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청년의 언어부터 배우자.. "특권의 성채"와 "내 통장 잔고" 사이민주당이 청년에게 다가가려면 거창한 구호보다 월세, 알바, 끼니, 생활비, 집값, 연금의 언어부터 배워야 한다
최근 한 시민활동가가 SNS에 올린 글을 보며, 왜 지금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세대교체가 필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글의 문제의식 자체는 충분히 공감할 만했다.
한 20대 청년의 현실을 출발점으로 삼아, 청년세대가 겪는 불안과 절망의 근본 원인이 한국 사회의 특권 구조에 있으며, 내란청산과 검찰개혁, 기득권 구조 해체가 청년의 미래를 지키는 길이라는 주장이었다.
그 말이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우연히 생긴 결과가 아니다. 권력과 자본, 제도와 정보가 특정 집단에게 유리하게 작동해 온 구조적 결과다.
부모의 자산이 자녀의 출발선을 결정하고, 좋은 일자리와 주거 기회가 일부에게 집중되며, 힘 있는 사람에게는 법과 제도가 느슨하게 작동하는 현실은 청년들의 삶을 압박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그러나 문제는 주장의 방향보다 언어였다. 많은 청년들이 그런 글을 읽으며 느끼는 것은 공감보다 거리감일 수 있다. 내용이 틀려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설명하는 말로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글 속에는 “특권의 성채”, “내란세력 청산”, “신자유주의 체제 타파”, “정치검찰 분쇄” 같은 표현들이 등장한다. 민주화운동과 시민운동의 경험을 가진 세대에게는 익숙한 언어다.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를 비판하고, 개혁의 당위를 설명하는 데 오랫동안 사용된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20대와 30대 청년들에게는 이 표현들이 다소 멀고 추상적으로 들린다.
청년들이 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개혁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은 자기 삶과 연결되는 언어로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청년들은 “특권의 성채”라는 말보다 “부모 찬스”라는 말을 더 쉽게 이해한다.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말보다 “평생 일해도 서울에 집 한 채 못 사는 현실”을 더 절박하게 느낀다.
“내란청산”이라는 말보다 “나중에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을까”를 먼저 걱정한다.
“민주주의 위기”라는 말보다 “결혼과 출산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포기가 됐다”는 현실을 더 직접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더 세밀히 들여다보면, 청년들의 고민은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서 뒤처졌다는 박탈감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자산시장의 격차도 크다.
누군가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주식을 언제 샀느냐, 부동산 상승장에서 어디에 진입했느냐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더 많은 청년들에게는 그마저도 먼 이야기다.
그들에게 지금 더 급한 것은 주식 계좌의 수익률이 아니다. 당장 오늘 몇 시간 알바를 해야 이번 주 식비와 교통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다.
삼성이나 SK 주식을 사야 하느냐보다, 편의점 도시락 가격과 지하철 요금, 휴대폰 요금, 월세와 관리비가 먼저다.
부동산 투자에서 소외됐다는 말도 맞지만, 그 이전에 월세방 하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청년들이 많다.
필자가 운영하는 내외신문에서도 이런 현실을 직접 체감한 일이 있다.
국회나 프레스센터 행사 때 1년에 두세 차례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알바몬에 시간당 1만 원 조금 넘는 조건으로 20대, 30대 청년 아르바이트를 모집하면 지원자가 10명 안팎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사람이 많이 필요해 시간당 2만 원, 2시간 근무 조건으로 20명을 모집했다. 지원자가 1만 명을 넘었다.
왜 이렇게 많이 지원했느냐고 물어보니 답은 단순했다. 기본 시급 1만 원이면 4시간 일해야 버는 돈인데, 2시간에 4만 원이면 “꿀알바”라는 것이다.
이 대답은 가볍게 넘길 말이 아니다. 2시간 일하고 4만 원을 받는 일자리에 1만 명 넘는 청년들이 몰리는 사회다. 이것이 서울과 수도권 청년들의 현실이다.
이런 청년들이 민주주의나 개혁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묻고 있다. “그 개혁이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검찰개혁을 하면 내 월세 부담은 줄어드는가.” “내란청산을 하면 내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가.” “기득권 해체를 말한다면 부모 돈 없이도 출발할 수 있는 길을 실제로 만들어 줄 수 있는가.”
민주당이 지금 반드시 고민해야 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민주주의와 개혁의 가치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정당이다. 검찰개혁, 언론개혁, 권력기관 개혁, 적폐청산 같은 의제는 민주당의 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해 온 핵심 가치였다. 이 의제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지금 청년들에게 그 언어가 얼마나 전달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청년들은 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개혁을 반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묻고 있다.
“그래서 내 삶은 언제 나아지는가.”
“왜 월급을 받아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가.”
“왜 서울에서 집을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꿈이 되었는가.”
“왜 결혼과 출산은 포기해야 하는 선택지가 되었는가.”
“왜 부모의 자산이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가 되었는가.”
“왜 나는 주식이나 부동산을 고민하기 전에 당장 알바와 생활비부터 걱정해야 하는가.”
“왜 하루를 버티는 문제와 미래를 준비하는 문제가 동시에 불가능해졌는가.”
이 질문들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는 가장 현실적이고 절박한 질문들이다. 청년에게 정치는 이념보다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통장 잔고, 월세, 교통비, 식비, 취업 준비 비용, 학자금 대출, 국민연금, 결혼 비용, 전세 보증금의 문제다.
민주당이 청년층과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은 구조를 설명하는 데 익숙하지만 청년들은 결과를 체감하고 있다. 민주당은 제도를 이야기하지만 청년들은 통장을 바라본다. 민주당은 개혁의 필요성을 설명하지만 청년들은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한다. 민주당은 권력기관 개혁을 말하지만 청년들은 오늘 저녁 끼니와 내일 알바 시간을 계산한다.
정치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번역이 부족했다.
검찰개혁을 말할 때도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라는 표현만으로는 청년에게 잘 와닿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설명해야 한다.
“힘 있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빠져나가고, 평범한 시민에게만 법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사회를 바꾸자는 것이다.” 그렇게 말할 때 청년들은 비로소 이 문제가 자신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언론개혁도 마찬가지다. “언론 카르텔 해체”라는 말보다 “부자와 권력자의 목소리는 크게 보도되지만, 월세와 알바로 버티는 청년의 삶은 뉴스에서 사라지는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언론개혁이 방송사와 정치권의 싸움이 아니라, 시민의 현실을 제대로 보도하게 만드는 문제로 다가온다.
특권체제를 이야기할 때도 “기득권 카르텔”이라는 말보다 “부모의 돈과 인맥이 자식의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를 바꾸자”고 말해야 한다. “특권의 성채”라는 표현보다 “부모 찬스 없는 청년도 출발할 수 있는 사회”라는 말이 훨씬 더 직접적이다.
내란청산 역시 과거의 정치 사건을 정리하는 문제로만 말해서는 안 된다.
권력이 법 위에 서고, 민주적 절차가 무너지면 가장 큰 피해는 힘없는 시민과 미래세대에게 돌아간다.
법과 제도가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청년이 안정적으로 일하고, 집을 구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청년의 삶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군사독재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민주화운동의 기억도 없다. 대신 취업난, 부동산 폭등, 저출생, 고령화, 국민연금 불안, 자산 격차, 플랫폼 노동, 계층 이동의 단절을 경험하며 성장했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다. 삶의 질로 증명되어야 하는 현실이다.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는가.
노력한 만큼 최소한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가.
부모 돈이 없어도 독립할 수 있는가.
알바와 비정규직을 전전하지 않고 안정적인 삶을 계획할 수 있는가.
월급만으로도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법과 제도가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어떤 개혁도 청년에게 온전히 전달되기 어렵다. 아무리 중요한 가치도 국민의 일상과 연결되지 않으면 공감을 얻기 어렵다.
특히 지금 청년들에게 정치는 거대한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을 수 있느냐, 버틸 수 있느냐,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민주당이 청년에게 다가가고 싶다면 먼저 청년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청년들에게 과거의 정치 언어를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 청년들이 왜 집값을 말하는지, 왜 연금을 걱정하는지, 왜 알바에 몰리는지, 왜 끼니와 생활비를 먼저 계산하는지, 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고 말하는지 들어야 한다.
청년들이 “민주주의”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자기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묻고 있다.
청년들이 “개혁”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개혁이 내 월급, 내 집, 내 일자리, 내 생활비, 내 미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청년들이 “정치”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정치가 자기 삶을 외면한다고 느끼고 있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더 큰 구호가 아니다. 더 어려운 단어도 아니다. “특권의 성채”를 말하기 전에 “부모 찬스”를 말해야 한다. “체제 타파”를 말하기 전에 “월급으로 집을 살 수 없는 현실”을 말해야 한다. “개혁 완수”를 말하기 전에 “청년이 알바와 생활비 걱정에 짓눌리지 않는 나라”를 말해야 한다.
청년의 현실을 제대로 보려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시장에 들어갈 여유조차 없는 청년들의 하루를 봐야 한다. 2시간에 4만 원을 주는 아르바이트에 1만 명이 몰리는 현실을 봐야 한다.
주식 계좌보다 먼저 식비를 계산하고, 내 집 마련보다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며, 미래 설계보다 오늘의 생존을 우선해야 하는 청년들의 삶을 봐야 한다.
정치의 본질은 국민의 삶이다.
개혁의 목적도 국민의 삶을 바꾸는 데 있다. 검찰개혁도, 언론개혁도, 내란청산도, 기득권 구조 해체도 청년의 삶과 연결될 때 힘을 얻는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옳은 말도 청년에게는 먼 구호로 들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와 함께 가고 싶다면 민주당은 청년들에게 말하는 법보다 청년들의 말을 듣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세대교체는 단순히 나이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언어를 바꾸는 일이고, 감각을 바꾸는 일이며,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는 일이다.
청년은 개혁을 거부하는 세대가 아니다.
다만 자기 삶과 연결되지 않는 개혁의 언어를 더 이상 믿지 않는 세대다.
민주당이 이 사실을 직시할 때, 개혁은 다시 살아 있는 말이 될 수 있다. 청년의 통장과 월세와 알바와 끼니와 생활비를 통과할 때, 민주주의는 다시 청년의 언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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