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를 다시 뉴스의 첫 화면으로 불러내야 한다전쟁이 세계의 시선을 빼앗는 동안 기후위기는 물 부족, 식량위기, 재난과 이주라는 더 깊은 생존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
![]() ▲ 러시아 산불은 심각한 기후위기를 몰고 오고 있다. (사진=이타르타스 통신 화면) |
기후대응은 미사일을 요격하지 않지만, 식량폭동과 물 부족, 재난피해, 감염병, 대규모 이주라는 다른 형태의 안보위협을 줄일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은 단지 온실가스를 줄이는 정책이 아니라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지정학적 충격에 대한 회복력을 높이는 전략이다.
재생에너지와 저장장치, 분산형 전력망, 효율 개선, 건물 리모델링은 기후정책이면서 산업정책이고, 평화정책이면서 민생정책이다.
기후위기가 뉴스에서 밀려나는 현상은 언론의 책임도 묻는다. 언론은 전쟁을 보도해야 한다. 그러나 전쟁만 보도해서는 세계의 전체 위험을 설명할 수 없다.
폭격 장면 뒤에 있는 에너지 질서, 곡물가격, 난민 이동, 물 부족, 군비지출과 기후재정의 충돌을 함께 다뤄야 한다. 기후기사는 북극곰과 빙하의 이미지에 갇혀서는 안 된다.
기후위기는 전기요금, 보험료, 병원 응급실, 학교 급식, 항만 물류, 반도체 공장 전력, 농민의 빚, 어민의 조업일수, 도시 노동자의 열사병 위험과 연결돼 있다. 기후를 생활의 언어로 번역하지 못하면, 시민은 기후위기를 거대한 추상화로만 느끼게 된다. 추상화는 분노를 만들기 어렵고, 분노 없는 위기는 정치의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 ▲ 맥시코의 기후위기 “기후변화는 환경문제가 아니라 생존문제”… 산업·사회 전 부문의 대전환 촉구 |
국제정치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 세계는 전쟁과 군비경쟁을 이유로 기후재정을 뒤로 미루고 있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더 비싼 선택이다. 기후적응에 쓰지 않은 돈은 재난복구비, 난민지원비, 식량보조금, 군사적 긴장관리 비용으로 돌아온다. 예방은 늘 덜 화려하지만, 청구서는 훨씬 작다.
취약국의 기후적응을 지원하는 일은 자선이 아니라 세계안보 투자다. 물 관리, 농업 회복력, 재난 조기경보, 보건 인프라, 지역 에너지망에 투자하면 분쟁의 압력을 낮출 수 있다. 반대로 취약 지역을 방치하면 재난과 이동과 갈등이 서로를 밀어 올리는 악순환이 커진다.
![]() ▲ 지구에 위협이 되는 기후위기, 핵전쟁,바이러스, AI등 이미지 |
기업 역시 기후위기를 평판관리 수준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 전쟁과 기후위기가 겹치는 시대에는 공급망 자체가 기후리스크의 지도가 된다. 어느 지역의 공장이 폭염으로 멈추는지, 어느 항만이 태풍과 해수면 상승에 취약한지, 어느 농산물 원료가 가뭄에 흔들리는지, 어느 광물 공급망이 분쟁지역과 연결되는지 파악해야 한다.
ESG가 장식용 보고서로 남으면 기업은 위기를 늦게 발견한다. 기후리스크는 회계 밖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용, 보험, 신용, 투자, 물류, 노동생산성의 문제다. 금융기관도 마찬가지다. 기후위험을 반영하지 않는 대출과 투자는 미래의 부실을 현재의 수익으로 착각하는 일이다.
시민의 역할도 작지 않다. 시민은 기후위기를 개인의 절약윤리로만 떠안아서는 안 된다. 텀블러와 분리수거도 의미가 있지만, 더 큰 변화는 정책과 예산, 산업구조, 도시계획, 에너지 시스템에서 나온다. 시민은 정치에 물어야 한다.
국방비를 늘릴 때 기후안보 예산은 어떻게 보강할 것인가. 재난예산은 사후복구 중심인가, 예방 중심인가. 폭염 속 노동자의 생명은 어떤 법과 제도로 보호되는가. 지역의 재생에너지는 주민소득과 연결되는가. 농업의 기후적응은 농민에게 비용만 떠넘기는가, 국가가 함께 책임지는가. 기후위기는 개인의 양심만으로 막을 수 없는 규모의 문제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의제로 올라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후위기를 ‘나중의 문제’로 밀어내는 언어를 버리는 일이다. 전쟁은 오늘의 피를 요구하고, 기후위기는 내일의 삶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둘 다 오늘의 생존을 겨냥한다.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가 폭염에 노출되고, 가뭄으로 약해진 농촌이 분쟁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며, 홍수로 무너진 지역이 정치적 불신의 늪에 빠지는 장면은 이미 현실이다. 기후위기는 배경음이 아니다. 전쟁의 굉음 밑에서 계속 울리는 저주파 경보음이다. 귀를 막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 ▲ 기후위기와 북극 |
문제의식은 “전세계 전쟁 때문에 잊혀지고 있는 기후변화”를 다시 공적 의제로 불러내야 한다는 요청에서 출발한다. 전쟁을 외면하자는 말이 아니다. 전쟁의 참상을 보되, 그 참상 뒤에서 더 넓은 생존 기반이 무너지는 현실까지 함께 보자는 말이다.
평화 없는 기후정책은 취약하고, 기후 없는 평화정책은 짧다. 지구가 더 뜨거워질수록 평화는 더 비싸지고, 전쟁이 길어질수록 기후대응은 더 늦어진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결합이다. 휴전과 감, 에너지안보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하나의 국가전략으로 묶어야 한다.
![]() ▲ 기후위기에 불타는 지구 (나무위키 사진 캡쳐)서울의 한낮 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날이 늘었고, 새벽에도 28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몇 주씩 이어진다. |
세계는 지금 전쟁의 불길을 끄느라 기후의 연기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연기를 무시한 집은 언젠가 불길에 갇힌다. 기후변화는 잊힌 위기가 아니라, 잊힌 척되고 있는 위기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위기는 보이지 않는 위기가 아니라, 보면서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위기다.
기후위기를 다시 뉴스의 첫 화면으로 불러내야 한다. 그것은 환경을 위한 일이기 전에 사람을 위한 일이며, 미래세대를 위한 일이기 전에 지금의 난민, 농민, 노동자, 어린이, 노인, 도시와 국가를 위한 일이다. 전쟁의 시대일수록 기후를 말해야 한다. 지구의 온도계는 포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올라가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