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반도체 착시’론은 틀렸다…한국 증시의 핵심 경쟁력을 착시로 부른 오독-미국은 빅테크, 대만은 TSMC가 증시를 이끈다…핵심 산업이 지수를 견인하는 것은 세계 자본시장의 보편적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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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김봉화 기자 |
조선일보가 한국 증시 상승을 두고 ‘반도체 착시’라고 지적한 것은 시장의 일부 현상을 과장해 본질을 흐린 주장이다.
코스피 상승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의 기여도가 크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사실이 곧 한국 증시 상승이 착시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도체가 한국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고, 그 경쟁력이 세계 자본시장에서 재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먼저 봐야 한다.
조선일보식 해석의 문제는 한국 경제의 가장 강한 부분을 인위적으로 제거한 뒤 전체를 평가하려 한다는 데 있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주변 산업이 아니다.
수출, 고용, 투자, 기술, 글로벌 공급망, 국가 전략산업의 중심에 있는 핵심 축이다. 그런 반도체를 빼고 한국 증시를 따로 계산한 뒤 “실제 가치는 낮다”고 말하는 것은 분석이라기보다 의도적 축소에 가깝다.
대통령이 “축구 실력을 빼면 손흥민도 보통 사람이라고 할 것이냐”는 취지로 반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손흥민에게서 축구 실력을 제거하고 그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듯이,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 경쟁력을 제거하고 한국 증시의 본질을 말할 수는 없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장식품이 아니라 엔진이다. 엔진이 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엔진을 제외하고 자동차의 성능을 평가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선일보의 주장은 표면적으로는 시장 편중을 걱정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한국 산업의 핵심 경쟁력을 평가절하하는 시선이 깔려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부품인 메모리와 HBM,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주목받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수십 년간 축적된 기술, 투자, 인력, 제조 역량, 글로벌 고객망의 결과다.
이를 착시라고 부르는 순간 한국 경제의 강점은 약점으로 둔갑한다. 핵심 산업이 강해서 지수가 오른 것인데, 그것을 마치 왜곡이나 허상처럼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특정 산업이 시장을 이끄는 현상은 당연히 위험 관리의 대상이지만, 그것이 곧 부정적 현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핵심 산업이 없는 나라의 증시가 더 건강한 것도 아니며,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기업이 지수를 이끄는 나라가 더 취약한 것도 아니다.
한국 증시가 오랫동안 저평가를 받아온 이유는 반도체가 강해서가 아니었다. 문제는 낮은 주주환원, 불투명한 지배구조, 부동산 중심 자금 흐름, 소액주주 권리 보호 미흡, 지정학적 리스크, 정치적 불확실성 등이었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반도체 경쟁력이 아니라 자본시장 구조의 비정상성이었다. 그런데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한국 증시가 재평가되기 시작하자 이를 착시라고 부르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뒤섞는 해석이다.
정확한 진단은 이래야 한다. 한국 증시는 반도체 때문에 왜곡된 것이 아니라, 반도체를 통해 다시 평가받기 시작했다. 문제는 반도체 상승이 한국 증시 전체의 신뢰 회복으로 확산되도록 제도를 고치고 산업 생태계를 넓히는 일이다. 조선일보의 ‘반도체 착시’론은 이 본질을 놓쳤다. 그래서 틀렸다.
미국은 빅테크, 대만은 TSMC…세계 증시는 핵심 기업이 이끈다
조선일보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잃는 이유는 국제 비교를 해보면 분명해진다. 한국만 특정 산업과 대표 기업이 지수를 이끄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빅테크가 증시를 견인하고, 대만은 TSMC가 시장 전체의 방향을 좌우한다.
세계 자본시장은 이미 핵심 산업과 대표 기업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주도 상승은 예외가 아니라 세계 증시의 보편적 흐름 안에 있다.
미국 증시를 보자.
S&P500은 500개 대형 기업으로 구성된 대표 지수지만, 실제 시장의 방향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알파벳, 아마존, 메타, 테슬라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강하게 좌우한다.
미국 증시가 오를 때 그 중심에는 늘 인공지능, 클라우드, 플랫폼, 반도체,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있다. 그렇다면 미국 증시도 ‘빅테크 착시’라고 불러야 하는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빅테크는 미국 경제의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생태계, 아마존의 데이터 인프라, 알파벳의 검색과 AI 플랫폼, 애플의 디바이스 생태계는 미국 산업 패권의 중심이다.
미국 증시에서 이들 기업의 비중이 크다는 것은 위험 요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국 경제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만은 더 분명한 사례다. 대만 증시에서 TSMC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TSMC는 세계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의 중심이고, 애플과 엔비디아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의 핵심 생산 파트너다.
대만 증시는 사실상 TSMC의 실적과 전망, 글로벌 반도체 수요에 크게 반응한다. 그렇다면 대만 증시 전체를 ‘TSMC 착시’라고만 부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세계는 대만을 TSMC 하나에 취약하게 의존하는 시장으로만 보지 않는다. 동시에 대만이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거점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TSMC의 존재는 대만 경제의 리스크이면서 자산이다. 한 기업의 비중이 크다는 사실만으로 그 나라 증시의 상승을 허상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업이 세계 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함께 평가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단순한 대형주가 아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자산인 메모리 반도체, HBM, 고성능 저장장치, 첨단 제조 역량을 갖춘 글로벌 기업이다. 이들이 코스피 상승을 주도하는 것은 한국 증시의 착시가 아니라 한국 산업의 강점이 자본시장에 드러나는 과정이다.
조선일보식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미국 증시에서는 빅테크를 빼야 하고, 대만 증시에서는 TSMC를 빼야 하며, 일본 증시에서는 도요타와 소니, 반도체 장비 기업을 빼야 한다. 그렇게 하면 어느 나라 증시든 원래 모습보다 약해 보인다.
그러나 그런 계산은 보조 지표일 수는 있어도 국가 경제의 본질을 설명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세계 자본시장은 강한 산업을 가진 나라에 프리미엄을 준다. 미국은 빅테크로, 대만은 TSMC로, 한국은 반도체로 세계 시장에서 평가받는다. 한국 증시의 상승을 반도체 착시라고 폄하하는 것은 세계 증시의 작동 방식을 모르는 해석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의 핵심 경쟁력을 애써 약점처럼 보이게 만드는 낡은 프레임이다.
한국 증시는 착시가 아니라 재평가 국면에 들어섰다
