험과 상식, 공동체의 감각과 만나는 통로다. 제도가 도입된 지 18년이 지났음에도 실제 실시율이 낮다면, 이제는 국민참여재판을 ‘할 수 있는 제도’에서 ‘작동하는 제도’로 바꾸는 논의가 필요하다.
사법 투명성은 선언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법정의 문이 국민에게 얼마나 열려 있는지, 국민의 판단이 재판 과정에서 얼마나 존중되는지에 따라 사법 신뢰의 체감도는 달라진다. 인천지법의 저조한 국민참여재판 실적은 한 지역 법원의 통계를 넘어, 한국 사법제도가 국민 참여라는 숙제를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