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의 ‘외국인 차단’과 중국의 ‘AI 개방’, 프론티어 모델 전쟁이 시작됐다미국은 닫고 중국은 열었다…AI 패권전쟁은 이제 ‘모델 접근권’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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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AI 접근 차단과 중국의 AI 개방 전략을 대비시킨 그림이다. 왼쪽의 잠긴 데이터센터는 봉쇄를, 오른쪽의 열린 네트워크는 생태계 확장을 뜻한다. 중앙의 AI 두뇌는 프론티어 모델이 국가안보와 산업 인프라의 핵심 자산이 되었음을 상징한다. (그림=내외신문)AI활용 |
미국은 봉쇄로, 중국은 개방으로 AI 패권을 설계하고 있다. 한쪽은 프론티어 AI 모델을 국가안보 자산으로 묶어 외부 접근을 통제하고, 다른 한쪽은 오픈소스와 오픈웨이트 전략을 앞세워 세계 개발자 생태계 속으로 파고든다. 겉으로는 기업 간 기술 경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AI 시대의 공급망 전쟁이 반도체에서 모델 인프라로 확장되는 장면이다.
최근 앤트로픽을 둘러싼 논란은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정부가 앤트로픽의 최신 고성능 모델인 ‘Fable 5’와 ‘Mythos 5’에 대해 수출통제 성격의 조치를 취했고, 이에 따라 외국 고객의 접근이 차단됐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모델의 안전장치 우회 가능성과 국가안보 위험을 문제 삼았고, 앤트로픽은 해당 위험이 과장됐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안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단순히 특정 모델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는 사실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프론티어 AI 모델이 더 이상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아니라 전략물자에 가까운 지위를 부여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은 이미 고성능 AI 반도체뿐 아니라 일부 폐쇄형 AI 모델 가중치까지 수출통제 대상으로 삼는 규제 프레임을 제시한 바 있다.
미국의 봉쇄 전략, 반도체에서 모델로 이동하다
미국의 AI 전략은 오랫동안 반도체 통제에 집중돼 있었다. 엔비디아 GPU, 첨단 제조장비,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칩의 흐름을 통제하면 중국의 AI 훈련 능력을 늦출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빠르게 산업 현장으로 들어오면서 통제 대상은 점차 바뀌고 있다. 이제 핵심은 칩만이 아니다. 모델 가중치, API 접근권, 추론 인프라, 안전성 평가, 데이터센터 운영권까지 모두 안보의 언어로 재해석되고 있다.
앤트로픽은 지난해에도 중국 등 지원되지 않는 지역의 기업들이 우회 법인이나 해외 자회사를 통해 서비스에 접근하는 문제를 지적하며, 이른바 ‘권위주의 지역’의 지배를 받는 기업에 대한 제한을 강화했다. 회사는 중국과 같은 지역의 법적·정보기관 협조 의무가 국가안보 리스크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AI 산업의 문법이 바뀌고 있음을 뜻한다. 과거에는 클라우드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느냐가 기업의 기술 선택 문제였다면, 이제는 어느 국가의 모델에 의존하느냐가 산업안보의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 기업이 미국 모델을 기반으로 고객상담, 금융심사, 제조공정 최적화, 법률 검토, 의료 보조, 소프트웨어 개발 자동화를 구축했다면, 어느 날 외교·안보 판단에 따라 핵심 기능이 제한될 수 있다. AI가 생산성 도구에서 기업의 판단과 실행을 지배하는 산업 신경계가 된 순간, 모델 접근권은 원유·전력·반도체 못지않은 전략 리스크가 된다.
중국의 개방 전략, 오픈소스로 우회로를 뚫다
중국의 대응은 미국과 다르다. 미국이 최상위 모델을 잠그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중국은 오픈소스와 오픈웨이트를 통해 생태계 장악을 시도한다. 즈푸AI는 GLM 계열 모델을 앞세워 개발자 생태계에 진입하고 있으며, GLM-5는 API, 오픈웨이트 다운로드, 로컬 배포를 지원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즈푸AI의 GLM-5 기술보고서는 이 모델을 에이전트형 코딩과 장기 과업 수행에 초점을 맞춘 차세대 기반모델로 설명한다. 해당 논문은 GLM-5가 실세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과제에서 강한 성능을 보였고, 코드와 모델 정보를 공개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즈푸AI는 화웨이 칩 기반으로 훈련한 이미지 생성 모델을 공개하며, 미국산 칩 의존을 낮추는 ‘국산 AI 스택’의 상징성을 부각했다. 중국 관영 매체와 홍콩 매체는 GLM-Image가 중국산 칩으로 훈련된 주요 오픈소스 멀티모달 모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중국의 개방 전략은 단순한 기술 공유가 아니다. 이는 지정학적 확산 전략이다. 미국 모델에 접근하기 어려운 국가, 비용 부담이 큰 스타트업, 자체 배포를 원하는 기업, 데이터 주권을 중시하는 정부에 중국 모델은 현실적 대안으로 다가갈 수 있다. 미국이 ‘접근 제한’을 통해 우위를 지키려 한다면, 중국은 ‘접근 확산’을 통해 영향권을 넓히는 셈이다. AI 패권 경쟁의 전선이 실리콘 웨이퍼 위에서 깃허브 저장소와 모델 허브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리스크, 소버린 AI를 넘어 인프라 주권으로
한국이 직면한 과제는 분명하다. 이제 소버린 AI를 단순히 “한국어를 잘하는 자체 모델” 정도로 이해해서는 부족하다. 한국 산업에 필요한 것은 모델 자체, 추론 인프라,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보안검증, 산업별 파인튜닝, 공공조달, 금융지원까지 묶은 인프라 주권 전략이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미국 빅테크와 프론티어 모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는 단기적으로 효율적이다. 성능 좋은 모델을 API로 가져다 쓰면 개발 속도가 빨라지고 투자비도 줄어든다. 그러나 기업의 핵심 의사결정, 제조 자동화, 금융 리스크 평가, 공공 행정 시스템이 외국 모델 위에 올라가는 순간, 접근 차단·가격 인상·정책 변경·수출통제·데이터 이전 제한은 곧 산업 기능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AI 전략은 세 겹으로 설계돼야 한다. 하나는 미국 프론티어 모델을 활용하는 실용적 협력축이다. 다른 하나는 오픈소스 모델을 적극 활용해 산업별 응용 능력을 키우는 개방형 기술축이다. 여기에 한국 정부와 민간이 함께 관리하는 핵심 산업용 모델·데이터·추론 인프라를 구축하는 주권축이 더해져야 한다.
이 주권축은 국가가 모든 모델을 직접 만들자는 뜻이 아니다. 전력망처럼, 통신망처럼, 금융결제망처럼 AI 인프라의 최소 자립선을 확보하자는 의미다. 공공·금융·국방·제조·의료·교육 등 핵심 영역에는 외부 API가 막혀도 작동 가능한 대체 경로가 있어야 한다. 한국형 모델, 한국어·산업 데이터셋, 국내 데이터센터, 국산 AI 반도체, 보안 검증 체계가 하나의 정책 패키지로 연결돼야 한다.
지금 AI 패권 경쟁은 “누가 더 똑똑한 챗봇을 만들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모델 접근권을 통제하고, 누가 개발자 생태계를 장악하며, 누가 산업 신경계를 자국의 인프라 위에 올려놓느냐의 문제다. 미국은 봉쇄로, 중국은 개방으로 각자의 제국 지도를 그리고 있다. 한국이 이 판에서 단순 이용자로 남는다면, 산업의 두뇌는 남의 서버에 있고 손발만 국내에 남는 기묘한 구조가 될 수 있다.
AI 시대의 진짜 주권은 모델 이름표에 있지 않다. 필요할 때 접근할 수 있고, 위기 때 멈추지 않으며, 산업 현장의 판단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한국이 지금 서둘러야 할 것은 소버린 AI라는 구호를 넘어, 모델 접근권과 추론 인프라를 국가 산업안보의 핵심 자산으로 다루는 일이다. AI 공급망 전쟁의 다음 전장은 이미 열렸다. 반도체 다음은 모델이고, 모델 다음은 인프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