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시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가려진 위기포성은 하루를 찢지만, 기후위기는 세기를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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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기로 뒤덮인 전쟁 피해 도시의 스카이라인 |
지금 세계의 시선은 전쟁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 수단 내전, 중동의 군사적 긴장,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의 불안, 아프리카 사헬 지역의 무장 충돌까지 지구촌 뉴스의 첫 화면은 거의 매일 폭발음과 피난 행렬, 미사일 궤적, 외교적 경고로 채워진다.
화면은 빠르고, 전쟁은 선명하다. 건물이 무너지고, 국경이 닫히고, 사람이 숨을 곳을 찾는 장면은 즉각적인 공포를 만든다. 반면 기후변화는 느리게 보인다.
바다는 조금씩 높아지고, 토양은 조금씩 마르고, 폭염은 계절의 이름을 빌려 다가오며, 홍수는 지나간 뒤에야 기록으로 남는다. 그래서 세계는 자주 착각한다. 전쟁은 현재의 위기이고, 기후변화는 미래의 문제라고. 그러나 이 구분은 위험하다. 기후위기는 이미 현재의 전쟁, 현재의 난민, 현재의 식량가격, 현재의 물 부족, 현재의 에너지 안보 속에 들어와 있다.
세계기상기구는 2024년이 175년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해였고,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이 1.55±0.13도 높아진 해였다고 밝혔다. 이는 1.5도라는 상징적 문턱이 더 이상 먼 경고판이 아니라 현실의 체온계에 찍힌 숫자라는 뜻이다. IPCC 역시 온난화가 조금 더 진행될 때마다 폭염, 집중호우, 가뭄, 해수면 상승, 생태계 붕괴 위험이 확대된다고 경고해왔다. 전쟁이 인간의 시간을 찢는다면, 기후변화는 인간의 터전을 조금씩 빼앗는다. 문제는 두 위기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쟁은 기후대응을 뒤로 밀어내고, 기후변화는 전쟁과 분쟁의 조건을 더 거칠게 만든다. 세계는 지금 두 개의 불길을 따로 끄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집의 다른 방에서 불이 번지고 있다.
![]() ▲ 중동전쟁 이스라엘 폭격기가 이란전역을 폭격하고 있다. (사진=유투브 화면 캡쳐) |
전쟁이 기후변화를 잊게 만드는 방식은 단순히 뉴스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쟁은 국가 재정의 방향을 바꾼다. 국방비가 늘고, 에너지 안보 명분으로 화석연료 인프라가 재가동되며, 식량과 원자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진다. 전쟁은 국제회의의 의제도 흔든다.
탄소감축 목표보다 군사동맹과 제재, 무기 지원, 해상 교통로 확보가 더 시급한 현안으로 부상한다. 그러나 대기 중 온실가스는 외교일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미사일이 날아가는 동안에도 대기는 데워지고, 피난민이 국경을 넘는 동안에도 바다는 열을 축적한다. 기후위기의 냉혹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이 다른 일에 정신을 빼앗긴다고 해서, 물리 법칙이 잠시 멈추지는 않는다.
![]() ▲ 부모를 잃고 구호시설에 모인 전쟁 고아들의 모습 |
최근 국제사회가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전쟁과 기후위기가 모두 취약한 사람에게 먼저 도착한다는 사실이다. 기후위기는 평균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폭염이라도 에어컨이 있는 도심 사무실과 전기 공급이 끊긴 난민촌에서 의미가 다르다.
같은 가뭄이라도 관개시설과 보험이 있는 농업국가와 빗물에 의존하는 소농 공동체에서 결과가 다르다. 같은 홍수라도 튼튼한 배수망이 있는 도시와 임시천막이 늘어선 피난 지역에서 피해의 깊이가 다르다.
유엔난민기구는 기후위기가 이미 강제이주와 분쟁의 현실을 증폭시키고 있으며, 기후변화와 이주가 점점 더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전쟁으로 집을 잃은 사람에게 기후재난은 두 번째 폭격이다. 폭탄은 한 번 떨어지지만, 폭염과 홍수와 가뭄은 피난의 길목마다 반복된다.
이 지점에서 기후변화는 환경 문제가 아니라 인간안보의 문제로 다시 읽혀야 한다. 인간안보란 국경의 안전만이 아니라 물, 식량, 주거, 건강, 생계, 이동의 안전까지 포함한다. 전통적 안보가 탱크와 전투기, 미사일 방어체계를 떠올리게 한다면, 기후시대의 안보는 저수지, 병원, 전력망, 농지, 하수도, 해안 방벽, 재난대응 시스템까지 품어야 한다.
가뭄이 길어지면 식량가격이 오르고, 식량가격이 오르면 사회 불만이 커지며, 사회 불만은 정치적 불안과 충돌의 토양이 된다. 물 부족은 공동체 사이의 갈등을 키우고, 농업 생산의 붕괴는 도시 빈민층을 확대한다. 폭염은 노동시간을 줄이고, 감염병과 열사병 위험을 키우며, 어린이와 노인, 저소득층에게 더 가혹하게 작동한다. 기후위기는 총을 들지 않지만, 국가를 흔드는 능력은 이미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