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과 최재호가 바랬던 6·10 민주화운동과 대구지역주의를 넘어 실용 민주주의로, 대구의 심장을 바꾸려는 대전환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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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민주항쟁 포스터 |
2026년 6월, 한국 사회는 다시 민주주의의 계절 앞에 서 있다.
6월은 한국 민주주의의 달이다. 6·10 민주항쟁이 있었고, 6·10 만세운동이 있었으며, 현충일도 6월 6일에 자리하고 있다.
5월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있다. 한국 현대사를 떠받치는 굵직한 기념일과 민주주의의 상징적 사건들이 유독 5월과 6월에 몰려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역사는 인간이 만들지만, 인간은 언제나 자연과 계절의 조건 속에서 움직인다. 한국의 저항과 연대, 민주주의의 기억은 정치적 의지와 시대적 분노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거리로 나올 수 있었던 계절의 감각과도 맞닿아 있다.
1987년 6월의 민주주의는 거리에서 시작됐다. 학생들은 독재에 맞섰고, 시민들은 그 외침에 응답했다. 양복을 입은 직장인들이 점심시간과 퇴근길에 거리로 나왔고, 넥타이를 맨 생활인들이 시위대에 합류했다.
이른바 ‘넥타이 부대’의 등장은 6월 민주항쟁을 학생운동의 경계를 넘어 시민항쟁으로 확장시킨 결정적 장면이었다. 민주주의가 이념의 언어에서 생활의 언어로 내려온 순간이었다.
그러나 2026년의 6월 민주주의는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제 민주주의는 거리의 함성을 넘어 지역의 삶 속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투표할 권리, 권력을 바꿀 권리, 국가폭력에 맞설 권리를 넘어 시민이 더 잘살 권리, 지역이 소멸하지 않을 권리, 청년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미래를 설계할 권리로 확장되어야 한다.
최재호와 김부겸이 바라본 6·10 민주화운동의 오늘적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 ▲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의 눈물(내외신문db |
김부겸의 대구 도전, 지역주의를 넘어선 대전환운동
김부겸의 대구 도전은 단순한 선거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역주의를 넘어 실용 민주주의로 가는 대전환운동이었다. 대구의 심장에 다른 가능성을 심는 일이었고, 대구와 경북을 하나의 정치색으로만 가두어온 낡은 구조에 균열을 내는 일이었다.
대구는 오랫동안 보수의 심장, 보수 정치의 본산, 변화가 쉽지 않은 지역이라는 말로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김부겸은 대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대구를 정복해야 할 지역으로 본 것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열어갈 시민 공동체로 보았다.
김부겸이 대구에서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대구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구 시민도 더 나은 정치, 더 실용적인 정책, 더 넓은 선택지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지역주의는 시민의 마음이 아니라 정치 구조가 만든 감옥에 가까웠다.
특정 지역은 특정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관성, 다른 선택을 하면 배신처럼 몰아가는 분위기, 지역의 자존심을 정치적 고정표로만 소비하는 낡은 문법이 대구의 가능성을 가두고 있었다.
김부겸의 도전은 그 문법을 흔든 대전환운동이었다.
그는 대구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구의 자존심을 믿었다. 대구 시민의 판단력, 생활인의 상식, 변화에 대한 갈망을 믿었다. 그가 바란 것은 특정 세력의 승리가 아니라 시민 선택권의 확장이었다. 대구의 정치가 과거의 충성 경쟁을 넘어 미래의 정책 경쟁으로 바뀌는 것, 그것이 김부겸이 꿈꾼 대구 민주주의의 본질이었다.
![]() ▲ 사진=김부겸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 페이스북 |
최재호 사무금융노조 초대위원장이 김부겸 캠프에서 하고자 했던 일
최재호 사무금융노조 초대위원장이 김부겸 캠프에서 뛰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최재호에게 민주주의는 투표장 안에만 머무는 제도가 아니었다.
노동자가 일터에서 존중받고, 금융이 시민의 삶을 떠받치며,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청년이 지역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현실적 과제였다.
사무금융노조 초대위원장으로서 최재호가 바라본 사회는 추상적 이념의 무대가 아니었다. 금융, 노동, 산업, 지역경제가 서로 맞물린 삶의 현장이었다. 그는 금융이 소수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도구가 아니라 시민의 삶을 지탱하는 공공적 장치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지역금융이 살아야 지역산업이 살고, 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생기며, 일자리가 있어야 청년이 지역에 남는다는 현실적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최재호에게 대구와 경북은 바뀌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바뀌어야 할 공동체였다. 그는 대구와 경북 시민들이 변화에 닫힌 사람들이 아니라 변화의 가능성을 억눌려온 사람들이라고 보았다.
대구의 상인, 경북의 농민, 공단의 노동자, 청년 창업가,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 모두가 민주주의의 주체라는 것이다.
최재호가 김부겸을 위해 뛰었던 것은 특정 후보를 돕기 위한 단순한 선거 활동이 아니었다. 대구와 경북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몸으로 증명하려는 실천이었다. 1987년의 넥타이 부대가 서울의 거리에서 민주주의의 외연을 넓혔다면, 최재호는 대구와 경북의 현장에서 지역 민주주의의 외연을 넓히고자 했다. 그에게 김부겸 캠프는 선거 캠프이면서 동시에 대구 민주주의의 대전환운동을 밀어 올리는 현장이었다.
2026년식 6·10 민주화운동은 실용주의다
1987년의 6·10 민주항쟁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민주주의였다면, 2026년의 6·10 민주주의는 시민의 삶을 실제로 바꾸는 민주주의여야 한다.
과거의 민주주의가 권력의 문을 여는 투쟁이었다면, 오늘의 민주주의는 지역과 산업, 금융과 일자리, 교육과 복지의 문을 여는 제도 개혁이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실사구시 정신이 다시 소환된다. 김대중의 민주주의는 관념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민주주의를 밥의 문제, 지역의 문제, 산업의 문제, 미래 세대의 문제로 확장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는 제도이면서 동시에 국민이 더 잘살 수 있도록 만드는 현실 정치의 도구여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 ▲ 제조업에 국한돼 있던 노동운동의 지평을 금융·사무 부문까지 넓힌 그는 “노동은 곧 사람”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조직화를 넘어 제도적 틀을 만들었다. 최재호 전 산별노조연맹 초대위원장 |
최재호와 김부겸이 바라는 대구 역시 이 실사구시의 연장선에 있다.
대구와 경북이 잘살아보자는 열망을 낡은 지역주의가 아니라 실용주의로 풀어내자는 것이다. 지역 시민이 특정 정당의 고정표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요구하는 주권자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구의 문제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의 문제이고, 청년의 문제이며, 산업 전환의 문제이고, 지역 자본 순환의 문제다.
2026년식 6·10 민주화운동의 해법은 다시 거리로만 나가는 것이 아니다. 거리의 정신을 제도로 옮기는 일이다. 구호를 정책으로, 분노를 설계로, 기억을 미래 전략으로 바꾸는 일이다. 대구와 경북의 심장에 필요한 것도 바로 그런 실용 민주주의다. 시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경제의 혈관을 다시 열고, 청년에게 남을 이유를 만들어주는 민주주의다.
![]() ▲ 금융계 전·현직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 경제의 위기를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더희망금융포럼(공동대표 최재호·마호웅)은 2025년 5월 2일(금), 서울 여의도에서 “회복과 성장의 길, 금융이 답하다”라는 끊임없는 변화를 위해 2022년 2025년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 위해 앞장선 최재호 전 위원장 |
대구의 심장이 바뀔 때 전국의 민주주의가 완성된다
최재호와 김부겸이 바라는 6·10 민주화운동의 현재적 의미는 분명하다.
민주주의는 서울의 광장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대구의 골목에도 있어야 하고, 경북의 시장에도 있어야 하며, 공단의 작업복에도, 금융노동자의 책상에도, 청년의 첫 일자리에도 있어야 한다. 시민의 삶을 바꾸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기념일의 언어로만 남을 수 있다.
대구의 심장이 바뀐다는 것은 대구가 자기 정체성을 잃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대구가 가진 자부심과 시민적 에너지가 낡은 지역주의 안에 갇히지 않고 더 넓은 미래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경북의 보수성 역시 고정불변의 운명이 아니라, 더 공정한 제도와 더 실용적인 정책 속에서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역사적 조건이다.
김부겸은 그 가능성을 정치의 언어로 열고자 했다.
최재호는 그 가능성을 현장의 실천으로 뒷받침하고자 했다. 한 사람은 대구 시민에게 다른 선택의 문을 보여주었고, 다른 한 사람은 금융과 노동, 지역경제의 관점에서 그 선택이 시민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두 사람이 바라본 방향은 다르지 않았다. 대구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대구와 함께 바뀌는 것. 지역주의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시민의 자존을 회복하는 것. 민주주의를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미래의 제도로 만드는 것이었다.
6월은 기억의 달이지만 동시에 과제의 달이다. 6·10 만세운동과 6월 민주항쟁이 남긴 것은 과거의 영광만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의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이다. 2026년의 답은 민주주의의 함성을 실용주의의 제도로 바꾸고, 대구와 경북의 변화 열망을 대한민국 전체의 미래 전략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
최재호 사무금융노조 초대위원장이 김부겸 캠프에서 뛰었던 이유도 바로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었다. 민주주의는 계절을 타고 거리로 나왔지만, 그것이 대구와 경북의 심장까지 닿을 때 비로소 전국의 민주주의가 된다.
1987년의 넥타이 부대가 권력의 문을 열었다면, 2026년의 대구 시민은 지역의 삶을 바꾸는 문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최재호와 김부겸이 바라는 6·10 민주화운동의 오늘이고, 대구가 다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심장으로 뛰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