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는 여당대표의 그릇...정청래와 김민석 총리의 그릇통합의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전사(戰士)가 아니라 설계자를 돕는 제갈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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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태수 기자 |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대한민국 정치는 새로운 전환점 앞에 서게 됐다.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대한민국의 정치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역사적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국민들은 민주진영에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국가 대개혁이라는 과제가 실행하기 위한 대전제가 깔린 것이다. 단순히 검찰개혁과 시스템 개혁을 넘어 세계사적 대한민국이 월등히 앞서나갈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고 아직도 시간은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민주당이 과거 야당의 문법에서 벗어나 집권세력으로서 새로운 정치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저 역시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사실 본인도 처음부터 정청래 대표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법제사법위원장 시절 보여준 강한 추진력과 전투력에 적지 않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던 그 시절, 저 역시 그가 당대표가 되어도 충분히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당대표 선출에 대해서도 특별한 거부감은 없었다.
그러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계기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정치철학과 정청래 대표의 실제 행보 사이에서 나타난 괴리 때문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당이 집권세력이 되면 정치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시절 "보수가 보수 노릇을 못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대한민국 정치가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책임 있는 보수 역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저는 이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했다.
윤석열 정권의 실패가 보수 전체의 소멸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존중하는 새로운 보수와 책임 있는 진보가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민주진영 앞에는 단순한 정권교체 이상의 역사적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진보정당의 외연을 넓히는 수준을 넘어 중도를 포용하고, 나아가 합리적 보수까지 끌어안는 거대한 정치적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와 통합정치가 실제 당 운영에서도 구현될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기대했다.
정청래 대표가 민주당을 보다 넓은 국민정당으로 성장시키고, 중도확장 전략과 국민통합 전략을 구체화하며, 대한민국 정치구조를 바꾸기 위한 200석의 꿈을 함께 꾸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승리를 위한 정치에 집중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보이는 모습은 달랐다.
민주당이 집권여당이 되었음에도 정치적 시선은 여전히 특정 지지층과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 머무르는 듯했다.
국민 전체를 바라보기보다 자기편의 박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이 반복되었고, 중도층과 보수층을 설득하려는 노력보다는 진보진영 내부의 결속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것처럼 보였다.
그 한계는 정치적 상상력의 범위에서도 드러난다.
윤석열 내란 사태는 단순히 민주당이 의석뿐 아니라 국가개조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는 계기였다. 대한민국의 기득권 구조를 바꾸고, 진영 대립을 넘어 새로운 국가 운영 체계를 설계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였다.
만약 민주당이 중도와 합리적 보수까지 포용하는 대연합을 구축한다면, 200석 이상의 개혁연합도 불가능한 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검찰개혁, 사법개혁, 정치개혁, 권력구조 개편 등 대한민국이 수십 년 동안 풀지 못했던 과제들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지금 정청래 대표가 보여주는 방향은 국민 전체를 향하기보다 조국혁신당과의 통합, 범진보 진영의 결집 등 진보진영 내부의 산술적 확장에 더 가까워 보인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하며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로 성장했다. 그러나 정치만큼은 여전히 진영 대립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북한 문제는 강경론과 유화론 사이를 오가고, 중국 문제는 경제와 안보 사이에서 줄타기를 반복하며, 일본 문제 역시 정권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 왔다. 대한민국이 가진 잠재력에 비해 국가적 에너지가 지나치게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여당의 대표는 진영 통합이 아니라 국민 통합을 이야기해야 한다. 진보의 확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확대를 이야기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정청래 대표와 김민석 총리의 차이를 본다.
정청래 대표가 돈키호테라면 김민석 총리는 제갈량에 가깝다.
돈키호테는 정의감이 강하다. 불의와 맞서 싸우는 용기도 있다. 누구보다 먼저 창을 들고 전장으로 뛰어든다. 그러나 돈키호테의 한계는 방향보다 돌진에 있다. 자신이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확신은 있지만, 그 싸움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한 전략은 부족하다.
반면 재갈량은 다르다.
재상은 눈앞의 적보다 국가 전체를 본다. 오늘의 전투보다 내일의 질서를 고민한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보다 국가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설계한다.
내가 김민석 총리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민석 총리는 전형적인 참모형 정치인이다.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보다 국정철학을 현실로 연결하는 역할에 집중한다. 대통령의 구상을 정책으로 만들고, 국가의 방향을 제도와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이 진보진영 내부의 확대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신뢰를 얻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반면 정청래 대표에게서는 여전히 야당 시절의 투쟁형 정치가 강하게 보인다. 집권여당의 대표라면 중도층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보수층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국민들이 왜 정치에 피로감을 느끼는지를 읽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그러한 확장보다 진보진영 내부의 결집에 더 무게가 실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종종 정청래 대표를 보며 돈키호테를 떠올린다.
돈키호테는 용감했다. 정의감도 있었다. 행동력도 있었다. 하지만 풍차를 거인이라 믿고 돌진했다. 그는 스스로 정의를 실현한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그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정청래 대표 역시 누구보다 강한 추진력과 전투력을 가진 정치인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이 요구하는 것은 또 한 명의 전사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의 국가 비전 아래 묶어낼 수 있는 설계자이며 조율자이고 재상이다.
정치인의 크기는 얼마나 강하게 싸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넓게 품느냐로 결정된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진보의 승리가 아니다. 보수의 패배도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더 큰 공동체의 성공이다.
그리고 그 성공은 돈키호테의 창끝이 아니라, 국가를 설계하는 재상의 지혜와 더 넓은 그릇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